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을 읽다가 갑자기 쓰게된 글.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동화책을 먼저 읽고 아이들에게 책 내용을 이야기해 주었다. 눈빛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듣다가 결국 아이들이 책으로 읽어 보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보니 책을 읽고 서로 권하기도 한다. `이러이러한 내용이 좋다.` 혹은 `어떤 장면의 설명이 진지하다.` `거기에 설명된 작가의 생각이 나와는 좀 다르다.` 고 하면서 식구들은 책을 권해 온다. 자전거 여행을 읽으면서는 가족들에게 아무 얘기도 하질 못했다. 엄마가 책을 계속 가지고 다니니 아이들이 “엄마 그 책 핸드폰이세요?” 묻는다. 핸드폰처럼 계속 들고 다니면서 읽었다. 자존감이 점점 낮아진다. 읽어내기도 힘이 드는데 이런 글을 쓸 수는 없겠다고 체념을 하게 됐다. 하지만 생각은 많아졌다. 작가라면 이렇게 깊이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중학교 3 학년 때 전국이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산길을 깎아 신작로를 만들었고 읍내로 학교를 다니던 남학생은 90%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아직은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가 있을까 말까 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동네에서도 학교까지는 한 시간을 넘어 걸어야 했다. 동네 남학생들은 따르릉 자전거 벨을 울리며 지나가고 여학생들은 죽어라 걸어서 읍내에 있는 학교엘 다녔다. 키가 별로 크지 않았던 나는 책가방이 땅에 닿을 듯한 모양새로 학교를 향해 총총걸음을 하기가 다반사였다. 키 큰 친구들이 성큼성큼 걸어가면 무거운 책가방을 낑낑거리면서 뒤지지 않으려고 항상 이마에는 땀범벅이 되어 있곤 했다.
우리 집에서 20분쯤 걸어가면 아랫동네와 만나지는 길이 나온다. 우리 동네 몇몇 친구와 선배들이 떼를 지어서 걸어가다 보면 위아래 동네 남학생들도 슬금슬금 자전거로 우리들을 약 올리며 달아나곤 했다. 그런데 그중에 웃긴 놈 하나가 항상 내 기분을 망쳤다. 등교 길의 책가방을 홱 뺏어 가는 것이다. 일단 그 한테 가방을 뺏긴 게 화가 나고 같이 가던 선배랑 친구들한테 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대요, 놀림받는 게 싫었다. 씩씩 거리면서 학교에 도착해 보면 책가방은 언제나 학교 교문 선도부 옆에 놓여 있었다. 근처 학교에 다니는 오빠들이 여동생 책가방을 실어다 주는 때라 교문 옆에 가방을 놓고 가는 게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건 아침마다 가방을 뺏길까 봐 이를 앙 다물고 출발을 해야 했다.
그 해 여름 우리 집에 상을 당했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등교해서 학교에 상중이라고 말씀드리고 바로 조퇴를 했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산언덕을 헉헉 거리고 올라섰다.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끌고 한 사람도 헉헉 거리고 올라오고 있었다. 정상에 올라서서 바라보니 이런, 책가방 도둑 까까머리 중학생이다. 이미 인근에 우리 집이 상을 당 한건 모두 아는 처지라서 그 친구는 내가 조퇴한 이유를 단박에 알아챘다. “태워다 줄까?” 물었다. “학교도 늦었구먼. 뭘 나를 태워다 주냐?”나는 댓 거리 하고 싶지 않아서 내리막길을 냅다 달음질쳤다. 자전거는 금세 내 뒤를 따라왔다. “그러지 말고 얼른 타라.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 여기는” 그러고 보니 산언덕 길은 그때는 위험한 길이었다. 여자 혼자 가면 귀신도 모르게 사라지는 길이라는 괴 소문이 나던 길이었다. 갑자기 무서움이 몰아쳤다. “그럼 저기 큰길까지만 태워다 주라.”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에 남학생 뒤에 자전거를 타고 앉은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부끄러움이 극에 달했다. 어떻게든 옷깃도 스치지 않으려고 자전거 뒷좌석의 받침대를 으스러지게 잡고 있었다. 도로공사를 하던 중이라서 깔려있는 자갈돌들이 퉁탕거리며 궁둥이를 아프게 했지만 진땀을 삐질 삐질 흘리면서 참고 있었다. 그 친구의 등에서도 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하얀 여름 교복이 젖은 속옷에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 뭐하고 학교를 이제 가냐?”민망하던 차에 한마디 물으니 “들에 농약 하고 오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환갑 넘으신 어르신의 늦둥이 막내아들이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한다는 것도 이미 인근에서는 다 아는 일이었다. “그래도 학교를 늦으면 되냐?” 내 말에 “ 아버지 혼자 하시기 에는 일이 너무 많아서~” 하고 말끝을 흐린다. 나는 더더욱 할 말을 잃었다. 잠깐이면 나올 줄 알았던 큰길이 나오지 않아 속으로 애만 태우고 있었다.
자전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때 그 오묘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부끄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왠지 듬직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 봤자 열여섯 살 아이들의 생각이다. 김훈 작가님이 이 책을 쓰시기 전에 나를 한번 만나셨으면 만경강 이야기 속에 내 이야기가 들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싶다. 그랬으면 자전거 여행 속에 나오는 마암 분교의 인수나 귀봉이처럼 이름 석 자 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