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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Oct 27. 2021

지니 야! 나와라~

글을 쓰고 싶어요



 묘하게 기분이 가라앉는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니다. 내 삶이 팍팍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이 가라앉는다. 아무리 듣기 좋은 말을 들어도 마음이 심드렁하다. 내 피 같은 아이들에게 좋은 일이 생겨도 기쁨을 못 느낀다. 그토록 좋아하는 커피를 마셔도 생각이 없다. 깊은 생각이 없으니 마음과 행동이 따로 논다. 이렇게 땅 밑으로 조금 내려 가버린 내 마음을 들킬까 봐 사람들을 피한다. 이런 게 우울증이라면 나는 해마다 11월에 나도 모르는 이런 기분에 쌓여서 산다.

        





열아홉 살 고3에 나의 꿈은  깨졌다. 문예창작과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신 것이다. 글을 잘 써보려던 마음이 상처를 받았다.  겉으로는 국어 선생님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럴듯한 밥벌이가 필요했다. 내 속의 또 다른 나는 밥벌이 아닌 소설가로 살고 싶었다. 그렇게 비밀스레 야무진 인생을 계획을 해 두었다. 그런데 대학에 떨어지고 나니  갈 길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게 두려웠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않은 길을 나서기가 겁도 났다. 진로를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내 인생은 학력고사 점수가 지정하는 곳으로 정해 졌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글을 제대로 한 번만이라도 배워보고 싶은 열망은 계속 내 안에 끓고 있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생활을 포기하고 결과를 모르는 글쓰기에 매진할 자신감도 없었다. 내가 그만큼 글쓰기에 인생을 걸어도 되는지 나 자신을 의심했다. 책상 위에는 쓰지도 않을 원고지만 쌓여갔다. 그 해 겨울 첫눈이 오는 날 신문 한 조각이 바람에 날려 발등에 부딪혔다. 신춘문예 당선작이라는 문구가 눈 안으로 들어왔다. 가판대로 뛰어가 신문 한부를 샀다. 가슴이 뛰었다. 신문을 들고 단숨에 읽었다. 그때 나는 내 할 일을 찾은 듯이 가슴에 불덩이가 타오르고 있었다. 머릿속이 빨라졌다. 일 년에 한편씩 십 년만 응모하면 열 편의 습작을 하게 된다. 아, 그것이면 족 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삶이 재밌었다. 무엇을 해도 그것은 내 글의 영양분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해도 나는 당당했다. 내 마음속엔 또 다른 내가 글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언제든지 변신할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내 삶은 글밭을 일구고 있었고, 결국 언젠가는 수확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이십 대의 자존심은 당시 신문의 대장이던 D일보를 겨냥하고 소설을 썼다. 몇 해 동안 그곳에 응모를 했다. 당연한 낙방이었다. 다음 해 에도 그다음 해에도 계속 낙방이었다. 어느새 나는 전국에 있는 지방신문 모든 곳에 응모를 하기 시작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당선작 발표를 기다렸지만 언감생심 심사 후보작 명단에도 없었다. 시들하고 슬픈 시간은 다시 오기 시작했다.

           

당선자들의 나이가 나보다 훨씬 많았을 때 나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었다. 인생의 경험이 많은데 나보다 잘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몇 년 뒤 당선자들의 나이가 나랑 비슷해지니 슬슬 불안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불안을 떨구려 더 열심히 책을 읽고  습작을 했다. 그러다가 당선자들의 나이가 나보다 어려지기 시작하니 가슴이 아릿해지는 서운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글을 써보지도 못하고 보내버린 세월이 야속했다. 몇 해 동안 써놓은 글이 없어서 신춘문예에 도전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속의 나를 배신한 나는 어느새 포기라는 단어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글에서 이미 멀어진 인생을 살고 있었다. 삶이 먼저다. 돈이 먼저다. 책임감이 먼저다. 글은 이제 사치다. 내 마음에 가둬둔 램프 속의 지니다.

            

언젠가부터 11월만 되면 내 몸은 격하게 우울에 빠지기 시작했다. 몸이 아는 11월의 우울은 한 달 내내 나를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었다. 원고를 들고 초조하게 퇴고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 일이 없으니  할 일을 잃은 사람 같았다. 아이들이 주는 기쁨도 우울을 이겨내지 못했다. 30년을 훌쩍 넘기며 같이 살고 있는 남편도 나의 이유 없는 11월을 무서워했다. 더욱이 나는 해마다 11월이 짐처럼 느껴져 고독의 수렁에 빠져있기 일쑤였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우울이었다. 그 누구도 공감하지 못할 우울이었다. 길가에 떨어진 홍시처럼 일그러진 나를 보는 게 힘들었다.  

  

글을 써야 낫는 병이었다. 썼다는 만족감에 저절로 나을 수 있는 병이었다. 책장 속에서 빛을 보진 못하더라도 몇 줄이라도 써야 치유되는 아픔이었다. 확실하게 어찌해야 할지 알고 있으면서도 치료하지 못한 병이었다. 아는 병이었으면서 일부러 살펴주지 않고 내버려 두고만 있었다.  이십여 년의 11월을 보내는 사이에 나는 이 우울을 기다리고 있게 된 것 같았다. 11월만 되면 온 마음으로 글만 생각하고 있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듯했다. 써야 한다는 부담까지도 어느새 즐기고 있었다.  

    

요즘도 나는 나 대신 꿈을 이룬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작품을 찾아서 읽는다. 몇 년 전 D일보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김혜진 작가의 ‘목화 맨션’ 소설 속에 나오는 한마디가 그나마 나를 위로한다. ‘뭐든지 남들보다 천천히 한다고 생각하면 돼. 아무 문제없어요’. 이제라도 내 안의 램프에 손을 대어 보아야겠다. 천천히 오래오래 문질러도 지니는 나오지 않고 램프에 구멍이 날지도 모른다. 그런들 어떠랴 내가 글을 쓰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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