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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채 Mar 24. 2017

필름이 끊겼습니다

케이채의 포토 산문집 #10

필름 사진에는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습니다. 디지털의 시대가 오며 존폐위기에 까지 몰렸던 필름 사진이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다시 필름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걸 보면 역시나 매력적인 매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화질이네 판형이네 각종 데이터에 기대어 말하자면 요즘의 디지털카메라들을 이겨내긴 어려운 게 대다수의 필름이요 또 필름 카메라들이지만, 필름 사진에는 그런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마법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그 필름만의 느낌이라는 것은 디지털로 아무리 재현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Avila, Spain. 2010)
(Dublin, Ireland. 2009)
(Cobh, Ireland. 2009)
(Dublin, Ireland. 2009)
(Stockholm, Sweden. 2009)
(Stockholm, Sweden. 2009)
(Oslo, Norway. 2009)
(Helsinki, Finland. 2009)
(Oslo, Norway. 2009)
(Madrid, Spain. 2010)
(Copenhagen, Denmark. 2009)


제가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는 아예 디지털카메라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처음 샀던 필름 카메라는 아마 야시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중에는 비비타도 한번 썼고, 학생 신분이다 보니 값싼 카메라 위주로 사용을 했습니다. 졸업 후 디지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며 한동안 필름을 버렸었는데, 2008년에 처음 라이카 M6을 사면서 다시 그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충무로에서 중고로 구입했던 실버 색상의 카메라였습니다. 당시 배두나 씨 때문에 유독 인기가 많은 카메라였는데요, 그 녀석은 저의 첫 번째 RF 카메라이자 제가 그 뒤로 쭉 라이카를 사용하도록 인도해준 녀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함께 20개국을 넘게 여행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필름을 챙기는 게 일이었습니다. 수십롤의 필름통을 가지고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면 늘 불안했습니다. 수 검사를 해달라고 졸랐지만 많은 나라들에서 거부했기에 수십 분씩 실랑이를 벌이는 것은 예사였습니다. 고압적인 담당자가 억지로 제 필름들을 엑스레이에 통과시키고 나면 귀국할 때까지 필름들이 괜찮을지 걱정이 되어 마음이 편하질 않았습니다.


(Helsinki, Finland. 2009)
(Cobh, Ireland. 2009)
(Stockholm, Sweden. 2009)
(Madrid, Spain. 2009)
(Stockholm, Sweden. 2009)
(Trinidad, Cuba. 2011)
(Havana, Cuba. 2011)
(Havana, Cuba. 2011)
(Havana, Cuba. 2011)
(Havana, Cuba. 2011)


그래도 꿋꿋이 함께하며 많은 사진을 담아왔는데, 시간이 흐르며 결국 저도 지쳐갔나 봅니다. 아프리카 여행을 기점으로 저는 다시 디지털로 점차 이동해갔습니다. 점점 사용량이 줄어들었음에도 보관만은 계속하고 있었는데, 몇 년 전 여행비용을 마련하느라 결국 판매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판매를 하려고 했을 때는 와인더가 갑자기 고장 나 버렸죠. 그걸 빌미로 돈을 깎아달라는 그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 그냥 거래를 안 하고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 녀석이 저를 떠나기 싫어서 일부러 그랬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물론 결국 와인더를 고쳐서 판매를 하게 되었지만요. 그때는 여행자금이 필요했었거든요. 그래도 5년 넘게 함께 했던 추억들 때문에 지금 와서 떠올리면 조금은 후회가 됩니다.


(Lisbon, Portugal. 2010)
(Tokyo, Japan. 2009)
(Tokyo, Japan. 2009)
(Waikiki, Hawaii. 2009)
(Hong Kong, China. 2009)
(Tokyo, Japan. 2009)
(Akko, Israel. 2010)
(Jordan River, Israel. 2010)


가끔씩 그리워하면서도 첫사랑의 추억처럼 묻어두고 살아왔는데 우연한 계기로 녀석의 행방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품이 참 좋다고 생각했던 국내의 한 사진작가가 그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팔았던 건 다른 사람에게였지만 어찌어찌 통해서 그 작가에게까지 넘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저는 기분이 무척 좋아졌습니다. 드넓은 바깥세상을 함께 여행하다 제 손을 떠난 녀석이 이젠 어디 갇혀서만 지내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좋은 작가를 만나 여전히 세계를 돌며 힘차게 사진을 찍고 있다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Newgrange, Ireland. 2009)
(Copenhagen, Denmark. 2009)
(Copenhagen, Denmark. 2009)
(Copenhagen, Denmark. 2009)
(Copenhagen, Denmark. 2009)


저는 제 물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걸 좋아해서 종종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요. 그 녀석과도 여행하며 사진을 담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참 많이 했었습니다. 여행이 끝나면 고생했다고, 툭 한대 치며 노고를 치하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렇게 친밀한 사이였기에 떠나보낸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마음 한편에 늘 자리하고 있었는데. 좋은 사진가의 손에서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는 소식에 한시름 놓았습니다. 참으로 잘됐습니다. 저와 함께 멋진 사진들을 담았던 것처럼 그 작가와도 오래오래 그러기를 바랍니다. 녀석이 정말 좋은 카메라라는 것은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Lisbon, Portugal. 2010)
(Lisbon, Portugal. 2010)
(Lisbon, Portugal. 2010)
(Lisbon, Portugal. 2010)
(Lisbon, Portugal. 2010)
(Lisbon, Portugal. 2010)
(Madrid, Spain.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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