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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모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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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Oct 14. 2022

육아 반성문

이제 와서 돌아보니


   

우리 집 큰아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K장녀이다. 젊은 엄마인 나에게는 중풍을 앓는 시누이가 있어서 대소변을 받아내며 수발을 들어야 했다. 또한  일곱 명이나 되는 직원들의 식사와 빨래를 해결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거기에 어린 동생이 둘이나 있어서 엄마는 항상 바쁘고 피곤해 있었다. 큰아이가 생각하는 엄마는 아픈 고모도 돌봐야 하고 동생이 둘이나 있고 일하는 삼촌들 밥도 해야 하니까 그래서 `엄마가 힘들까 봐' 항상 그 문장이 아이의 머릿속에 있었다.


큰아이는 항상 동생들을 챙겼다. 엄마가 힘들까 봐 동생들 이유식도 먹이고 동생들과 열심히 놀았다. 무엇이든 동생들에게 양보했고, 무엇이든 부모님을 먼저 생각했다. 그 어린아이가 그렇게 양보하면서 자라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어린아이가 엄마를 도와주려고 애쓰면서 노력하는 마음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어른이면서 엄마의 힘듦을 다 들키면서 철없이 살아버렸다. 나 사는 게 버거워서 아이를 살피지 않았다.


이제 서른이 넘은 딸에게 " 넌 이제 좀 이기적으로 살아도 돼. 엄마 걱정 하지 마. 무엇이든 너 자신이 행복하면 돼." 진심으로 부끄러이 엄마의 반성하는 마음을 보여줬다.


    

둘째는 달랐다. 이 세상에 엄마 껌 딱지가 있다면 우리 둘째이리라. 곧바로 동생이 생겨버려서 그런지 내 몸에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았다. 어딜 가도 안고 가라고 울었다. 등 뒤에 업으면 엄마 얼굴이 안 보인다고 울었다. 무조건 앞으로 안아줘야 했다.


엄마 껌딱지던 아이가 유치원 갈 때부터는  별명이 여장군이 되었다. 친구들을 몰고 다녔다. 무엇을 하든 간에 앞장섰다. 발표도 공부도 운동도 뭐든 잘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다. 모든 게 확실해야 좋아했다. 대충이 없었다. 무엇을 사주기로 하면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는 게 감히 범접하기 힘들었다. 십 대 어린아이가 정리정돈이 지나쳐서 자신의 물건이 흐트러져 있는 걸 귀신같이 알아챘다. 예민했다. 감성도 지나치게 풍부했다.  같은 질문을 해도 유난스레 답이 달랐다. 그래서 많이 혼났다. 중 학교 때 하교 길에 마중을 나갔다가 "엄마가 너한테 화를 많이 내서 미안해. 엄마는 엄마가 생각하는 정답을 미리 정해 놓았나 봐. 네가 다른 답을 이야기하면 틀렸다고 생각을  해버리니까 혼을 내는 거 같아." 했더니 우리 둘째 "괜찮아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그러는 거잖아, 나도 지금이 처음이라 그래"

    


우리 막내는 영리했다.  큰언니가 양보하고 둘째 언니가 고집 피울 때 막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막내는 모든 일에 다 계획이 있었다. 갖고 싶은 것도 계획을 세워 쟁취를 했고, 하고 싶은 일도 계획 세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해결을 하곤 했다.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았지만 막내는 자기 계획대로 인생을 끌어가고 있었다.


막내의 예상하지 못한 성취에 어른들의 칭찬을 몇 배로 받았다. 조그만 아이가 식구들이 다 잠들면 몰래 일어나서 공부하는 것도 예뻤다. 식물을 좋아해서 콩을 심어 열심히 가꾸고 사랑을 주는 것도 예뻤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단 한 번도 혼나 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글을 쓰다 말고 막내에게

"엄마는 막내에게는 별로 미안한 거 없다. 모든 게 예뻤어.  반성할 게 없네~" 했더니 듣고 있던 막내가 헛기침을 크게 한다.

     

육아 프로그램에서 오은영 박사님은 아이가 다 다르다고 했다.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데 부모는 인정을 안 해서 아이들을 서운하게 한다고 했다. 큰아이의 예쁜 마음을 엄마인 내가 조금만 일찍 알아챘더라면 큰 딸내미를 k장녀로 만들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있다. 둘째의 감수성 예민한 성격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사춘기 때의  그 격렬한 예민함을 이해해 줬을 것이다. 막내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숱한 상황을 이해했다면 정확하게 결론을 내려주고 막내와 더 많은 이야기를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저녁식사 후에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말했다.

"엄마가 요즘 육아 프로그램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어. 엄마가 조금만 생각이 일찍 깨었어도 우리 딸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너희들은 모두 어른이 되어 버렸는데, 엄마가 엄마로서 성장을 이제야 하는 거 같아. 그동안 미안해. 앞으로는 정말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할게. " 내 말에 아이들이 끄덕끄덕 했다. 

"하지만 엄마도 엄마자리에서 우리에게 최선을 다했어요. 우리도 알아, 엄마!!" 딸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미안하고 고마움에 눈물이 핑 돈다. 아이들은 이미 성인이 다 되었는데 나는 이제야 육반성문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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