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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모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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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Apr 04. 2022

봄은 쑥이다.

엄마의 쑥 개떡 


       

봄이면 떠오르는 게 쑥이다. 얼은 땅을 뚫고 쫑긋 이파리를 내밀 때부터 쑥은 어여쁘다. 초록에 하얀 면사포를 쓴 듯 보송보송한 솜털을 입고 봄과 함께 올라온다. 나는 고운 쑥을보는 것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먹는 것도 좋아한다. 쑥이 모습을 드러내면 매일 밭길을 지나면서 얼마나 자랐는지 관찰을 한다. 이파리가 바람에 나풀거리면 바구니를 들고 밭둑에 앉는다.아직은 흙이 덜 녹아서 손이 시리다.쑥을 한 모둠을 잡고 잘 드는 과도를 집어넣어 쓰윽 잘라내면 손안에 담긴 보드라운 몸이 느껴진다. 몸을 뺏긴 쑥 뿌리에게 들킬세라 얼른 집안으로 쑥바구니를 들고 들어온다. 봄쑥은 약이라고 하더니 정말 쓴맛이 강하다. 주물주물 문질러서 쓴맛을 빼낸다. 쓰디쓴 초록빛 물이 다 빠지도록 건져놓은 소쿠리를 두어 번 탁탁 내려친다. 그리고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물에 된장을 풀어 넣고 잘 씻긴 쑥을 넣는다. 온 집안에 쑥향기가 그득하다. 웬만한 향수보다 좋다.    

      

어릴 적 나는 하굣길에 쑥을 한줌씩 쥐고 들어왔다. 논두렁 밭두렁의 쑥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부엌 옆 쪽마루에 쑥을 캐어다 모아두면, 어느 날은 개떡으로 나의 간식이 되어있고 어느 날은 쑥 버무리로 어른들 새참이 되어있다.  . 지금도 친정어머니는 봄만 되면      

"큰 아야~ 고속버스로 쑥반죽 얼려서  보냈다. 찾아서 맛있게 먹어라" 하시며 불쑥 전화를 하신다.   

  

친정어머니는 뭐든 쉽게 잘 만드셨다. 새벽 잠결에 코끝으로 쑥 삶는 향기가 스몄는가 싶으면 어느새 떡이 완성 되어있다.  아침을 못 먹는날엔 꼭꼭 천천히 먹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시며 재빠르게 미리  만들어진 개떡을 손에 쥐어 주셨다. 집을 나설때는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등굣길을 한시간쯤 걷다보면 배가 고파졌다. 그 때 야금 야금 개떡을 베어물고 걸어간다.  달달하고 쑥향기 짙은 개떡이  싸하게 넘어가는 목넘김. 그 때 먹은 개떡 맛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어머니는 자식들의 배고픔을 걱정하셔서 이른새벽 꼭 주전부리를 만들어 놓으셨다. 봄이면 그렇게 아침마다 쑥으로 우리들의 간식이 만들어 지곤 했다.    



     

그렇게 쑥을 좋아 했으면서도 어느 날부터 나는 쑥을 캐지 않았다. 쑥 무더기 속에 움트리고 있던 뱀을 만지고 나서 부터였다. 쑥인 줄 알고 손을 넣었는데 꿈틀~ 뱀의 서늘한 촉감이 느껴졌다. 지금도 가끔 그때 뱀의 촉감을 꿈속에서 느낀다. 그  날 놀래서 내가 버리고 온 소쿠리와 부엌칼은 지금도 고향땅 어딘가에 묻혀 있으리라 .               

 다시 쑥을 기다리기 시작한건 순전히 아이들 때문이다. 쑥을 캐는것은 아이들과 나의 놀이였다. 쑥을 캐면서 엄마의 어릴 적 쑥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고  몸에도 좋은 것이라고 설명을 해 준다. 딸만 셋인 우리집엔 쑥이 떨어지지 않는다.  쑥은 따뜻한 성질이라 어혈을 풀어주니 생리통에도  좋은 것이라 해서 자주 먹인다. 쑥 국을 해 먹이고 삶아 말려서 쑥 차를 해 먹인다. 요즘 카페에 가면 유행처럼 있는 쑥 라떼는 진작에 우리집에서 좋아하는 차 였다    

     

정성 가득한 어머니의 봄쑥은 손주들의 영양간식으로 변한다. 통깨와 아몬드를 갈아 고명으로 넣고 송편을 만들고, 개떡을 넉넉히  만들어서 친구들을 부르기도 한다.  집에 갑자기 손님이라도 오게되면  쑥 부꾸미와 꿀을 곁들여 다과상을 만든다. 우리집만의 고유한 다과상이다. 봄마다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나에게 봄 향기는 쑥 내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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