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없어요?

없는데요~

by 파인트리


아침 7시 반 초인종이 울렸다.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켜준 택배 기사님 이시다.

기사님은

"사람 한 명 내려와 주세요." 하셨다. 우리 집은 참고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2층이다.

출근 준비를 하던 큰아이가 총총 내려갔다.

큰딸은 나이는 서른둘이지만 작고 말랐다.

얼굴은 지나치게 동안이다.

큰딸을 본 기사님은 어이없어하시면서

"남자 없어요?" 했다.

"남자 없는데요."

큰딸은 트럭 위에 실려있는 서랍장을 보았다.

컸다. 하단 120cm 5단 서랍장이었다.

기사님은

"일단 내립시다."


트럭에서 서랍장을 내렸다. 다시 계단 5개를 올라와 공동현관으로 들어오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뒤에서 밀어주고 잡아주던 큰딸은 이거 큰일 나겠구나 싶게 무거움을 느껴야 했다.

현관으로 간신히 끌고 들어왔다. 이미 땀범벅이다.

기사님은 땀을 닦으면서

현관 앞에 에베레스트 같은 계단 일곱 개가 더 있는 것을 보더니 버럭 하시는 말씀

"이거 도저히 못 올려요. 남자분들 오셔서 올리라고 하세요. 저는 여기까지 밖에 못 해 드려요."

잡아 주면서 무게를 느꼈던 터라 큰딸은 아무 소리도 못했다.


부랴부랴 택배비를 지급하고 `지나는 길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라는 메모를 긴급히 써 붙였다.

그리고 온 가족은 집을 비웠다.


가구회사 홍보 사진


새벽 다섯 시 반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는 내게 카톡 폭탄이 떨어졌다.

"아빠 오늘 안 계시는데 서랍장을 왜 받는다고 했어요."

"엄마 서랍장 치수 확인은 하신 거 맞으세요?"

"엄마 오늘 연장도 회식도 금지야. 빨리 퇴근해요."

"물건 구입할 때 어디에도 남자가 한 명 있어야 한다고는 없었다. 기사님이 집안까지 직접 배달해 준다고 했다."라고 변명을 해도 딸들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단순히 튼튼해 보여서 구매하게 된 허술한 구매 방법을 사죄하기에 이르렀다.

"알았어. 일찍 퇴근할게."


우리 집의 남자는 남편과 강아지 상구뿐,

그나마 상구는 남자도 아니고 중성이다.

남편은 지방에서 다음날 올라온다.

상구는 개뿔, 힘을 보태기는커녕 짖기만 하다가 진을 빼고 있을게 뻔하다. 서랍장은 공동 현관에 떡 버티고 있으니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했다.



상구


총알퇴근을 하고 공동 현관에 버티고 있는 서랍장을 보니 아, 힘들겠다 싶었다.

어쨌든 내일 까지 두면 안될 거 같았다. 너무 커서 통로를 절반쯤 막고 있었다.

딸 셋과 모여서 작전을 짰다.

"먼저 해부를 하자. 서랍장을 한 개씩 빼서 이동을 시키고 몸체 이동을 하면 들 수 있을 거야.

얼른 박스를 뜯고 서랍장을 뺐다.

어랍쇼? 튼튼하다더니 서랍장이 빠지지 않는다. 무슨 고정 레일인가 그런 거란다.

딸들과 다시 머리를 맞댔다.

일단 한번 들어보자 넷이 각자 귀퉁이를 잡고

"하나 둘 셋."

"끙"

움직이지 않는다.


"엄마 사과문 써 붙이고 아빠 기다리자. 아니면 이동시켜 줄 센터 부르자."

"더 늦기 전에 옮기던지 포기하던지 하는 게 맞아"

"조금 있으면 퇴근시간이라 사람들 들어올 텐데."

망설이던 나는

"아녀 해 보자 할 수 있을 것 같아."

"계단만 올리면 엘리베이터로 이동하고 바로 문 앞이니까 끌면 돼." 딸들을 설득했다.

일단 버려도 좋을 담요를 가져왔다.

서랍장 밑에 담요를 깔고 계단 앞으로 당겨 왔다.

요즘 헬스로 몸을 다진 막내와 큰딸은 밑에서 받치고 둘째는 담요를 당기고

나는 앞을 한 칸씩 계단 위로 올렸다.


세 칸쯤 올렸을 때 하중이 아래로 쏠리면서 큰딸과 막내가

죽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

"말하지 마!! 기운 빠져!!" 딸들을 단속시키면서

"한 칸만 더 올리면 서랍장이 서 있을 수 있다. 올려보자."

"하나 둘 셋!!"

네 칸까지 겨우 올려서 약간 세우는 중심을 잡아 잠시 쉬었다.

다시 한 칸을 더 올리고 결국 마지막 칸 까지 모두 올렸다.

환호!!!

와. 올라왔어. 영하 14도에 세 딸과 나는 더워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 있었다.

엘리베이터로 이동해서 집안까지 들여놓는 데는 영차!! 영차!! 담요 끌어당기기로 마무리했다.


책이 많아지면서 아무리 정리를 해도 책이 넘쳐났다.

거기에 겨울이라 다섯 식구 옷들도 넘쳐나던 방이 단숨에 정리가 되었다.

끌어올리느라 힘들었던 순간은 금방 잊고 깔끔해진 방안 분위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딸들의 핀잔은 계속되었다.

"엄마! 다시는 무모한 구매를 삼가시지요."

"엄마! 다시는 이런 어려운 상황 만들지 말아 주세요. 택배 기사님 난감해하는 걸 엄마가 봤어야 하는데~"

"우리 집 최고 말썽꾸러기는 우리 엄마야!! 그렇지 상구야? "


이런~

딸만 셋 낳았다고 구박받을 때 아들을 낳으려고 노력을 했어야 했나? 슬쩍 후회된다.



자리 잡은 서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