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돈 항아리는 몰락한 양반집에 갖은 고생을 하면서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책의 주인공인 어머니는 어느 날 부엌바닥이 고르지 않아서 평평하게 하려다가 커다란 항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커다란 항아리에는 은돈이 가득 들어 있었어요. 어머니는 항아리를 부엌 바닥에 다시 묻어 버립니다. 그리고 여전히 가난과 싸우면서 고생고생해서 아들을 키웁니다. 아들은 어머님께 보답하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정승이 됩니다. 정승이 된 후에 중국에서 은돈 천냥을 보내라는 압박을 받게 돼요. 나라에는 그만한 돈이 없었어요. 아들은 고민에 고민을 하느라 몸이 쇠약해지고 있었어요. 어머니께서 아들의 고민을 듣고 은돈 항아리를 꺼내 줍니다. 아들은 묻습니다.
"이 은돈이 있었으면 어머님은 그 고생을 하지 않으셨을 텐데 왜 이걸 묻어 두셨어요?"
어머님이 대답하기를.
"이 은돈이 있었으면 아드님은 정승이 되지 못하셨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막내는 독서일기에
` 고생고생하던 어머니에게 하늘에서 복을 줬다. 은돈 항아리. 그래서 그 돈으로 잘 먹고 잘살았다. 끝. `
다음날 독서일기를 보던 내가 물었다.
"아니 이 내용은 그게 아니잖아. 다시 한번 읽어봐"
다시 책을 다 읽고 난 막내는
귀여운 입술을 뾰로통해가지고
"사실은 은돈 항아리 발견하는데 까지만 읽었어요. 당연히 잘 먹고 잘 살았을 줄 알았어요."
어이없어하며 내가 물었다.
"아니 이건 거짓으로 쓴 거잖아. 이러면 안 되지."내 꾸지람에
"졸려 죽겠는데 엄마가 책 읽으면 독서일기는 무조건 쓰고 자라고 하셔서~"
말끝을 흐렸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썼던 일기장을 들춰 보다가 막내의 독서 일기를 보게 되었다. 막내의 초등학교 1학년때 그날이 사진처럼 떠 올랐다.
"막둥이 이때 진짜 웃겼는데" 나의 추억 속을 더듬는 말에
"맞아 맞아. 막둥이 이때 졸려 죽겠다고 일기 대충 쓰고 잤어." 큰 딸도 한마디 한다.
"초등학교 때는 일기 안 쓰고 자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 둘째도 옛날 생각을 하면서 추억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어릴 때 엄마는 간혹 무서웠다고 성인이 된 아이들이 말한다. 돌아보니 뭐 그렇게 무섭게 아이들을 다그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아이들이 생각하는 엄마는 다른 모양이다.
아이들은 글을 모를 때부터 일기 쓰기를 했다. 엄마가 일기를 쓰니까 큰아이는 곁에서 그림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한글을 배우고는 글자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둘째는 언니가 쓰니까 따라 쓰고 막내는 두 언니가 쓰니까 자동으로 따라 쓰게 되었다. 아이들과 같이 일기 쓰는 시간이 나는 너무 좋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은 일기 쓰기가 재미없어졌다고 한다. 학교 숙제 중에 하나가 일기 쓰기여서 재밌게 쓰던 일기를 아이들은 숙제로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기억에 없지만 엄마한테 일기 안 썼다고 혼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라고 한다. 하여간 그 시절에 썼던 아이들의 일기장이 책장 한편을 메우고 있다.
막내의 공부하던 책들. 21년 전 일기장 나는 60이 다 된 지금도 일기를 쓰거나 메모를 한다. 하루라도 기록이 없으면 불안하다.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재밌는 습관처럼 일기를 쓰게 하고 싶었는데 교육 방법이 틀렸나 보다. 학교 다닐 때 일기를 혼날까 봐 썼다고 하니 벌써 재미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 버린 것 같다.
"아무튼 막내는 은돈 항아리 독서록 이후로 대충 하는 성격이 없어지고
지금은 너무 꼼꼼하고 완벽하려고 해." 큰딸이 생각에 잠겨 가는 내 표정을 깨우는 말을 던진다.
"맞아, 막둥이가 그날부터 되게 꼼꼼해졌어. 끝까지 점검하는 습관도 생기고. 덕분에 공부도 잘하고."둘째 언니의 칭찬에 막내의 어깨가 으쓱해진다.
"숙제로 일기를 쓰라고 했으면 얼마나 쓰기 싫었을까? 그때는 엄마가 몰랐네. 재밌게 쓰는 법을 알려 줬어야 했었네 그렇지?. 어른이 되어서 일기를 쓰면 너무 재밌는데~" 내 일기 예찬론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지인이 떠준 수세미. 아이들 어릴 때 뜨개질 많이 했던 기억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