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채의 포토 산문집 #12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 불특정 한 인물의 사진을 어떻게 담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모든 사진을 찍을 때 허락을 받는지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를 말하자면, 상대방이 저를 의식하고 있는 상태일 땐 동의를 먼저 구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동의를 구하던 구하지 않던 일단 상대가 사진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한 상황이라면 사진은 찍지 않습니다. 동의 후 사진을 찍는 경우에도 저는 대부분 포즈를 잡게 하거나 무엇을 부탁하기보다는 잠깐 지켜보는 편입니다. 혹은 대화를 시작해서 조금 편안한 시기가 오면 그때 순식간에 사진을 찍곤 합니다.
하지만 허락 없이 찍어야 하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깰 수 없는, 너무나 눈이 부신 그런 장면을 발견했을 때 저는 우선 셔터를 눌러야 합니다. 사진가가 말을 걸어버린다면 그 마법 같은 삶의 조각은 이미 깨져나간 후일 테니까요. 이런 사진을 담는 것은 거리 사진가의 숙명입니다. 중요한 것은 보석 같은 순간을 가려내는 관찰력입니다. 신기해 보인다고 생각 없이 셔터를 남발한다면 그건 사진가로선 실격이니까요. 하나만 걸려라는 식으로 일단 찍고 보자는 식의 행위는 공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사진을 담아냈다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입니다. 사진가는 자신보다 더. 자신의 사진보다 더. 사진에 담긴 피사체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제가 자주 인용하는, 존경하는 프랑스의 사진작가 윌리 로니스의 일화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그가 파리 역에서 촬영했던 병사와 간호사의 포옹 장면을 담은 사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포로에서 풀려나 파리로 돌아온 병사, 기차에서 내려 자신을 돌봐준 간호사와 마지막 포옹을 나눕니다. 로니스는 이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고 인화를 했지만, 혼자 이 사진을 바라보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둘은 사랑에 빠진 사이가 분명한데, 남자는 파리에 가족이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사진이 공개된다면 남자의 가정에 파탄이 올 것이라 그는 판단합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이 사진을 무려 30년 동안이나 공개하지 않고 혼자 간직합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른 후 이제는 그들 가정에 영향이 없을 거라는 판단이 서고 나서야 세상에 이 사진을 선보이게 된 것입니다.
윌리 로니스의 생각은 그만의 완벽한 상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두 남녀는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을 수도 있고, 남자는 결혼을 안 한 총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만큼 그는 자신의 사진 속에 담긴 피사체들을 배려했다는 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멋진 사진을 찍었다고 으스대며 자신의 사진을 앞에 두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 담겨준 사람을 가장 앞에 놓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사진을 허락받고 찍느냐 마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그 사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세상에 선 보였을 때 피사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이 고민해보는 것입니다. 사진에는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사진에 따라 그 사진 속 피사체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요즘같이 사진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에선 더욱이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항상 피사체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으로. 오직 이 순간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만 카메라를 들어야 하며, 그 순간을 담아내야 했던 이유가 분명히 보여야 합니다. 도촬과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는 한 끗 차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차이는 그 순간을 담아낸 작가의 의도와, 피사체를 향한 존중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런 이유로 저에게는 또한 나름의 철칙이 있습니다. 저는 가능한 행복한 순간을 담고자 합니다. 단순히 그들이 웃고 있는 순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저의 피사체는 의식 못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훗날 보면 그들 또한 좋아할 거라고, 아름다운 추억이었다고 생각할 그런 순간 말입니다. 사람들이 울고 있거나, 고통스러워하거나, 아픔이 느껴지는 순간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남에게 부끄럽거나 숨기고 싶은 그런 광경을 저는 담지 않고자 합니다. 가장 아름다웠던, 가장 눈부셨던 삶의 순간의 일부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그것은 길 위에 선 사진가로서 제가 지키고자 하는 원칙입니다.
사람들의 고통을 담아야 하는 사진가들도 있습니다. 분쟁 현장이나 전쟁터에 달려 나가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이들은 사람들의 슬픔을, 아픔을 담는 것이 일입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 또한 일상을 담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라고 제 자신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엔 이미 아픔이 충분합니다. 사람들의 삶은 고단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 사진까지 거기 한몫하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 모든 사진을 사진 속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늘 그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언젠가 보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사진에 담긴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화내진 않을 거라는, 분명 사진이 잘 나왔다고 좋아할 거라는 그런 확신이 있는 사진만 세상에 내놓고자. 항상 그들의 눈으로 저의 사진들을 바라보려 노력합니다.
윌리 로니스의 판단이 완벽한 상상이었을 수도 있듯이, 저의 판단 또한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자체가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비록 늘 결과가 좋을 수는 없어도. 모든 것은 우선 좋은 의도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저의 피사체들을 우러러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단 한 장의 사진에도 경건한 자세로 예를 갖추어. 삶의 일부를 허락해준 그들에게 저는 경의를 표합니다. 모두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