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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모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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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Jul 19. 2021

운동화여, 너에게 감사한다.

편한 게 좋은 것이여.

  

신발장을 열어 본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다가 시선이 머무는 곳. 몸 상태가 안 좋거나 기분이 우울한 날 나도 모르게 꺼내 신는 운동화가 있다. 한 6~7년 되었을까. 그 운동화는 이미 낡았다. 앞부리도 두 번이나 떨어져서 강력 접착제로 붙여서 신은지도 오래되었다. 바닥의 타원형 무늬는 다 닳아서 그냥 긴 줄로만 느껴진다. 발등의 천도 낡아서 힘만 세게 주어도 찢어질 것 같다. 운동화 끈은 아무리 탈색을 해도 원래 노르스름한 색인 것처럼 제 빛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화는 나를 가장 편하게 한다. 신발장 정리를 할 때마다 버릴까 말까를 고민하지만 내가 편하고 싶은 날 나도 모르게 꺼내 신는다. 그날의 패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도 발의 편안함이 그날의 멋짐을 대신해주곤 했다.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한다. 마음이 답답할 때 길을 나선다. 괜스레 울적하거나 혼자 생각이 하고 싶을 때 편한 운동화를 찾아 신고 길을 나서곤 한다. 고향의 기나긴 논길을 하염없이 걸어 다니면서 자란 탓일까, 등에 땀이 살짝 배어 나올 때까지 힘껏 걷고 나면 생각의 전환이 이뤄지기도 하고 기분이 가뿐해지기도 한다. 나에게 걷는 것은 편안한 일이다. 그 편안한 마음을 만들어 주는 일에는 운동화의 공이 크다. 어떤 운동화는 멋지고 예뻐도 발이 편하지 않아서 고생이다. 비싸고 좋은 운동화라고 해서 신었다가 발톱이 빠진 적도 있다. 그래서 편한 운동화를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언제 또다시 내 발에 꼭 맞는 그런 운동화를 만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발이 특이한 것은 아니다.  발가락이 긴 것도,  발볼이 넓은 것도 아니다. 발등이 두텁거나 유난한 칼 발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참을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운동화만은 편안한 걸 찾기가 어렵다. 무엇인가 딱딱하게 발끝에 부딪히는 느낌이 싫고, 뒤꿈치를 깎아내리는 듯한 느낌도 싫다. 바닥이 너무 얇아서 땅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도 싫고 굽이 높아서 하늘에 내 몸이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싫다. 신발가게에서 이것저것 신어보고 구입을 해도 내 몸은 느낌을 조금 늦게 준다. 그 당시에는 좋은듯하여 사들고 와서 걸어보면 조금 후에서야 불편함을 느낀다. 웬 까다로움이냐고 핀잔 들을 것을 두려워하여 대부분 그냥 두고 신는다. 그러다 보니 신발을 자주 사지 않는다. 새 운동화도 내 발이 적응을 하여 이제 신을 만하다 싶으면 다 닳아 있다. 그제야 버리고 새 신발을 산다. 새 신발을 사더라도 며칠은 그냥 두고 본다. 눈에 정이 들때까지는 덥석 꺼내  신지 못하는 주저함이 있다.


그러니 내 사랑 낡은 운동화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내 몸이 정말 아플 때 꺼내 신으면 편안하다. 출근하기 싫게 몸이 무거운 날도 꺼내 신으면 조금은 몸이 가벼워진다. 이 운동화랑 함께하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발에 익숙해서 그날의 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너무나 익숙해서 가치를 몰라주었던 것이기도 하다.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었으니 얼마나 소중한 것이던가.


 사람을 만나도 그렇다. 친구가 별로 없다. 새로 사귀는 건 무조건 어렵다. 그만그만한 친절을 베풀면서 이어지는 관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마음을 기댈 친구는 별로 없다. 결이 비슷해서 마음을 이해하는사람을 만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놓치기 싫어 아까워한다. 내 발을 편하게 하는 운동화보다 마음을 편하게 하는 사람이니 오죽이나 귀할까. 


오늘 새삼 운동화 너에게 감사한다.  운동화여, 나의 한때를 살게 해 주었으니 영원히 너를 기억하겠노라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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