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인도에 지각했습니다

케이채의 포토 산문집 #9

by 케이채

여행의 순서가 여행에 끼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요? 그러니까, 어느 곳을 먼저 여행해보고 또 늦게 여행해보는 것이 여행의 경험을 변화시키게 될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10개국 20개국을 여행하면서는 사실 잘 깨닫지 못했었는데, 여행의 마일리지가 쌓이면 쌓여갈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난 여행의 경험들이 현재의 여행에 영향을 준다고 말이죠. 과거의 여행으로 인해 보이는 풍경들이 달라 보이고,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귀담아들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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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는 제가 가장 처음 여행했던 동남아의 국가였습니다. 그 전에는 동남아에 전혀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씨엠립에서 만난 모든 풍경들이 굉장히 신기했고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이 자전거 타는 모습이나, 시장에서 보여지는 원초적인 모습들이나, 사람들의 복장과 심지어 툭툭(tuk tuk)까지도 말이죠. 저는 여전히 툭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캄보디아입니다. 그만큼 첫 경험의 인상이 영향을 끼쳤던 것이죠. 이후 태국, 스리랑카 등의 다른 동남아 나라들을 여행하며 제가 캄보디아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동남아 어디서나 쉬이 찾을 수 있는 공통적인 부분들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때부터는 각 나라들마다 어떤 작은 미세한 차이가 있는지, 그런 것들을 눈여겨보게 되었죠. 아마 제가 태국을 먼저 여행했었다면 캄보디아에 닿았을 때 그런 똑같은 감정을 느끼긴 어려웠을 겁니다. 아 여기도 태국이랑 비슷하구나.. 그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을 확률이 높았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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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행자들이 인도에 대한 환상을 갖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배낭여행자들은 인도를 신성시합니다. 일본에서는 일찍이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과 같은 책들이 인도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켰고, 서양사람들이 가진 인도에 대한 동경은 늘 자신을 찾는 여행이라며 그곳으로 갈 것을 종용하곤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숱한 여행작가들의 글과 사진이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인도로, 인도로, 사람들은 그렇게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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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쏟아지던 인도에 관한 여행 에세이들을 보면서 저는 오히려 인도에 가기 싫어졌습니다.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병입니다만, 뭔가 유행하는 느낌이 있으면 가고 싶지 않아지는 게 저의 성격이었습니다. 인도의 전문가라고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속 좁은 저는 괜히 심술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모르는 저만의 사진을 찾겠다고 다른 곳으로 먼저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도 없이 어느덧 50개국을 넘게 여행했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인도의 마력을 피해 다니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죠. 2015년에 저는 102일간의 아시아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고, 네팔을 거쳐 파키스탄으로 향하기 위해 인도에도 발을 내딛기로 결심했습니다. 늘 갈까 말까 고민만 하다 다른 나라들로 떠나곤 했던 우리의 밀당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습니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4월의 시작을 앞두고, 저는 바라나시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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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전설의 갠지스 강을 며칠씩 걸어 다니며 삶의 조각들을 만났습니다. 인도까지 왔으니 가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타지마할에 들렸고, 모두들 그러듯이 저도 그 입구 앞에서 지붕을 손가락으로 잡는 포즈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라자스탄을 보고 싶어 자이푸르로, 자이스알메르로 향했고, 델리를 거쳐 암릿사까지 인도의 각기 다른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왜 그 많은 여행자들이 인도를 칭송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지 저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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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둘러싼 흉흉한 이야기들도 많이 들었지만 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저는 이미 세계 수십 개국을 홀로 돌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내공을 가지고 인도에 도착했으니까요. 아프리카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그렇게 긴 시간 여행하지 않았다면 저 또한 바라나시 거리의 더러움이나 길거리에서 서서 오줌을 누는 아줌마들을 보고 더럽다고 느꼈을 수도 있고, 갠지스 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원색적인 의식들에 압도당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바나의 거리나 이집트의 시장을 거닐어본 경험이 있기에, 관광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사진만 찍고 바로 사라져 버리는 자이푸르의 시장 거리도 꾸준히 발로 걸으며 사람들에게 겁 없이 다가가고 대화를 시작하고 또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하라에서 여러 번 낙타를 타보았기에 자이스알메르에서의 낙타 여행을 조금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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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익숙하지 않을 때는 아무래도 겁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처음 가는 나라에서 전혀 다른 문화와 사람들 속에 덩그러니 혼자 놓여 있으면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만 같단 생각이 들겠죠. 저도 옛날에는 긴장도 많이 했고 의심도 많았답니다. 경험이 없으니 불확실한 것이라면 지레 겁부터 먹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점차 여행의 경험이 쌓이면서 경계선을 넘어. 조금 더 깊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고 '와 대단하구나, 인도에 정말 가고 싶다!' 그렇게 아이처럼 열광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반 바퀴 돌아 결국 인도에 도착했을 때의 저는 그때보다 조금 더 차분해진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제가 여행해온 방식 그대로, 그렇게 시행착오 없이 바로 인도라는 파도 위에 올라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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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도에 지각했습니다. 하지만 늦게 갔기에 볼 수 있던 것. 느낄 수 있던 것들이 있습니다. 지난 여행들이 현재의 여행을, 현재의 여행은 미래의 여행을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여행의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니까요. 그렇다고 인도를 꼭 나중에 여행하라는 그런 이야기는 물론 아닙니다. 인도를 당신이 여행하는 가장 첫 번째 나라로 삼을 수도 있을 겁니다. 여행의 순서가 그 여행의 경험에 영향을 끼친다고 해서, 여행할 순서를 하나하나 미리 정해놓는다는 것도 사실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여행의 경험을 가득 안고 찾아간 저의 인도가 달랐던 것처럼, 다른 아무런 경험 없이 먼저 찾아올 인도의 경험 또한 다를 것입니다. 저도 당신도 인도를 사랑하겠지만, 그 애정의 이유는 각기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만난 인도는 이 사진 속에 담아 두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인도를 만나게 된다면 잊지 말고 제게 꼭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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