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
관리자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지식이고 현장에서 터득한 것은 노하우 라고 한다. 관리자들은 작업 매뉴얼을 전하고, 매뉴얼을 잘 지키는지 체크한다. 매뉴얼만을 고집하다가 가끔은 충돌이 생기기도 하고 노하우만을 고집하다가도 충돌은 생긴다. 어느 쪽도 무시하지 못할 중요한 내용들이기는 하다. 매뉴얼 지식과 노하우 사이를 이리저리 줄타기하면서 생산을 잘 이끌어 가는 일이 관리자의 일이기도 하다.
칼을 갈아 본 적이 없는 나는 작업을 준비하는 준비조의 칼이 무뎌질 때마다 긴급한 해결 방법을 찾아 주느라 애를 먹었다. 칼도사님을 불러서 갈아보기도 하고 비싼 전동 칼갈이로 날을 세워 주기도 했다. 요즘은 칼 가는 야스리 한 자루로 해결한다. 정육식당을 오래 하셨다는 동료 한 분이 정육점에서 흔히 보는 야스리로 칼 가는 법을 전수해 주셨다. 똑바로 서서 위에서 아래로 곧장 내려 긋는다.
"아이고 반장님 그게 아니고요." 몇 번의 시범을 보여 주셨다. 반복해서 따라 하다 보니 몸으로 요령이 생겼다. 지금은 나도 곧잘 칼을 간다. 야스리와 칼날이 부딪칠 때 몸으로 느낌이 있다. 쇠 끝이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몸 안으로 파고들면서 서늘해진다. 결코 좋아하는 소리는 아니다. 그 서늘함을 느껴야 칼이 갈린다. 공부해서 생기는 지식 말고 몸으로 익히는 산 지식이다. 매뉴얼 귀퉁이 어디쯤에 칼 가는 지식을 써넣어 두고 싶을 정도이다.
일과 중에는 원재료 점검도 있다. 샐러드 회사답게 야채 점검이 필수다. 빛깔 곱고 싱싱한 야채가 샐러드 회사의 핵심 재료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먹어 보기도 한다. 야채 중에 애를 먹였던 것은 셀러리다. 맛은 더 애매하다. 쓴 맛이 강하기도 하고 식감이 너무 질기기도 하고 맛있는 표준의 맛이 무엇인지 어려웠다. 어릴 때부터 익숙하지 않은 야채라서 나에게 셀러리는 비호감 야채였다. 그런 데다가 지난여름 내내 상태가 좋지 않아서 속을 썩였던 터라 더욱 비호감이 되었었다. 여름에 셀러리는 가만히 살펴보면 줄기의 매듭 속에는 벌레가 슬그머니 파먹고 도망간 흔적이 있고, 꽉 다문 줄기의 가운데는 노랗게 병이 든 것도 많았다. 이동 중에 상처가 난 것은 더위 때문에 금방 짓무르고 줄기의 가운데 바람구멍이 숭숭 나 있는 것도 많았다. 맛을 점검하기도 전에 상태만으로 이것저것 골라내면 남는 것은 몇 개 안 되었다.
그런데 요즘 셀러리가 맛있는 야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겨울이 되자 셀러리는 연하고 부드럽고 벌레도 안 먹고 색깔도 예쁘다. 적당한 초록색, 꺾일지언정 휘지 않는 단단함, 씹히는 소리가 경쾌한 아삭함, 입안을 한 바퀴 휘 돌아가는 수분감, 자를 때부터 신선함을 풍기는 향기. 나는 셀러리다라고 말하는듯한 적당한 맛, 모든 게 합격이다. 한여름에 가끔 지나치게 짠맛으로 입고되어 반품을 하고, 애를 먹였던 그런 짠맛도 없다. 적당하다. 셀러리는 다른 야채에 비해 나트륨 함량이 높다. 물론 야채에 나트륨이 포함되었다는 사실도 식품 제조를 하면서 배운 새로운 산 지식이다. 예전에는 관심도 없던 야채에 포함된 나트륨 함량을 요즘은 야채마다 일일이 살펴본다.
