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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Jul 30. 2021

오늘의 운세를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직장이 중요한 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계약하려는 업체에서 품질 검사를 하러 오는 날이다. 일명 audit이다. 이때는  생산 현장은 물론이고 꼼꼼한 서류 정리와 직원들의 복장 , 위생 모든 게 문제가 된다. 청소는 물론이고 모든 문제에 계속 긴장을 하고 있었다.  퇴근이 계속 늦어지고 있었다. 드디어 전날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한 시간은 새벽 두 시였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큰아이가 회사 앞에서 나를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오르자마자 폭풍 잔소리가 이어진다.

“엄마!! 엄마 나이가 58세이십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 이게 말이 되세요? ”

“알았어. 다음부터는 일찍 끝낼게. 내일 회사에 제일 중요한 일이 있단 말여~“

”엄마 아프면 회사는 엄마한테 아무 관심 없어요. 우리 자식들이 마음 아프지. 제발 몸 생각 좀 하시라니까요. “

”알았어. 조심할게. “

나는 말끝을 흐렸다.   

  

집에 도착하니 세시가 다 되어갔다. 두어 시간 자고 다시 출근을 해야 했다. 얼핏 잠이 들었다가 깨니 아침이다. 시계는 다섯 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긴장을 하고 있어서인지 잠을 잔 것 같지도 않다. 핸드폰을 켰다. 괜히 한번 운세가 보고 싶어 졌다. 가끔 보던 오늘의 운세로 화면을 넘겨봤다.


`오늘은 집 밖으로 나가지 마시오. 출장을 갈 일이 생기면 어떤 핑계라도 대고 다른 날로 미루세요.`


뭔 이런 운세가 뜨는 날이 있지? 하고 생각해 보니 그날은 나의 휴무였다. 원래는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인데 직장의 중요한 일 때문에 휴무를 바꾼 것이다. 괜히 기분이 거슬렸다. 운세를 읽고 나니 대중교통 이용도 꺼림칙했다.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출근을 해서 나머지 정리를 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오늘도 제발 안전하게 조심하라고 동료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품질 수준 점검도, 예정되었던 생산 작업도 술술 풀려갔다. 외부 손님의 반응도 좋아 보였다. 동료들도 모두 기분 좋아 보였다. 평소에 어수선하던 현장도 안정감 있게 굴러갔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어갔다. 하루의 반이 지나갔으니 나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몇 가지 빠뜨린 제품이  생각났다. 점심 식사 전에 해결하고 싶었다. 반제품 점검을 하고 서둘러 냉장고 문을 나서는 순간 문밖에 무엇인가 발에 걸렸다. 걸리면서 굴러갔다. 손잡이 없는 사각 대차였다. 몸이 붕 떴다.  벌처럼 날아서 개구리처럼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충격으로 세상이 까맣게 보였다.  어디 부러졌겠다고 생각을 했다. 생각을 하니 머리는 안 다쳤구나 싶었다. 일하던 동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귀도 괜찮구나 여겨졌다. 이런 부끄러움은 안 되는 데 생각하며 당황했다. 잠시 몸이 마비된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빨리 일어나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뼈를 다쳤을까 봐 달려온 동료들이 만지지도 못하고 어쩌냐고 발만 굴렀다. 그사이 달려가서 마실 물을 떠 오시는 분도 있고, 내 손을 주무르는 분도 계셨다. 아, 세상은 아직 살만 하구나 싶었다. 팔을 움직여봤다. 괜찮았다. 고개를 들어봤다. 괜찮았다. 무릎을 구부리고 일어나려 했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 무릎을 다쳤구나. 하지만 부러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랫동안 운동으로 다져진 몸인데 이까짓 것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몸을 움직이니 움직일 만했다. 동료들의 걱정과 부축을 받으며 휴게실로 내려왔다. 부끄러웠다. 십여 년 생산직에 이렇게 크게 넘어져본 것은 처음이다. 뭐가 넘어질 일이 있냐고 조심하면 된다고 매일 잔소리를 하던 나였다.   

  

문득 아침에 보았던 오늘의 운세가 생각났다. 이 불길한 느낌의 운세는 왜 꼭 맞아떨어지는 것 일까? 안 봤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일도 운세를 보아서 생긴 것은 아닐까? 괜한 자책을 했다. 그런데 내게 중요한 일이거나 집안의 중요한 일에는 나도 모르게 운세를 슬쩍 읽어보게 된다. 내가 가끔 운세를 읽어보게 된다고 했을 때 신앙을 가진 친구가 믿음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믿음을 가지면 모든 걸 신께 맡기게 되니 그런 걱정은 안 하게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내 운명을 신께 맡기고만 싶지는 않아서 신앙을 못 가지는 건지도 모른다. 그냥 열심히 살면 어딘가에 운명을 관장하는 누군가는 나의 진심을 이해하고 있겠지 하고 믿는다.   

 

 식구들 몰래 병원을 다녀왔다. 뼈에는 이상 없지만 부었고 근육통은 며칠 갈 거란다. 예상했던 결과다. 운동이 나를 살렸다는 생각이다.  일도 재밌고 인생도 재밌으려면 건강해야 한다. 엄마 인생의 마지막 직장이라고 아이들에게 큰소리치며 일하고 있는데 몸이 아프면 이것도 끝이다. 직장은 오딧의 결과가 계약으로 이어지기를 기다리며 애를 태우고 있다.  


  

 그나저나 인터넷을 켜기만 하면 찾을 수 있는 오늘의 운세는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제는 그것이 나의 딜레마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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