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운전, 아저씨 제발~~

'끼워주세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by 파인트리


이른 새벽입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손 끝을 열 번쯤은 조몰락 조몰락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호흡을 가다듬었지만 진정이 되지는 않습니다. 새벽 5시 반 이제는 문 밖을 나서야 합니다. 조금 더 지체하면 도로에는 감당 못 할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거든요. 천천히 현관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평소에는 길게 느껴지던 계단 11개도 오늘은 왜 그리 짧은지요. 심호흡을 하고 공책에 글씨를 써가면서 배운 대로 움직여 봅니다.

-먼저 차량의 네 바퀴를 살필 것.(산아래 동네라서 고양이들이 자동차 바퀴밑에서 밤새 코~자고 있으니까)

-자동차키로 차량의 문을 열 것.

-안전벨트를 반듯하게 착용할 것.

-운전석에 앉아서 다시 심호흡을 하고 브레이크를 힘껏 밟고 시동을 켤 것.(항상 너무 세게 밟아서 브레이크 발판은 다 닳았음)

-사이드와 백미러를 맞췄는지 확인하고 다이얼을 후진으로 돌릴 것.

-아주 천천히 뒤로 후진하다가 다시 드라이브로 다이얼을 돌릴 것, 그리고 전진하면 끝


오늘은 내 생애 처음으로 자동차 운전을 해서 출근을 하는 날입니다. 35년 동안 장롱 속에 있던 면허가 때 국물을 벗는 날이지요. 뭐 법으로 '운전해라'라고 정한 날은 아니지만 내 맘속으로는 반드시 오늘을 넘기지 말아야겠다고 맹세를 했고 그 약속을 스스로 지켜보려고 용기를 냈습니다. 드디어 자동차 시동을 혼자 켜보게 된 것이지요.


'이제 혼자 하셔도 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해요.' 한 달 가까이 연수를 받으면서 격려를 받았지만, 사실 용기를 못 냈습니다. 자동차 궁둥이에 초보운전이라는 딱지를 여기저기 붙이고 잔뜩 쫄아있는 저에게 주변에서는 '괜찮은 세상이다. 겁먹지 마라. 초보는 봐준다.' 이렇게 저렇게 위로를 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연수중에 만났던 "앞도 뒤도 아무것도 못 보는 초보입니다."라고 써 붙인 초보운전의 궁둥이를 보고 내 실력이면 저렇게 써 붙여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끼어들기 어려울 때를 대비해서 하트 막대기를 하나 만들어야 할까 고민도 했습니다. 아니면 자동차 지붕에 전광판이라도 달아놓고."끼워주세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문구를 날려 볼까, 등등. 운전실력의 부족함을 모면하기 위한 창의력이 용솟음쳤답니다. 무지막지한 두려움 속에서도 결국 혼자 이날은 넘기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던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회사 출근길은 자차로는 10분 대중교통으로는 50분입니다. 대중교통으로는 한방에 가는 노선이 없어요. 두 번 버스 갈아타기를 해야 하는데 연결버스가 바로 오는 게 없답니다.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그렇게 직장을 다녔어요.

초보딱지 더 있어요ㅠㅠ


사실 운전이 절박하게 필요하다고 느낀 사건이 얼마 전에 또 있었기도 해요. 언제나 손과 발이 되어주던 큰 딸아이가 시집을 가고 아이들은 각 자 독립된 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집에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어요. 그런데 어느 날 상구(반려견) 산책을 시키는 중에 이 녀석이 길가에서 무엇을 홀랑 주워 먹어버렸지 뭐예요. 목으로 잘 넘어가지도 않는 것을 삼켜버린 것인지 갑자기 숨을 거칠게 쉬고 금방 기운이 떨어져 버리더라고요. 죽을 것만 같았어요. 순간 응급처방이라고는 사람에게 하는 하임리히법으로 등을 쳐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요. 몇 번이나 등을 쳐주고 목을 쓰다듬어 주고 했더니 그때서야 제대로 숨을 쉬었어요. 그 시간이 한 5분 정도밖에 안 됐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났고 곧장 병원으로 이송할 수 없는 제 자신이 미웠죠. 속으로 이래서 운전이 필요하구나라고 절실히 깨달았어요. 이런저런 이유로 드디어 운전 연수를 받을 용기를 냈고 아, 드디어 운전을 하게 된 것이랍니다.


출근보다 1시간 반이나 이른 어둑한 새벽 두근반 세근반의 가슴을 안고 길을 나섭니다. 온갖 용기를 모두 모아서 핸들을 꽉 움켜쥐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드디어 운전 시작입니다.

"괜찮아. 천천히. 어~~ 제한속도가 90km 도로인데 속도가 45km밖에 안되네. 이러면 안 된다고 했지, 조금만 더 밟아 주고. 저기 저기서 좌측 깜빡이 켜고 차가 오나 안 오나 본다. 지금이야 들어가..... 잘했어,잘했어. 다시 좌측 깜빡이 켜고 들어가야 하는데.. 도로가 끝나가는데.. 어쩌나 아무도 안 끼워주네. 뒤차는 가볍게 빠앙~ 들어가도 된다고 알려 주시는 것 같은데... 아따 죄송해요. 아저씨 제발 천천히 와주세요. 나 좀 끼어들게 해 주세요.~~." 휴~내 말을 들으셨는지 멋쟁이 천사 차량 한 대가 아주 천천히 오고 있습니다. 좋았어, 이때다. 천사자동차 덕분에 끼어들기를 했고 겨우 겨우 출근을 했는데 남들은 자차로 10분 내외면 출근하는 길을 도착하고 보니 22분이나 걸렸습니다. 등에 식은땀을 진정시키고 나니 아까 끼워 주신 분께 감사의 인사로 비상등을 눌렀어야 한다는 게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연수중에 들었던 여러 가지 조언들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막상 운전을 해보니, 운전 중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들었던 교육 내용이 아무생각도 안 나는데 익숙해지면 괜찮아지게 되는 걸까요? 걱정이 앞섭니다.


2시간도 아니고 겨우 20여분 혼자 운전을 한 사실이 뭐 그리 대단할까요? 하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 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에 새로운 도전이 많습니다. 근육 만들기에 도전하고, 운전에 도전하고, 직장에서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직도 올해 실천하기로 했던 도전이 한가지가 남아있기는 합니다만(아직 비밀), 흠~어쨌든 도전의 나날이 계속됩니다. 주야장창 도전만 하고 결과가 없을지라도 이제는 도전하는 나에게 만족하렵니다. 빛나는 청춘의 나이는 아니지만, 아직 도전하고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거든요. 내일도 진땀 나는 초보의 도전은 계속되겠지요. 근육초보, 운전초보, 팀장초보..... 휴~~일단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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