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채의 포토 산문집 #13
페샤와에 도착하기 5개월 전쯤 전. 그곳의 한 학교에서 무차별 총격이 벌어져 수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 도시에서 벌어진 첫 번째 테러는 아니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국경과 맞닿은 파키스탄의 이 작은 도시는 탈레반이나 IS 등 위험한 조직들이 활동하기도 하는 테러와 분쟁의 중심지로, 크고 작은 사건이 쉬지 않고 해외 뉴스 토픽을 장식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로 곳곳에 중무장한 군인들과 체크 포인트가 있었고, 어느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관광객을 찾아볼 수 있을 리 만무했지요. 외국인이라곤 주둔하고 있는 UN평화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하루에도 여러 번 체크포인트를 지나며 저의 여권을 보여줄 때마다 군인들은 궁금해했습니다. 아니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입을 모아 그들은 제게 물었습니다.
“여긴 위험한 곳이야. 대체 왜 페샤와에 온 거니?”
제가 페샤와에 간 것은 분쟁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저는 전쟁 사진가가 아니니까요. 위험한 곳에 갔다 왔다고 남에게 으스대거나 자랑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단지 언론이, 정치가, 또 사람들의 잘못된 이해관계가 위험한 곳이라고 색칠해놓은 곳에도 보통 사람들의 삶이 존재하며, 그 삶에는 장소와 상관없이 아름다운 사람의 향기가 있다는 것을 보고 또 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도시를 둘러싼 군인과 무기가 자아내는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페샤와에는 제 예상보다도 더 맑은 영혼을 지닌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의 뜨거운 환대에 크게 감동한 것은 물론입니다. 가진 게 별로 없어도 나누고만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가나 저를 초대해주었고, 녹차를 내오고, 음료수를 사주고. 무엇이든 제게 해주지 못해 안달이었습니다. 덕분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외지인들이 쉬이 들어오기 어려운 곳이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그들에게도 큰 즐거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친절함에 긴장을 놓았던 것일까요? 결국 저에게 위험한 사건이 찾아오고야 말았습니다. 물론 군인들이 걱정한 그런 위험한 일은 아니었지만 저의 여행 역사에 있어서는 역대 가장 큰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저의 스마트폰을 도둑질당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세계를 여행하면서 단 한 번도 도둑질을 당하거나 무언가를 잃어버린 적이 없습니다. 10여 년간 50개국을 넘게 여행하며 위험하다는 곳들도 많이 갔지만 항상 제 자신을 잘 보호해왔기에. 나름의 프라이드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것도 저를 반하게 한 이 도시, 페샤와에서 말입니다.
어린 친구 십 수명이 저를 신기해하며 따라오던 와중에 그중 한 친구가 폰이 들어있던 제 가방에 손을 넣은 모양입니다. 도난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핏 짐작 가는 친구의 얼굴이 있었지만 그땐 이미 모든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 후였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았고, 누구 하나 연고가 있는 것이 아니니 수소문할 길도 없었습니다. 물어물어 찾아간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사건 접수를 했고, 그들 또한 페샤와 사람들답게 친절로써 저를 맞이했습니다. 저를 위로하며 차를 내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시골 파출소보다도 허름한 경찰서의 모습이나, 눅눅한 갱지에 볼펜으로 써 내려가는 접수장을 보고 있으니 그들의 수사력에는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구입 6개월도 안된 그 새것 같았던 아이폰이 다시는 저의 손에 돌아오지 못할 거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직 할부도 한참 남은 스마트폰을 도둑맞았다는 그 사실 자체로도 화가 났지만. 저를 진짜로 화나게 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제 마음에 쏙 들었던 이 보석 같은 도시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을 남겨야 한다는 그 사실이 저로 하여금 화를 참을 수 없게 했습니다. 저를 진심으로 대해준 99명의 친절과 미소가 단 1명의 악행으로 인해 퇴색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기분을 더 나빠지게 한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신고절차를 마치고 나니 그런 분노의 감정들은 더더욱 크게 뭉쳐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숙소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아닙니다. 도저히 그럴 순 없었습니다. 마침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이렇게 그냥 끝낼 순 없었습니다. 이런 안 좋은 감정을 안고 페샤와와 이별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련하게 다시, 저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줄 모르는 페샤와 사람들은 웃으며 저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에게 예의 없이 굴 수는 없는 노릇. 최대한 미소로써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조금 길게 대화를 하다 도둑질을 당한 이야기를 꺼내게 될 때면,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좋은 사람이 더 많다며 저를 위로했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끊임없이 녹차를 내왔고, 과자에서 케밥까지 자꾸만 먹으라고 성화였습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나쁜 경험 하나를 했다고 이곳 사람들이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페샤와 사람들은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세상에 도둑이 페샤와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에게 벌어진 일은 이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따스한 마음들 덕분에 조금씩 감정을 추스르며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한참 더 걸었습니다. 그러다 해가 거의 저물어 이제 하루를 마감할 시간이었습니다. 가게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한 리어카에서 과일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는데요, 아저씨와 대화하다가 그 옆에 앉아있는 그의 친구분과 손주의 모습을 발견하고 시선이 멈췄습니다. 아, 페샤와에서 내내 기다려왔던 순간인 것 같습니다. 찍는 순간 이 한 장이라고 확신한, 저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어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담는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요. 만약 이날 폰을 도둑질당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 순간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날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고스란히 그 순서대로 벌어지지 않았다면. 저는 이 순간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좋은 일은 물론 나쁜 일들까지 모두 다. 하나도 빠짐없이 차곡차곡 쌓여야만 현재를, 지금 이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때로는 힘들고 아픈 일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들도. 알고 보면 어떤 잊지 못할 삶의 조각으로 저를 이끌기 위한 과정일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제야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 순간을 발견하게 해주려고 폰을 가져갔나 보다 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만이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젠 괜찮습니다 나의 불행이여! 조금만 아프고 이젠 더 많이 웃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