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강아지가 우리 집에 온 지 8년이 넘어갑니다. 올 때도 이미 서너 살은 되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사람 나이로는 20대 팔팔한 청년이었지요. 지금은 강아지 나이로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작년부터 우리 집에서 상구의 관리 기준이 강화되었습니다.
1. 한꺼번에 산책을 과하게 하지 않기
2. 점프 못하게 계단 놓기
3. 치아 관리하기
4. 슬개골 관리하기
상구 달력에는 약에 관한 기록이 있고 병원 기록이 있습니다. 관리 덕분인지 그동안 상구는 자신이 강아지 인지 말인지 구분을 못할 정도로 뛰고 놀았습니다.
온갖 관리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설사로 며칠 고생을 했습니다. 밥도 잘 안 먹고 기운이 없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소화기관이 약해졌다고 했습니다. 약을 먹더니 바로 괜찮아졌어요. 이번에는 행동이 묘 했습니다. 뒷다리 한쪽을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산책을 하다가 길거리 고양이를 만나 날뛰던 것 밖에는 심하게 다친 적도 없는데 말이죠. 누나들이 귀가하면 온 집안을 달리면서 반가워하던 아이가 기운 없이 ‘오셨어요?’ 하는 표정으로 얼굴만 내 밀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잠만 잤습니다. 다리를 다쳤나 싶어 만져보고 눌러봐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간식으로 꼬드겨 달리기를 시켜보면 훅 달려와 먹고 갑니다. 그런데 그때뿐이었습니다. 바로 ‘기운 없어요.’ 하는 표정으로 발 한쪽을 들고 세발로 슬슬 걸어 다닙니다.
수의사 선생님이 여기저기 만져 봅니다.
“뼈는 이상이 없는데. 슬개골도 괜찮고~ 상구가 노견이라 신경통이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이틀 간격으로 병원에 와서 약 먹고 주사도 맞는 것으로 해 봐야겠어요.” 큰딸은 집을 나가있는 두 동생들에게 전화를 합니다.
“우리 상구가 노견이라 신경통이 온 것 같다고 하셔. 주사 맞고 약 먹고 지켜보기로 했어.”
전화를 끊고 딸이 말합니다.
“엄마. 나 동생한테 상구 소식 전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어.” 그 말을 듣는 나도 그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상구 기운없어요
어제는 퇴근하고 보니 상구 약 보따리가 있습니다.
“엄마, 나 조퇴하고 상구 병원 갔다 왔어. 다행히 좋아지고 있대요.” 큰딸이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상구가 네발로 다니고 있었습니다. 깡충거리면서 뛰기도 하고요.
“엄마. 반려견이 아픈데도 이렇게 슬픈데 내 자식이 아프면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이제 서른을 갓 넘긴 딸내미한테 듣는 따뜻한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생들에게 우리 서로 건강 잘 챙기자고 말했어. 엄마, 아빠 마음 아프지 않게~” 그 말을 듣고 나는 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너무 감동인데~”
내가 어렸을 때 생각이 났습니다. 십 오리를 걸어서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읍내의 학교까지 가려면 아침을 단단히 먹고 가야 했지요. 괜히 심통이 나면 엄마한테 복수하는 기분으로 아침을 먹지 않고 갔습니다. 하교해서 돌아오면 엄마는 여지없이 내 등짝에 스매싱을 날렸습니다.
“에구 이것아!! 아침을 안 먹고 가서 하루 종일 이렇게 어미 속을 태워야 쓰겠어? 왼 종일 얼마나 배가 고팠을 거여. 얼른 앉아서 밥부터 먹어!!” 그때는 주변에 가게도 없었고 사 먹을 돈도 없어서 종일 굶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심통을 부린 이유가 뭐든 간에 상관없이 자식이 하루 종일 배곯았을 생각에 친정어머니는 애가 타 있었습니다. 대뜸 숟가락을 먼저 손에 쥐어주고 어머니는 교복을 벗기셨습니다. 그리고는 심통을 부린 원인을 따지지 않고 거의 다 들어주셨습니다. 대부분 쓸데없는 무언가를 사 달라는 것이었지요.
큰 딸에게 엄마가 어릴 때 할머니 속을 상하게 하려고 일부러 아침을 안 먹은 얘길 했습니다.
“에잉~ 엄마 할머니한테 전화해. 그때 미안했다고 얼른 말해”
우리 딸들은 상구 덕분에 점점 효도가 늘어 가고 나는 딸들 덕분에 친정어머니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기운 차린 상구머리를 쓰다듬으며 말도 안 되는 당부를 합니다. 진심을 꾹꾹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