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라는 감정 노동 (반장일지 29)

"다 잘났대요, 그래서 더 피곤해요"

by 파인트리



“내가 옳은데 왜 다들 모르지?”

“내가 젤 힘들어 죽겠는데 왜 아무도 배려 안 해?”

"나는 분명히 이런 의미로 수도 없이 말했는데 저 사람은 항상 지 생각만 해."

다들 지들이 잘났다고 합니다. 다들 자기들이 옳다고 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몇몇 동료들은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왜 나만 무시해?"

"왜 나한테만 이래?"

"원래 나한테만 이렇게 대했어."

억울함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게 하소연을 합니다. 이런 하소연을 들을 때면 신부 복장을 하고 출근을 해서 고해성사를 들어줘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목탁을 들고 앉아서 도를 닦아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신앙도 없는 저는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그들과 내 마음에 평온를 달라고 염원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자기 말이 안 통하면 바로 “이해를 못 하네?”라고 해석해 버리는 젊은 친구들과 일을 하려니 점점 더 생각이 많아지고 있어요. 사실, 이해는 감정 노동이라고 생각이 돼요. 이해를 하려면 고통받는 사람의 입장을 먼저 알아줘야 하고 내가 관련되었다면 나의 다른 생각이나 억울함은 감춰야 하거든요. 내 억울함도 분한데 이 마음을 숨기고 이해를 먼저 시키려고 노력해야 하니 이만한 감정 노동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게 노력을 해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지는 사람’ 같기도 하고. 이해를 하려고 노력한 공도 없이 일 처리가 애매모호하다고 역공격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내가 옳다는 증명’에 더 에너지를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점점 증명을 하려는 노력이 진짜 쓸모없이 여겨지고 내가 이 꼴을 안 보면 되지 하는 마음에 진심으로 이해를 시키려는 생각보다 '될 대로 되라지'하고 포기해 버리려는 생각도 합니다.


도대체 이해가 무엇일까요?( 네이버 사전에 아래와 같이 나오네요.)

1.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예) 철학이나 문학에 다 같이 이해가 깊은 분으로, 저로서도 평소에 존경을 아끼지 않았던 만큼….

2.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임.

예) 따지고 보면 실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했다.

3.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그렇다면 우리 현장은 3번의 해당이 많네요. 남의 사정이 너그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출발을 하는 분쟁들이 많으니까요. 관망하는 시점에서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힘들겠다." 라고 위로 하면서 해결책을 제시해 줄 때도 있는데 각자의 생각이 달라서 이게 잘 안 먹힐 때도 있어요.

'뭐가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아니 나의 무엇이 힘들었을지 진짜 이해는 하는 거 맞아요?.' 말문이 막히지요. 진짜 힘듦을 알 수는 있지만 체감은 못하니까요. 그럴 때는 그냥 한발 물러서야 합니다. 물러서서 생각을 다시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른 일에 쫓겨서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사실 억울함을 뒤로하고 이해를 먼저 해보려는 노력은 집에서도 있었어요. 몇 년 동안 아래층과 소음 문제로 심각했거든요. 자꾸만 천장이 울리도록 소리가 난다는 것이에요. 우리 집에는 사람이 없어서 발망치 소리를 낼 일도 없고, 혹여 내가 냈다면 오케이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사과하고 슬리퍼를 사서 조치를 취했어요. 심지어 모두가 자고 있었는데도 소리가 난다고 하고 저 혼자 구석방에서 컴퓨터만 하고 있었는데도 소리가 난다고 난리였어요. 억울해서 잠도 못 잤어요. 성질 더러운 남편이 아래층과의 분쟁사실을 알까 봐 쉬쉬 하느라 제 마음은 더욱 힘들었지요.


하지만 소음에 시달리는 아래층의 고통을 먼저 이해하기로 했어요. 소리가 들려서 미치겠다는데 얼마나 힘들겠어요. 문제를 찾아서 해결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집안을 활짝 열고

"제발 집안으로 들어와서 보셔라. 소리 날 만한 게 있느냐?"라고 여러 번 공개도 해보고

"소리 날 때 언제든 우리 집에 와라. 문제를 찾고 해결하자"라고 항상 문을 열어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래층은 참다가 미치겠다고 건물 단톡방에 공개로 욕을 하는 거예요. 언제든 올라와서 소리의 원인을 찾아보자고 내가 분명히 말을 해 줬는데도 말이지요. 나를 물로 봤나? 싶어 화가 나서 힘들기도 했어요.


"60넘은 나 혼자 집에 있는 날이 많은데 내가 춤을 추겠냐? 퇴행성 관절염인데 뜀뛰기를 하겠냐?"라고 하소연도 해 봤습니다. 이미 5년 전 분쟁이 시작될 때 150만 원 들여서 집안에 방음 매트도 깔고 문밖 틈새로 소리 나갈까 봐 현관문에도 보조 방음벽도 달았어요.


실외기가 시끄럽다고 할까 봐서 밤에는 에어컨 절대 금지. 집안에서는 4cm 쿠션 슬리퍼 착용. 집안에 외부 손님 초대하기 없기. 주말마다 심야 치맥타임을 즐겼던 가족 문화도 없애 버렸습니다. 심지어 홈 캠을 설치해 놓고 시끄럽다고 하는 날, 녹화된 집안 모습을 그대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도로로 흘러나온 담쟁이


사실 저희 집도 위층에서 나는 안마기소리 운동기구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뭐 그럴수도 있잖아요. 살아오면서 아직까지 이웃과 이런 관계를 맺어 본 적이 없어서 아래층을 진심으로 이해하기는 어려 웠어요. 시골에서 보내주시는 농산물도 나눠 먹고 맛있는 반찬도 나눠먹던 예전 이웃들과는 너무나 다른 온도였습니다.


며칠 전 조금 기쁜 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5년 여만의 갈등이 풀리는 것일까요? 우리 집안 구석구석 홈 캠 녹화본을 아래층 청년에게 계속 보냈더니 미안하다고 문자가 왔습니다. 그 문자에 대해서도 나는 집을 고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소음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의 답변이 뜨아 합니다. 우리 식구들을 충분히 이해하게 됐으니 집안에서 춤을 춰도 괜찮대요. 돌이켜보니 자신이 행패를 부릴 때마다 무척 빠르게 후속 조치가 있었는데 자신이 그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문득 알게 됐대요. 앞으로는 소음이 들리면 즐거운 일이 있으신가 보다 하고 같이 즐거워하겠대요. 참 나. 이래도 되는 것이냐고요. 저는 그동안 일부러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가해자라는 죄책감에 심지어 아래층 현관 문고리만 봐도 가슴이 철렁했다고요.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게 이해가 된다니요.


긴 시간동안 이해하려고 노력하느라 힘들었던 나의 시간들 때문인지 지금은 동료들 간에 분쟁이 생기면 쉽사리 이해를 하라고 못하겠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모르게 '그대가 이해해 줘라. 나이가 죄다' '에이~ 마음 좋은 그대가 이해해 줘라, 원래 착한 사람이 지는 거다.'라는 말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어요. "일단 더 알아봅시다. 우리가 모르는 내용이 있어서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몰라요." 하면서 무작정 이해보다는 납득이 될 만큼의 '앎'을 찾아 주려고 노력합니다. 깨달아서 앎도 아니고 진실 을 증명해보인 앎이라도 찾아주고 싶어집니다.아래층도 우리 집을 알아서 이해를 하게 된 걸까요? 집안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수있게 되어서 안심이 된 걸까요? 휴~~ 오늘의 일지는 반장의 넋두리였습니다.


막둥이의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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