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항상 짧은 커트인 내 머리를 만지시며 미용실 원장님이 한마디 하신다.
“오늘은 어떻게 해 드릴까?”
“뒷모습만 예쁘게 해주세요.”나의 한결 같은 대답에
“왜 항상 뒷모습을 예쁘게 해 달라고 하세요?” 물으신다.
나는 또 씩 웃으며 대답한다.
“화장실마다 써 있잖아요. ‘사람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그래서요.” 원장님은 숨이 넘어갈 듯 한참을 웃으신다.
“내 뒷모습은 알 수가 없으니 원장님께 맡겨 놓으면 안심이 되잖아요.”나는 조용히 말한다.
뒷모습 얘길 하다 보니 여고시절 국어 선생님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국어 시간에 책을 읽어 주시다가 가끔 감상에 젖곤 했다. 갑자기 창밖을 하염없이 보시다가
“얘들아 모두 창가에 모여 봐. 저기 하늘에 구름이 노래 부르는 것 같지?” 하면서 우리들을 창가에 매달리게 했다. 가끔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낭송 하시다가 밖으로 나가자 하셔서
다 같이 손을 잡고 서로의 손바닥의 온기를 느끼며 천천히 걸어 보라고도 했다. 아주 천천히 친구의 마음이 느껴지는가 집중해보라고 했다. 그 때마다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걸었다. 초등학생도 아니요. 여고 2학년이나 된 나를 다정하게 부르시고 벌겋게 얼굴이 달아올라 수줍어 하는 내손을 꼬옥 잡으셨다.
그 날 선생님은 웨이브가 살짝 들어간 긴 머리에 꽃무늬 원피스를 입으셨다. 바람에 살짝 풍기는 기분 좋은 샴푸 냄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향수 같았다. 선생님의 큰 키와 잘 어울렸던 쉬폰 원피스 치맛자락이 살살 걸음 따라 움직였다.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살짝 선생님을 올려다 봤다. 선생님의 뒷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선생님의 뒷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는 자꾸 선생님보다 한 발짝씩 천천히 걸었다. 선생님은 부드럽게 내손을 쥐고 있었고 나는 손가락 끝까지 부끄럼으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유난히 수줍어하는 나를 불러내 일부러 시를 낭송하게 하고, 일부러 발표도 많이 시키고, 일부러 자꾸 손을 잡고 다니셨다. 작정하고 나의 담력을 키워 주려고 하신듯했다.
사춘기 여고 2학년 아이는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처럼 선생님이란 직업을 갖고 싶었고, 선생님처럼 어디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찾아서 챙겨주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언제 보아도 마음이 아름다운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뒷모습 예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사람의 뒷모습도 인격의 한 단면이라는것을 깨닫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때 였다. 세상 풍파에 흔들려도 올 곧게 내마음을 가꾸어야 좋은 인상을 갖게 된다는것도 중년의 나이를 넘겨서야 알게 되었다. 뒷모습까지 아름다울 수 있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의 연륜이 더해질수록 느끼게 되었다. 선생님의 뒷모습은 따뜻한 성품과 자애로움이 온몸으로 퍼져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결국 나는 선생님도 되지 못했고, 선생님만큼의 인격과 품위를 갖춘 어른도 되지 못했다. 누군가 나에게 속 마음을 얘기 하려고 하면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지레 겁을 먹는다 .그리고는 내가 먼저 속이 덜덜 떨리는 것을 애써 참으면서 들어주는 덜 익은 어른이다. 이렇듯 마음이 덜 익었으니 보여 지는 내 모습 또한 어설픈 어른일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뒷모습에 집착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내 인격으로 안 되는 뒷모습을 미용실 원장님 손에 맡기려는 얄팍한 속마음을 감춘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