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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Nov 27. 2024

버리기는 미안해 (반장일지 7)

폐기 물건 정리를 하면서

제조 현장은 3정 5s가 기본이다. 3정은 정품, 정량, 정위치를 말하고  5s란정리, 정돈, 청소, 청결, 습관화를 말한다. 크게 보면 현장 정리 정돈을 잘해야 한다는 그런 내용이다. 우리 현장은 매월 한 가지 실천 주제를 정해 놓고 실천하려고 노력을 한다. 11월의 실천 주제는 5S중의 '정리'였다. 정리란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구분하여 필요 없는 것을 버리는 일이다. 어찌 보면 요즘 내가 추구하는 삶의 한 방식인 미니멀 라이프와도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다.



11월의 실천 내용이기도 해서  이번 기회에 현장에서 굴러다니는 물건들도 과감하게 정리하기로 했다. 그동안 현장에는 사용하지 않거나 고장이 났는데도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일단 현재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비어 있는 창고로 모두 이동을 시켰다. 그리고는 폐기 물건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정말 버려도 될 물건인지, 다시는 쓰임이 없을 것인지 판단을 해야 했다. 새롭게 어떤 제품이 나오는지, 리뉴얼 계획이 있는지 검토는 필수였다. 지금은 안 쓰고 있어도 신제품이 나올 때 종종 사용되는 물건도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부서져서 부속도 사라진 벨트들이  여러 개가 있다. 한 때는 예쁘고 맛있는 제품들을 싣고 싱싱 달리던 벨트 들이다. 작업 종료 후 청소를 해 놓으면 깨끗하고 단정하게 빛이 났던 물건이다.  4년 여 동안 사용하다 보니 가죽 벨트도 닳아버렸고 스위치 박스도 고장이라 여러 번 고쳐서 사용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재 사용이 어려워서 새것으로 교체를 했고 폐기 자재로 구석에 쌓여 있게 된 물건이다.  조금이라도 멀쩡한 나사들은 빼내서 다른 곳에 쓰여졌을 것이고, 벨트를 돌려주던 롤러 역시 다른 벨트를 돌리고 있을 것이다. 늘어진 벨트와 부속들이 빠진 물건이 가을들판에 버려진 허수아비같이 스치면 덜렁거린다. 마음이 안 좋다. 한때  열정과 패기넘치던 작업벨트 지만 지금은 고철덩어리다.  폐기 이름표를 붙여 놓는다.


샐러드 자동화 기계를 들여오기 전에 잠시 동안 수동기계로 포장을 했던 적이 있다. 이 수동 실링 기계는 라인마다 4대씩 가지고 있어야 생산 수량을 맞출 수 있었다.  버려진 실링기계가  스무 대나 된다.  케이스는 아직도 지난날 화려하게 작동할 때처럼 반짝인다. 내부의 계기판이 고장이 난 것들도 있고, 부속을 다른 곳에 사용하느라 부품이 없어진 것도 있다. 겉보기는 말짱하다. 대신 속이 없는 공갈빵 같다. 이 물건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 제조가 자동화로 이루어지다 보니  필요가 없다고 한다.



한 때는 회사를 살리던 물건이었다. 자동화에 밀려 이젠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폐기 품목으로 분류가 되어 버리다니 신세가 가련하다. 더 사용할 방법은 없는지 다른 팀에도 문의를 했지만 신제품 개발도 모두 자동화 기계로 나가는 중이라서 어디에서도  필요치 않은 물건이 되었다. 안쓰럽고 안타깝다. 특히 나는 이 실링기계를 사랑했다.  다른 사람이 다루면 고장이 나고 애를 먹여도 내가 사용할 때는 단 한 번도 고장이 없던 기계였다. 깔끔하고 예쁘게 실링이 되면 기계가 기특해서 얼마나 닦고 조이고 어여뻐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젠 내 사랑을 뒤로하고 이 물건도 폐기 이름표를 붙인다.


돌아보고 챙겨보니 정이 안 든 물건이 없다. 많은 아이스크림 스쿱들도 샐러드 조립에 요긴하게 사용되던 물건인데 망가져서 버려야 한다. 녹슨 가위들도 모아놓으니 숫자가 꽤 많다.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주방 도구들, 끝이 갈라진 스탠 채반들 , 녹이 슬어서 사용하기 어려운 냉장고 선반들도 있다. 열심히 소독을 담당해 주던 대형 앞치마 소독고 한 대도 폐기 대상이다. 내 손을 거쳐 폐기로 분류되어야 하는 물건들에게 표현하기 어려운 미안함은 무엇일까?  기계들이 한때는 사람못지않게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런 시간들을 알고 있으니 더더욱 미안하다. 거기에 내 물건이 아닌 회사의 물건이다 보니 재사용이 가능할지, 망가졌어도 정말 버려도 될 것인지 자꾸만 신중해진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한다고 우리 집 냉장고는 텅 비어 있다. 아이들이

"엄마는 미니멀 라이프가 아니라 이 정도면 살림을 안 하시는 건데~~" 하면서 나를 놀린다. 책을 제외하고 물건에 대한 욕심도 없고 음식에 대한 욕심도 없다. 웬만하면 그냥 살아도 살아진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라 불편함도 잘 느끼지 못한다. 없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잘 모르고 남들이 불편하다고 하는 것에도 나는 정작 불편하지 않은 것도 많다. 물건에 대한 미련도 없고 욕심도 없다. 하지만 그동안 열심히 사용하다 버려진 창고의 폐기 물건들에게는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자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눈물을 머금고 작별인사를 한다. 그래 그래 고생했다. 애썼다.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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