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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Jul 23. 2021

나는 못 보내요

커피 그리고 커피


남편이 담배를 끊지 못했다. 아이가 어려서 간접흡연으로 나쁘다는 얘길 마르고 닳도록 해도 끊질 못했다. 아이가 시험에서 백점을 받아오면 끊겠노라 하고서도 못 끊었다. 더 나아가 올백에 1등을 하면 끊겠노라 하고서도 아이는 약속을 지켰는데 담배는 못 끊었다. "약속을 하질 말아야지. 애들이랑 약속을 하고서도 그걸 못 지키면 되겠어요." 나는 핀잔을 주곤 했다. 그날도 여전히 담배 때문에 잔소리를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끊으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어. 심지어 출장 가면 그곳에서 좋다는 커피를 꼭 사 가지고 왔잖아. 그런데 당신은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담배를 한 번이라도 사준 적이 있어? 맨날 끊으라고만 하구." 눈빛에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어린아이 같은 투정도 아니고 참으로 어이없어하면서  바라보다가 나도 속으로는 뜨끔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 알아서  피워. 나도 커피를 못 끊으니 할 말은 없네." 그렇게 30여 년을 살았다. 요즘 갑자기 남편이 금연 프로그램을 따르고 있다. 벌써 8 개월째다. 아이들이 묻는다. "엄마! 아빠는 금연을 하셨으니 엄마도 커피를 조금 줄이시는 건 어때요?" "너무 많이 드시잖아요." 집중 공략이다.         


나는 커피로 하루를 산다. 여고 때부터 마시기 시작한 커피다. 하루 종일 커피가 옆에 있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은 거의 커피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른이 된 후로는 더더욱  커피 말고 다른 음료를 구매해 본 적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도 임신 중일 때 유일하게 커피를 참아냈다. 친정어머니는 산모 대기실에서 "너 신기하게 커피 안 먹는다." 하면서 기특해했다. 하지만 출산을 하고 바로 의사 선생님께 물은 말이 "커피 마셔도 돼요?"였다. 한 잔 정도는 먹어도 된다고 하자마자 나는 어머니에게 커피 부탁을 드렸다. " 엄마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만 뽑아다 줘요"  "에고 이틈에 커피 좀 줄이나 보다 했더니만, 쯧쯧" 바로 어머니의 핀잔을 들었다.


아이들도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저절로 알게 됐다. 큰아이는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부터 슈퍼마켓에 가면 캔 커피 하나를 들고 왔다. 동네 슈퍼 사장님도 우리 큰 아이의 고집을 막지 못해서 손에 쥐어 보내곤 하셨단다. 아이는 말도 잘 못하는 시기였는데 "엄마 커피! 엄마 커피!" 하면서  캔커피 진열대 앞에  떡 버티고 서 있곤 했다는 것이다.  

  

 커피는 내게 약 같은 존재다. 아파 죽을 만큼 기운이 없을 때 달달한 믹스 커피 한잔이면 기운을 얻는다. 달달한 맛과 떨쳐내지 못하는 프림의 텁텁함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돌면서  기운 내라고 전달을 해주는 것 같다.

 조용한 새벽 눈을 떴을 때는 아무도 깨지 않은 집안을 커피 향으로 가득 채워놓는다.   그리고는 진하게 내려진 커피를 살짝 마신다.  쓰디쓴 커피가 식도에 싸하게 내려가는 느낌이 좋다.  커피는 슬슬 몸속에 스며들어서 뇌는 깨어나서  하루를 계획하게 하고  육체의 풀어져있던 나사들은  볼트를 조이게 한다.  


직장에서의 커피 한잔은 또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 몸을 쓰는 생산직이다 보니 식사시간도 되기 전에 배가 고파진다. 그때 짬을 내서  마시는 달달하고 따끈한 커피 한잔은 허기도 달래주고 기분도 좋아지게 만든다. 시골에서 일할 때 새참으로 등장하던 막걸리가 있다면 나의 새참은 커피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동료들과의 커피잔 기울이며 즐기는 짧은 휴식은 너무 매력적이다.  커피는 짜증 났던 일도 잊게 하고 대화의 물꼬를 트게 해주는 좋은 촉매제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정말  직장에서 커피와 같이하는 휴식 시간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지 상상이 안된다.



 나의 모든 이동 동선에 항상 커피가 함께한다. 남들은 물병을 가지고 등산을 간다지만 나는 연한 커피 얼음물을 가지고 등산을 간다. 운동을 하면서도 물속에 커피 한 두 방울을 떨어뜨려서 가지고 간다.  


지치고 힘든 날은 눈에 보이는 카페로 들어가 따뜻한 라테 한잔을 마시고 나온다. 커피가 나를 위로해  주는 듯하여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그럴 때는 친구도 필요 없다. 나는 커피를 마시는 나와 대화를 하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탄수화물과 커피 중독자인 덕분에 나는 고혈압에 고지혈증을 앓고 있다. 지병이다. 그래서 커피를 줄여 보려고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전히 커피를 들고 다녔다. 요즘은 성인이 된  아이들이 성화를 부려서 커피를 조금 줄여 보겠노라고 약속을 하기는 했다. 며칠을 실행해 보니 남편이 담배를 못 끊었던 때처럼 쉽게 줄여지지 않는다. 내 커피 창고에는 몸에 좋다는 양파 차, 우엉차가 쌓여 있다. 가족들이 준비해 놓은 것이다. 그래도 나는 몸에 좋은 차들을  헤집고 제일 안쪽에 있는 커피를 꺼내곤 한다.


커피 없이 어떻게 버틸까? 아침에 한잔은 절대 포기 못하겠다. 협상안을 찾아야 했다. 결국 커피를 포기 못하는 대신 운동을  하기로 약속했다.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했다. 며칠 실행에 옮겼던 만보 걷기가  요즘 기록이 저조하다. 직장에서 퇴근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을  확인하던 아이들도  엄마의  피로도를  걱정하여 감시가 소홀해졌다.  틈을 이용하여 나는 또  애지중지 커피를  달고 다니고 있다. 아, 평생을 사랑해온 커피를 어떻게 보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못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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