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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고양이의 10분 (반장일지 18)

고양이가 왜?.

by 파인트리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어요. 조금 전 화장실로 내려간 동료였다.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반장님! 화장실에 고양이가 있어요!!"

동료의 떨리는 목소리에 순간 흠칫 놀랐지만, 하지만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알았어. 금방 갈게. 놀라지 말고 거기 있어."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도착하니 동료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습니다.

"변기에 앉아 있는데 느낌이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돌아 봤더니 고양이가 변기 뒤에 있었어요."얼마나 놀랐는지 동료는 목소리가 떨립니다. 조심스럽게 변기 뒤를 살폈어요. 정말 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몸을 둥글게 웅크리고 있더라구요.사람에게 들켜서 눈빛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고,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어요. 이 작은 화장실에는 도망칠 곳조차 없었거든요. 고양이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지요. 어느새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눈이 자신을 향하자 고양이는 더 겁을 먹은 듯했어요. 그때, 동료 중 한 명이 나섰어요. 고양이집사임을 자처 하면서요.


"반장님, 이 고양이 야생이에요. 갑자기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 다들 물러나 주세요. 문을 열어두면 제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잡아볼게요."

나는 사람들을 화장실에서 모두 내보냈어요. 집사 동료가 고양이를 잡으려 하자 고양이는 순식간에 문 위로 뛰어올랐어요. 놀란 내 가슴과 달리 냥이 집사는 침착하게 손을 뻗어 고양이를 잡았어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회사 밖으로 데려가 풀어주었지요. 고양이는 번개처럼 뒷산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렇게 고양이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어요. 낯선 고양이 해프닝은 단 10분 만에 끝이 났지요.


"어떻게 여기로 들어왔을까? "

"그래도 다치지않고 돌아가서 다행이다."

"얼마나 놀랐을까?" 모두들 고양이 걱정을 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어요. 작업장 라인을 돌리고, 샐러드 랩을 말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여전히

"그건 아니지!!" 바로잡는 소리가 들리고 칙폭칙폭 기차소리같은 포장기 소리가 들려옵니다. 원재료가 부족하다고 몇 시까지 도착이냐고 고함치는 전화 소리가 들리고, 작업 지시서의 수량이 이상하다고 묻는 조장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와요. 아직 술이 덜 깨서 헛소리를 하는 동료의 애교 섞인 목소리도 들리고, 조용히 다가와 "예상보다 부자재가 적게 왔어요."걱정하는 책임감 강한 동료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정말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모두가 평온하게 제 할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어느새 모두들 절망하던 고양이는 잊은듯합니다. 그런데 나는 아직 불안과 공포에 질린 고양이의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진짜 바닥을 보이는 순간은 끝까지 몰렸을 때라고 합니다. 내 인생에서 그런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부도로 인해 세 아이와 함께 순식간에 길거리에 내몰렸을 때, 어린 자식들을 돌보면서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시누이를 보살펴야 했을 때, 그때가 나의 절망의 순간이었을까.

어머니들은 흔히 자신의 일생을 소설책 열 권으로도 담아낼 수 없다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이제 돌아보니, 나 역시 한 권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면, 숨 막히는 순간이 닥쳤을 때도 나는 그저 묵묵히 견뎠던 것 같아요. 죽겠다고 소리치지도 않았고, 살겠다고 몸부림치지도 않았고요.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하며 초조한 마음을 감추려 애를 썼던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는 절망조차도 내 몫이라 여기며 묵묵히 감내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 가장 힘든 순간에도 손에 쥔 설거지 스펀지를 놓지 않았고, 아무 일 없는 듯 출근 카드를 찍었어요. 그렇게 나는 절망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네요.


하지만 만약 절대절명의 10분이 주어진다면? 그 순간 나는 어떻게 할까 의문이 드네요.

아마도 숨을 고르고, 주변을 살필 것 같아요. 그 10분이 공포와 혼란의 시간일지라도, 나는 그 안에서 해야 할 일을 찾을 것 같고요. 해결할 방법을 궁리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움직일 것이고 있겠지요. 예전처럼 설거지를 계속하듯, 출근 카드를 찍듯,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쓸 것입니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개척자도 아닌 나는 순응하며 적응하는 인간일 뿐인 모양입니다. 그렇게 살아왔고, 아마 그렇게 살아갈 것 같아요. 어쨌든 나도 극한의 10분 앞에서도 무너지고 싶지는 않아요. 고양이가 순간의 위험에 온몸을 긴장시켜 대응하듯, 나도 나만의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겠지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아, 어떻게든 잘 되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엄청난 낙관주의자라서요.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서 막다른 곳에 몰렸던 고양이. "야옹아, 너는 너의 10분에 최선을 다 했다. 잘 살아라. 행복해라." 저절로 기도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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