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를 내려놓습니다. ( 반장일지 31)

이제 반장이 아닙니다.

by 파인트리


반장으로 일하던 시절, 그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불편함을 줄이려고 머리 싸매고 질문 공세를 퍼부었던 순간들. 가끔 동료들과 불편함을 함께 해결했던 기쁨은… 음, 예를 들면 맛있는 짬뽕 국물 한 입 먹었을 때의 짜릿함과 비슷했어요. 아니, 그 이상일지도요!

여러사람이 모인 곳이니 이해관계가 부딪혀서 감정이 팽팽할 땐 ‘한판 뜨자!’ 하며 카페나 술집에서 연장전을 펼쳤죠. 이사람 저사람, 동료간의 감정 물밑 작업을 해서 결국은 해피앤딩을 만들었지요. 물론 가끔 대화가 길어져서 ‘한잔 더?’ 하다가 다음 날 기억이 안 날 때도 있었지만요!

원칙을 지키려 애쓰다가도 가끔은 ‘내 편 하나 챙기자’ 하는 맘으로 위로를 했다가 전체가 흔들릴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땐 ‘눈 질끈 감고’ 결정을 내리곤 했는데, 그 순간에는 꼭 무릎에서 힘이 슉 빠졌습니다. 진심으로.


매주 월요일 조회 시간은 단순 시작이 아니라 ‘배움의 축제’였어요. ‘식품 제조의 80%는 교육이다’라는 말을 실천하느라 분위기를 무겁게도 하고 즐겁게도 만들어가면서 말이죠 . 위생교육부터 안전교육까지 쏟아지는 교육 자료에 치이면서도, 동료들에게 전달하면서 같이 배우고 공유하는 시간이 의외로 재밌었습니다. 동료들은 반장에게 따가운 질책과 함께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금방 돌아서면

‘반장님, 이거 해결 좀 해주세요!’ 하고 부르는 음성은 제게는 ‘슈퍼히어로’ 어깨뽕을 불러 일으켰어요. 그래서 제 별명 ‘해결사 고반장’! (슈퍼맨도 울고 갈 별명 아닐까요?)에 엄청 만족스러웠지요.


내 다짐은 늘 같았습니다. ‘나는 튼튼한 다리, 넓은 그늘이 될 것이다!’
동료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비바람 맞지 않도록 말이죠. 하루 만 5천 걸음은 기본, 현장을 먼저 살피느라 서류 정리는 늘 뒷전으로 밀렸어요. 밤늦게까지 밀린 서류와 씨름하며 그늘을 만들어도 진정으로 행복했습니다. ‘주는 행복이 받는 행복보다 크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진짜 진리라고 여기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 그늘을 접을 시간. 서운함? 아쉬움? 뿌듯함? 여러 감정이 마음을 스산하게 만들었어요.


마지막 조회 날, 후임을 소개했습니다. 잘생기고 키 크고 인성까지 좋은 그가 마이크를 잡자 현장은 사이비 종교 집회처럼 열광의 도가니! 모두가 그의 이름을 연호했고, 나는 조용히 내 그늘을 접었어요. 서운하다기 보다는 무엇인가 맥이 빠진 기분에 ‘마이크를 꼭 쥔 손’이 떨렸습니다. 아마 그게 ‘프로 반장의 눈물’이었나 봅니다.


이제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제조기획팀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았죠. 현장 경력 18년의 ‘왕선임’인데, 가끔은 ‘현장 출신이 뭐 알겠어?’라는 시선과 ‘대기업도 개선 안 하는 이유가 있다’는 냉담한 반응도 받습니다. 하지만 기획은 내 다음 무대임을 압니다.

목표 세우고, 방법 찾고, 실행 계획 짜는 일. 이 무대에선 ‘그늘’이 아닌 ‘빛’이 되려고 합니다. 제조에서의 기획은 꽃을 피우게 하는 일이니까요. 그래도 마음 한 켠엔 현장의 땀과 눈물, 그리고 ‘해결사 고반장’의 별명이 늘 함께 있겠죠.


나 스스로에게 살짝 한마디 위로를 던져 봅니다. " 고반장, 리더란 무대 위에 서서 박수받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 그늘을 만들어 모두가 빛나게 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가끔은 ‘한판 뜨자’고 외치는 용기도 필요했지! 하지만 '나를 따르라'고 외치고 보낸 시간들은 후회없고 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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