셀러리 작업을 할 때마다 짠맛이 있다고 설명하고 줄기가 질긴 것은 스틱으로 내놓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원재료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작업을 하면 작업을 하면서도 진지해진다. 마치 밥상에서 식재료 설명을 들으면 맛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추위가 극성을 부리던 지난주부터는 오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구매할 때는 최상품이었다는데 다음날 작업을 하려고 보면 껍질이 쪼그라져서 영 볼품이 없었다. 심지어 단단하지도 않아서 오이 끝을 잡고 흔들면 찰랑 거리기까지 했다. 오이 스틱 작업을 해야 하는데 오이 상태가 엉망이라 다시 급하게 구매를 해 와야 하는 사태가 빈번했다. 오이 작업을 맡아서 하시는 복순 언니가 한마디를 한다.
"요즘 같이 추울 때 오이는 얼리면 안 되는 것이여. 겉이 쭈글해지고 맛이 읎어. 밖이 너무 추워서 얼어서 오는 오이를 어쩔 것이여. 이동할 때 잘 가져오라고 해 봐. 그리고 이 추운 날씨에 밤새 창고에 두면 얼어 버리지. 상온 냉장고로 옮겨 둬야지. "
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당황한 내가
"언니. 보관이 문제였던 것이지? 추위 속에 방치했구나, 그동안에 이런 추위가 없어서 생각을 못 했네. 진작에 얘기 좀 해 주시지~" 나의 반가워하는 말에 복순 언니는 대뜸 이어서 말한다.
"아니 뭐 대단한 거라고. 살림만 하는 나도 아는데~. 냉장고에 며칠만 있어도 오이는 쭈글쭈글 하잖여~." 뭐 대단한 내용이라고 놀라는지 의아하다는 표정인 언니의 눈빛이 지긋하다. 모르면 폐기하게 되니 야채관리도 알고 보면 실속 있는 지식이다.
청결구역에서 준 청결구역으로 바람이 나가야 한다는 바람의 이동까지 계산하고 설계되는 식품 제조 회사의 구조도 새로운 지식이었다. 현장의 낙하균까지 관리를 해야 하는 이유로 바람의 통로를 계산하고 설계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공기에 있는 세균까지 걱정하는 일이 없는데 제품의 완성도를 위해 식품회사는 낙하 균까지도 점검을 했다. 덕분에 일상생활에서도 공기를 통하게 하고 주변을 청소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살림만 하느라 쌓아둔 경력이 없을 때는 식품 회사 제조에 발을 들이기가 가장 쉽다.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만 가지고 있다면 특별히 다른 입사 조건이 없다. 사람들과 어울려 일을 해야 한다는 상황만 달라질 뿐 마주하는 원재료들이 우리 식탁에서 보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주부들이 덤비기에는 거부감이 없다. 유난히 살림만 하던 언니들이 우리 회사에 많은 이유 중에 하나다. 오랫동안 가족의 식탁을 가꿔오신 분들이라서 식품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분들도 많다.
원재료를 보고, 한눈에 "이건 고객님이 싫어할 텐데?" 이렇게 딱 알아내는 눈썰미는 언니들의 자랑이다.
그리고 가끔 일이 막혀서 매뉴얼을 뒤지며 답답해할 때는 언니들을 찾아간다. “언니, 이거 좀 도와줘요!” 그러면 언니들이 모여들어 "반장님! 그건 말이쥬~" 하고 해결책을 쏟아놓는 그때, 제 머리 속에서는 "아, 이게 진짜 '산 지식'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곤한다.
결국, 관리자는 매뉴얼과 노하우의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데, 그 줄타기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언니들’과 함께 하고있다 . 어쨌든 직장생활은 계속 공부, 공부 또 공부! 그래야 언제 어디서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갖출수 있다. '생산의 산지식'이'식탁의 예술'이 되도록! 열심히 배워 가보기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