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세요.

그럴 거면~

by 파인트리

한 사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이는 83세. 우리 어머니. 엄동설한 북풍이 몰아치는 겨울 내내, 꽤나 큰 마당에서 부엌까지 짚단을 날라다 불을 지펴야 했다. 다 큰 장정 시동생이 세 명이나 방에 누워 있어도 어느 누구 짚단 한 단을 날라다 준 적이 없었다. 읍내에 나가면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혼을 내던 시어른들 때문에 신발이 다 닳았어도 한겨울에 시동생들이 버린 고무신짝을 끌고 다녀야 했다. 따지면 하나부터 열까지 억울한 거 말로 다 할 수 없다.

서러움이 복받칠 때마다 엄마의 화살은 아버지를 향한다. 당신은 어디서 뭐 했냐? 마누라 손등이 다 터지게 이불 빨래를 하고 다녀도 동동 구루무 한통을 사줘 봤냐? 발가락이 삐져나온 신발을 끌고 다녀도 신발 한 짝을 사줘 봤냐? 허구 헌 날 한량이 따로 없지. 동네 주막에서 막걸리나 마시고 있고, 마누라는 칠, 팔월 땡볕에 땀 뻘뻘 흘리면서 들판에서 일할 때 멀끔하게 차려입고 읍내 나가서 해 떨어지면 들어오고, 죽어라 일하고 온 사람한테 저녁 늦게 준다고 버럭버럭 화를 내고.....


그런 사람이 당신이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랑 60 평생을 살았으면 이제는 같이 살아줘서 고맙다. 60년 동안 삼시세끼 차려 줬으니 고맙다. 이런 말 한마디라도 해주면 내가 얼마나 좋아할까. 그런 인사치레 같은 말은 한마디 없고 지금도 밥 늦으면 화내고, 잘하는 거 하나 없다고 틈만 나면 무시하고....


불이야~

84세 아버지와 83세 어머니의 부부싸움의 끝에는 어머니의 신세타령이 전화기를 타고 온다.

우리 오 남매는 두말없이 어머니의 편을 든다.

“엄마 고생이 너무 많았네. 엄마 이제 그만 아빠랑 이혼하고 편하게 사셔~”

“아빠가 너무하셨네.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어? 우리 엄마가 얼마나 영특하고 지혜로운 분인데 아빠는 그걸 모르셨나 벼.”

“그렇게 몰라주는 무정한 사람이랑은 이제 그만 이혼하셔요. 아빠도 우리가 따로 모시고 엄마도 따로 모실께. 싸우지 마시고 편하게 따로 사셔요.”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다시 전화를 한다.

“엄마. 이혼서류 준비해서 이번 주말에 가지고 내려갈게요. 그리고 나 출근하니까 나중에 전화할게."

전화드린 사실도 잊어먹고 나는 세상살이에 묻혀버린다.

그리고는 부모님 부부싸움을 깜박 잊어 먹고 지낸다.


며칠이 지나면 또 어김없이 울리는 전화벨소리.

“야야 오늘 아버지랑 맛난 거 해 먹었다. 오지 마라.” 명랑한 어머니 목소리다.

“ 왜 그랬어? 이쁜 짓은 한 가지도 안 하신다는 아버지를 뭐 때문에 맛난 거 해드렸어?”심드렁한 내 말투에

“그래도 너희 아버지만 한 사람도 없어. 착하지. 의리 있지. 법 없이도 살 양반이지.” 여전히 아버지 칭찬이다.

“그랬으면 뭐 해? 엄마한테 그렇게 못했다면서?” 나는 더 삐딱하게 대답한다.

“아녀 아녀 그래도 생각해 보면 잘해 줬을 때가 더 많아.”

“뭐야 그럼? 그러니까 이혼은 안 하신다는 거지?” 내 말에 전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들린다.

“뭔 자식들이 부모를 이혼시키겠다고 그런다냐. 우리 이혼 안 할란다.”


새끼 데리고 나온 엄마오리


예상된 결과다. 이미 알고 있는 결과다. 부모님은 결혼생활 61년 차 올해 결혼 회갑이다. 그저 아버지 좋아하시는 것으로만 밥상을 차리고, 아버지 편하게 해 드릴 것만 챙기시는 어머니다. 크게 싸웠다고 해도 이혼을 하실 리 없다는 것을 자식들은 이미 안다. 두 분은 의견이 유난히 다르시다. 그래서 사소한 말씀을 나누다가도 말의 꼬투리가 물려 싸우기도 한다. 씨앗 하나를 심으실 때도 이쪽이 좋다. 저쪽이 좋다. 의견이 분분 하다. 자식들이 내려가도 이것 싸줘라. 저것 싸줘라. 생각이 다르다.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많으니 말다툼이 곧잘 생긴다. 나이먹은 자식들은 투닥 거리는 부모님을 어린 자식 보듯 한다.


“우리 부모님 왜 이리 귀여우시냐.”

“꼭 어린아이들이 말싸움하는 것 같다. 응~”

“아직 엄청 사랑하시는 게 분명하다. 어째 사사건건 서로에게 관심이 많으시냐?”

투닥거리는 부모님은 화해를 시키기도 쉽다. 어린 손주들 재롱을 보게 하면 금방 풀린다. 그리고 자식들이

“아이고 배고파요. 밥 먹으러 가요~” 하면 언제 싸웠는지 모르게 ‘배고프냐?’ 한 뜻으로 걱정을 한다.

명심보감에 “그대에게 권하노니 늙어가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대접하라. 젊었을 때 그댈 위해 살과 뼈가 닳았느니라.”라는 말이 있다. 이제 부모님은 나날이 늙어 가신다. 하루하루 나이 드심을 안타깝게 지켜보기만 한다. 바람이라면 두 분이 조금 더 재밌게 사셨으면 싶은데 가끔 자식들이 걱정할 만큼 투닥거린다. 살아보니 싸움도 애정이 있어야 하고 열정이 있어야 한다. 아직도 사랑하고 아끼는 표현이 너무 서투신 게다. 부모님을 애정표현 학원이라도 있으면 보내드려야 할 모양이다.


까마귀 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