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반가울 수가?
여름이면 사람들은 바다로, 산으로 떠나지만 식품회사는 긴장? 타러 갑니다. 불시점검 시즌이거든요. 항상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품을 납품하는 거래처마다 "여름철 식중독"에 비상이 걸려 있습니다. 점검을 오는 업체나, 우리 회사 관리자들의 눈빛이 매의 눈빛으로 변합니다. 항상 준비하고 관리하고 있는 우리 현장은 당당합니다. 위생 관리와 품질관리는 기본입니다. 공정도 오픈, 마음도 오픈되어 있어요. 언제든 누가 오든 괜찮습니다.
"점검이요? 어서 오세요~ 문 활짝 열어놨습니다."
1년 전, 우리 회사를 떠났던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반장님, 저 이번에 점검자로 반장님 회사에 가게 됐어요." 순간, 내 머릿속엔 폭죽이 터졌습니다.
"뭐? 와~진짜? 너무 반갑다! 와라 와! 저녁 먹자! 한잔 하자!" 내 입에서는 환영의 인사가 폭포수처럼 쏟아졌죠. 반면, 후배는 그저 조용히 웃었습니다. 원래 감정 표현이 단정한 친구입니다. 웃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격입니다. 거의 포옹 수준이에요.
그다음 날, 공식 메일로 받은 점검자 명단에 후배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직접 확인하는 순간
반가움, 기쁨, 뿌듯함, 동시에 약간 긴장의 경련(?)이 일었습니다. 왜냐하면요... 그 후배가 우리 회사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예전에는 둘이서 같이 현장용 대시보드를 만들고, 작업장 점검표를 들고 뛰어다니고,
품질안전관리 교육장에서 '우리, 이건 꼭 고쳐야 해요' 하며 머리 맞대던 시간들을 2년 가까이 보냈습니다.
그랬던 후배가! 지금은! 점검자라니요! 그러나 저는 결심했습니다. 그래! 이번 점검은, 과거의 숙제를 해결하는 기회! 이번엔 그 약점, 후배도 찾지 못하게 바꿔놓을 계획을 세웠지요.
'후배님 , 어서 오세요. 그때의 우리처럼, 지금의 우리도 잘하고 있다고 보여줄 준비가 끝났답니다.'
...(단, 저녁은 점검 끝나고 먹읍시다.. 지금은 아직, 상대팀이니까.)
드디어 점검 날이 되었습니다.
"점검자가 도착했습니다."
이 한 문장이 사내에 공유되자, 이상하게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얼른 보고 싶어서였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나는 내 현장을 지켜야 하니까요.
"그래, 의연하게 내 자리에서 기다리자." 혼잣말로 다짐하며 애써 평정을 가장했지만, 사실 마음속은 들떠서 엉덩이가 들썩들썩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후배가 생산 현장으로 입실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기 있다!'
냅다 달려가고 싶었지만, 점검 중에 괜히 방해될까 싶어 꾹 참고 있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못 참겠더라고요. 결국, 조심스레 점검 구역으로 다가가 후배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반가워서 먼저 와봤어. 점검 방해는 안 할게. 어서 일하셔요~"
그러자 후배도 환하게 웃으며 말했어요.
"아, 반장님! 너무 반가워요. 저도 뵙고 싶었어요!"
그 순간... 마치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온 아들을 맞는 부모 마음이 이런 걸까요?
머나먼 타국에서 유학을 하다가 몇 년 만에 돌아오는 아들을 만나는 기분이 이럴까요? 어쩐지 울컥했어요. 감정을 추스리고 황급히 몇 걸음 물러났습니다.
‘그래도 점검 중이잖아. 방해는 안 되지.’
그 뒤로는 점검이 끝날 때까지 멀찌감치 떨어져서 조용히 지켜봤어요. 역시나, 후배는 예전 그대로, 꼼꼼하고 바른 사나이였습니다. 그 모습이 괜히 더 자랑스럽고 대견하더군요.
점검을 마치고 서류 심사로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평소였다면 '얼른 끝내고 가시지...' 이런 마음이 들었을 텐데 이번엔 전혀 아니었어요.
"이번엔 꼼꼼히, 철저히 해주기를." 그게 진심이었어요. 우리 회사, 위생과 관리에 자신 있어요. 후배가 지금 속한 회사 기준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보완을 하면 되죠. 어렵지 않아요. 다만, 후배가 돌아가서 "예전 직장이라 봐줬다"는 말은 듣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점검은 오래 걸려도 괜찮았어요. 그보다 저는 딴 걱정을 하기 시작했죠.
"저 친구 커피 좋아하는데…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도 사다 줄까?"
"배고픔 못 참는 스타일인데, 점심은 챙겨 먹고 하는 건가?" 짬이 생길때마다 후배가 걱정 되었어요.
그 후배는, 처음 봤을 때 얇은 유리그릇 같았어요. 의협심이 강해서 바른말을 기탄없이 말하는 편이었고 상대가 보이는 반응에 상처를 너무 크게 받았거든요. 분명 바른말인데... 분명히 바로 잡아야 하는 건 맞는데.... 듣는 사람은 묘하게 찔리고, 기분이 조금 나쁘고 그래서 이 후배가 생각하는 그런 반응이 아니었던 거예요. 제가
"어우, 돌려 말할 순 없니?"
하는 꼰대스러운 참견을 몇 번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도 MZ잖아요. 후배의 말을 전하면서 물으면
"엄마, 그 후배 말 맞잖아. 왜 돌려 말해? 오히려 오해만 생기지."
딱 잘라 말하더군요. 올바른 것은 마음에 거슬려도 바로 잡는 게 맞다는 생각이래요. 그 후배는 내게 젊은 세대의 생각을 알게 해 준 고마운 친구였습니다. 늘 고민하며 성장하는 모습이 예뻤고, 그 젊은 지식과 시선속에서 나는 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육아 휴직 후 이직 한다고 했을 때도 아직 젊은 30대이니 다른 곳에서도 일도 해 보고 경험도 쌓아서 더 성장을 하라고 힘껏 응원을 해 줬어요.
점검을 마친 후 며칠이 지났네요. 그날은 서로 너무 바빠서 얘기도 제대로 못하고 후배랑은 얼굴도 못 보고 헤어졌어요. 한 통의 문자가 와 있었어요.
"반장님! 여러 곳을 점검을 다녀 보는데 반장님 현장에는 특별함이 있어요. 사람이 일하고 있다는 따뜻함이 느껴지고, 일을 재밌어하면서 하고 있다는 표정이 읽혀요. 물론 관리도 잘 되어 있고요. 이런 현장을 만들고 계신 반장님이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이 문자를 보고 마음이 뭐랄까요? 뿌듯하다고 할까요? 그보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현장을 만들기까지의 시련들이 생각나서 가슴이 찌릿했어요. 다행히 우리 현장이 예쁜 봉숭아 꽃물처럼 우리만의 색으로 물들었구나 싶기는 해서 보람이 차 오르기도 했고요. 후배의 문자가 며칠 동안 마음에 남아 간질간질 정감이 느껴졌습니다. (음~~ 지금까지 참 뜨겁고 강렬한 여름날의 이야기였습니다. 헤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