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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모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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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Dec 31. 2022

내가 장군의 말도 아니거늘

졸다가 졸다가

일단 어제저녁부터 굶었더니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늙으면 밥심이라더니 실감을 하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위내시경을 하는 날이다.


미라클 모닝을 한다고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괜히 긴장해서 책도 못 보고 시간만 보내다가 예약 시간이 다 되어서 버스를 탔다. 주말이라 배차 간격이 너무 멀다. 조금 앞차를 타자니 40분을 기다릴 것 같고 다음차를 타자니 너무 빠듯했다. 그래도 추운데 떨기보다는 다음차를 택했다. 주말인데 도로가 막힐 이유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내 예상과는 달리 차 안은 만원이고 어쩐 일인지 버스는 천천히 갔다. 9시에 병원에 도저히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침 갈림길 정류장이 나와서 얼른 내렸다.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달려 5분 전에 병원에 도착했다.


택시까지 타고 도착한 병원에는 예약을 했음에도 일단 앉아서 기다리란다. 사람이 너무 많다. 나처럼 올해를 넘기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다. 택시 타고 온 것을 후회하면서 한참을 기다렸다.  이윽고 이름이 불리고 나니 일사천리로 건강검진이 진행되었다. 위내시경 호스가 목안으로 들어가는 그 느낌이 싫어서 수면 내시경을  예약해 뒀다. 마취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잠이 안 들면 어쩌지. 호스의 공격이 느껴지면 어쩌지. 걱정하는 사이 젠장, 나는 꿀잠을 자 버렸는지 아무 기억도 안 났다. 몇 분이 지났느냐고 물으니 15분 지났단다. 그런데 이렇게 꿀잠을 잤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개운 하기까지 했다. 갑상선 초음파 검사다. 아이코 목이 차다. 혈압이 높아서 경동맥 초음파까지 했다. 의느님 하라는 대로 했다. 병원 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녔더니 시간은 금방 갔다. 배에서는 이제 대놓고 밥 달라고 꼬르륵 소리를 냈다. 내가 민망해하자 위에 가스 제거하는 약을 먹어서 더 그럴 것이라고 간호사선생님이 위로를 해 준다.



병원을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먹을 것을 사가지고 가기로 했다.

동지죽을 못 먹고 지났으니 옹심이 팥죽을 사기로 했다. 그래도 빈 속이니 죽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얕은 지식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다. 배차간격이 멀어서 집 앞으로 가는 버스는 어차피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팥죽을 사고도 40분을 기다려서 집 앞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20분쯤 걸어도 되는 거리로는 버스가 많다. 그 거리를 걷기 싫어서 굳이 40분이나 기다려 집 앞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한 것이다. 살짝 어지럽지만 그래도 견딜만했다. 의사 선생님이 어지러울 것 같으면 병원에서 쉬고 가라고 했는데 뭐 이 정도쯤이야 견딜만하다는 생각이었다.



버스에 오르니 좌석은 많다. 하긴 거의 종점에서 탔으니 빈자리가 많은 게 당연하다. 일단 자리에 앉으니 편안하다. 그리고 따뜻하다. 밖이 영하 10도였는데~~ 마취가 이제야 깨는지 졸려서 미칠 것 같았다. 참아야 하는데 참아야 하는데~ 꿀잠을 잔 지 얼마 안 지났는데 이렇게 졸릴 수가 있을까 싶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문득 귓가에 "이번 정류장은 00 주유소 앞입니다."가 들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렸다. 단 몇 초 만의 행동이었다. 빠르기가 번개와도 같았다. 우리 집이 살짝 외진 곳이다. 버스 노선이 그리 많지는 않다. 코로나 때문에 줄어든 노선은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주말에는 더더구나 배차 간격도 멀어서 집 앞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항상 인내심이 필요하다.  나는 그 기다림이 싫어서 평소에 항상 이곳 주유소에서 내려 20분을 걸어간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출퇴근길에 애용하는 정류장이다.


바람이 싸하다. 버스는 휑 지나는 게 아니고 궁둥이를 내 앞으로 향하면서 우리 집 쪽으로 내려간다.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든다. 집 앞으로 가는 버스를 탔으면서 왜 내린 것이냐~ 내가 김유신의 말도 아니거늘 익숙한 단어에 몸을 내렸다니, 졸음이 원수구먼.


부럽다 상구야 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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