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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채 Mar 30. 2017

부탄에선 당신도 외롭지 않을 거예요

케이채의 포토 산문집 #11

부탄의 전통 복장은 무척이나 멋집니다. 너무 멋져서 저 또한 한벌 사서 입기도 했습니다. 물론 한국에 와서는 입을 일이 없어서 보관만 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다시 한번 입어보고 싶습니다. 여성들의 전통의상은 키라(Kira)라고 부르고 남자들의 옷은 고(Gho)라고 합니다. 고를 입고 나서 마지막 마무리는 한쪽 어깨에서 시작해 몸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천으로, 이를 카브니(Kabney)라고 부릅니다. 마치 머플러를 하듯이 메야하는 이 천은 그런데 너무나도 길고 또 큽니다. 그래서 혼자서 몸에 이걸 제대로 멘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절이나 정부 건물에 들어갈 때는 예를 갖추어 이 옷을 제대로 입어야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저는 그들이 어떻게 이 복장을 완전히 갖추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푸나카의 축제날 우연히 백스테이지에 들어갔다가 목격하게 되었답니다. 열명도 넘는 남자들이 모여서 서로의 카브니 착용을 도와주는 모습을 말입니다.



세상에는 혼자보단 둘이 해야 좋은 일들이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늘 혼자 해결하려는 성격이다 보니 고생을 사서 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내는 여행 중에도 그렇습니다. 도와줄 사람은 없다, 나 혼자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여러 상황의 대처법을 연구합니다. 서로의 뒤를 봐주고 도와주는 연인들이나 친구들의 여행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부탄의 전통복장을 입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이 사람들은 그런 고민은 없는 것 같습니다. 늘 주위에 누가 있을 거라는, 누군가 함께할 거라는 그런 믿음에서 나온 복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제가 조금 오버한 것일까요?



놓쳐서는 안 될 부탄의 축제들을 보았습니다. 푸나카에서 열리는 성대한 축제는 듣던 대로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했습니다. 운이 좋아 트롱사에서 열린 조그만 축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축제는 관광객이 거의 없어서 특히나 더 좋았습니다. 어떤 축제던지 그 마을을 대표하는 드종(Dzong)에서 시작이 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옷을 한껏 차려입고 모여 그 시간을 만끽했습니다. 가면을 쓴 스님들의 화려한 복장과 전통적인 노래와 춤 모두 좋았습니다만, 그 축제에 모여든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는 게 특히나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축제에서 무엇보다 좋은 건 역시 들떠있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이니까요.



축제날 외국인이 전통복장을 입고 가면 좋아들 한다고 해서 완벽하게 복장을 준비했는데, 부탄 옷을 입은 외국인이 아닌 그냥 부탄 사람으로 오인을 받아 버렸습니다. 어느 나라를 가나 현지인으로 오해를 자주 받아서 신기한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죠. 부탄 사람들보다 더 부탄 사람들처럼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으니, 얼굴부터가 이미 현지화를 완료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축제에 찾아온 부탄 사람들이 모두 입고 있던 고, 그리고 키라. 누군가 도와줘야만 입을 수 있는 옷이라면 늘 혼자인 저 같은 여행자는 불안할 것 같습니다만, 그만큼 부탄 사람들의 가족적인 면이 담겨있는 게 이 의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하루의 시작이니까요. 하루를 열면서 도움을 받고 또 도움을 줍니다. 그러면서 대화도 시작되고 더 친밀해질 수도 있겠죠. 혼자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을 겁니다. 카브니를 제대로 메지 못해 축제에 입장하지 못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이죠. 그런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니, 그것 참 든든한 일이 아닌가! 하고 혼자 감탄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를 입었던 제 모습도 그리도 든든해 보였던 게 아닌가 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그 진짜 이유는 제 몸이 통통해서였다는 사실은 잠시나마 외면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부탄에서는 여러분도 혼자이진 않을 거란 사실만은 믿어주세요.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몸에 칭칭 천을 감아주고 우리 함께, 축제장으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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