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어렸을 때였다. 공원 놀이터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 병을 앓던 시누이와 세 살이 되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큰아이에게 온 신경이 가 있었다. 순식간에 아이가 미끄럼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밑을 내려다보더니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겁에 질린 소리였다. 아이의 울음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간식 과 겉옷이 담긴 가방을 공원 의자위에 팽개쳐 둔 채 아이에게 달려갔다. 아이를 달래고 미끄럼틀 타는 법을 가르쳐주고 몇 바퀴를 신나게 탔다. 한참 뒤에야 가방이 놓인 의자를 쳐다보니 가방이 홀쭉하다. 내 겉옷이 없어졌다. 그 옷 속엔 지갑이 있는데~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 졌다. 아이 손을 잡고 시누이를 찾아 의자로 가서 보니 역시 내 옷은 없고 간식 도시락만 있다. 지갑엔 얼마의 현금과 30여 년 전 그때 막 보급된 신용카드가 있었다. 전화기도 없어서 신고할 방법도 없었다. 정신없이 아이를 업고 시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시간이 한참 흘러갔다.
은행으로 부랴부랴 분실신고 전화를 했다. 벌써 오백만원 가까이 카드는 사용 중이었다. 내가 사용한 게 아니라고 분실했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변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때 만해도 감시카메라가 없으니 범인을 찾을 길도 없었다. 모두 백화점에서 사용된 것이었다. 몇 천원 쓰는 것도 온갖 계산기를 두들기며 살던 나에게 몇 백 만 원짜리 옷값이라니 억울함에 손발이 저릿저릿했다. 머릿속이 텅 비어 정말 하얘졌다.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당장 다음 달에 메꿔야할 카드 값에 놀라고 억울함에 가슴이 답답했다. 꼼꼼하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필 겉옷을 왜 벗어 놓았는지 나를 책망했다.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고 퇴근 후에 돌아온 남편에게는 뭐라 말할지 걱정만 늘어 갔다.
그날따라 강원도 출장길을 다녀온 남편은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속 배추 겉절이에 뚝배기 밥을 해서 저녁상을 차렸다. 뭐라 말을 꺼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힘들게 일하는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사고를 쳤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어린아이를 업고 나가서 몰래 카드 값을 벌어올까 생각도 해봤다. 그러기에는 아이는 너무 어리고 아픈 시누이는 내가 필요했다. 눈치 백단인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지?" 나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한참을 울다가 공원에서 카드를 분실한 이야기를 했다. 분실신고 할 때 이미 누군가 오백만원 가까이 카드를 긁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남편은 가만히 얘길 듣더니 "다친 곳은 없어?"라고 물었다. “당신은 원래 마음이 급하면 덜렁대다가 부딪혀서 다치잖아." "없어.” “ 그럼 됐어. 아무도 다친 사람 없으면 된 거야.”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우는 나를 남편은 몇 마디 말로 달랬다. “카드 값이야 은행에서 우리보고 갚으라면 어쩔 수 없지. 갚으면 돼.”
그날부터 난 백 팩을 멘다. 중요한 것은 모두 가방에 넣고 메고 다니는 게 좋았다. 가방을 내려놓지 않는 한 절대 잃어버릴 일도 없다. 남편에게는 평생 마음의 빚을 졌다. 고맙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절대로 말로 표현 한 적은 없다. 우리가족은 아무도 모른다. 내가 백 팩을 좋아하는 이유를. 남편이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용서하고야 마는 진실을. 아마 영원히 모를 거다.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