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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모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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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Jun 12. 2022

60이 다 되어 여행의 맛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나 자신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아요.

여행은 좀 그래요.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된 여행도 좋지요. 그런데 나는  숙소만 예약하고 아무 계획 없이 떠나요. 숙소를 중심으로 돌아다녀 보는 거지요. 걷는 것을 좋아하니 어슬렁거리면서 도시를 걷고 시골길을 걸어요. 걷다 지치면 커피 한잔 사들고 아무 곳이나  주저앉아 책을 읽어요.  집에서는 정말 이해 안 되고 어렵던 책 들고 여행지에서는 잘 읽혀요. 희한한 일이지요. 뇌세포가 정열적으로  변하는 건지  머릿속이 깨끗해져서 집중이 잘되는 건지 알 수는 없어요. 하여간 여행지에서 새벽 기상으로 책을 읽는 게  참 좋아요.


그러고 보니 여행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네요.  따지면 나를 위한 여행을 해 본 적이 없기도 하지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이들 보여주려고  혹은  아이들 놀게 하려는 목적으로 여행을 했어요. 여행이 힐링이 아니라 또 다른 노동이었어요. 아이들 먹일 것과 옷가지들을 챙기느라 여행을 가기 전부터 이미 지쳐 버리곤 했지요. 캠핑은 캠핑대로 챙겨야 할게 많았고  장거리 여행은 또 그 여행에 맞게 아이들 짐이 항상 많았어요. 그리고는  다녀오면 텐트 말려서 넣어두기부터  여름이면 모래 털어 정리하고 캠핑 식기들  햇빛 구경시켜서 녹이 안 나게 정리를 해 두기까지 여행 후의 노동은 또 얼마나 많았게요. 그래서 젊은 날의 나에게 여행이란 썩 좋고 즐거운 기억은 아니에요.


보성 녹차밭


내가 젊고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나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게 왜 그리 아까웠는지 몰라요.  이 돈이면 아이들에게 학용품이라도 더 사줄 수 있을 것 같고. 당장 다음 달 급식비도 미리 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나 자신에게는 단돈 천 원을 쓰기도 아까워서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가족을 위해서만 살았어요. 그게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인가 봐요. 나로 인해 주위가 행복해진다면 더 바랄 게 없었어요. 그게 내 행복이기도 했나 봐요. 지금도 그래요. 그런데 그렇게 살았어도 일말의 후회가 없어요. 그게 내가 살아온 이유였기 때문인 거죠.


어느 순간부터 나도 나를 위한 시간이 조금씩 필요했던 거 같아요.  느닷없이 시내버스를 타고 끝까지 가보는 걸 해봤어요. 그런데  아이들 돌아올 시간이 되니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결국 약속된 것을 어기는 일탈을 내가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아이들 손을 잡고 장구경을 가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곁에 있으니 안심이 되었지요. 천천히 장구경을 하면서 아이들과 군것질도 하고 이야기도 하는 시간들이 너무 즐거웠어요. 집을 떠날 용기를 못 내고 겨우 이 동네 저 동네 5일장 투어를 하는 것으로 소심한 여행의 행복을 느끼는 거라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행동하지 않았지요. 겁이 많았거든요. 어디를 혼자 떠나는 것도 무서웠고, 엄마가 집을 비운다는 것에 마음이 불안했어요. 가족들은 진심으로 엄마의 사생활을 응원했어요. 친정에서 여러 날을 있다 와도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줬어요. 도리어 엄마 없이 더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매일 인증해서 보내 주기도 했지요. 그러다 보니 나도 안심이 되기 시작했나 봐요. 슬쩍 집을 비우는 여행을 한 번 두 번 하기 시작했어요. 집 걱정을 하지 않으니 여행이 좋더라고요. 여행지에서 오롯이 나만을 생각하면서 지낼 수 있는 게 참 행복해지기 시작했어요.


신안 천사 대교


여행은 노동이 아니라 힐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이젠 챙길 게 없더라고요. 내 옷가지와 혈압약만 있으면 됐어요.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동생들과 혹은 친구들과 같이 하는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내용도 없는 재잘 거림도 좋고요. 마음이 가볍다 보니 웃음이 많아져서 더욱 즐겁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어요. 나이 먹어 여행을 같이하는 사람은 불편한 관계일 수가 없잖아요. 마음 편한 사람과 같이해서 더 편안하게 느끼는 걸 거예요. 그 경험들이 몇 달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내가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여행 후에는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원인은 부모님이었어요. 부모님도 모시고 다니면 좋겠구나. 여행 좋아하시던 친정아버지가 너무 생각이 나요. 지금은 거동이 불편하셔서 얼마나 답답하실까. 나 살기 바쁠 때는 부모님 생각을 하지도 않은 불효녀가 이제 다 늙어가니 마음이 점점 부모님한테로 가네요. 이렇게 편하고 좋은 여행의 느낌 부모님은 알고 계실까. 부모님도 같이 느끼게 해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더더욱 간절해지는 건 뭘까요.



늦게 터진 자기애가 비로소 주변을 바라보는 눈을 만들어 줬나 봅니다. 사람 하나하나가 귀하다는 것도, 내가 있는 일상이 모두 귀하다는 것도 알게 됐거든요.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즐거움이 됐고 여행 속에서의 여유는 더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어요. 요즘 늙어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메타버스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하는데 어려워서 안 읽혀요. 배경지식이 없어서이지요. 이번 여름에는 아마도 책들을 싸들고 여행 갈 일이 많을 것 같아요. 흠~.


  

신안 구리도 가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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