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채의 포토 산문집 #14
오로라였습니다. 핀란드에 간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나 그 아름다운 색이었습니다. 알래스카에서 한번 오로라를 본 적은 있지만 날씨가 안 좋아 몇 번 만나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3달이나 핀란드에 간다고 했을 때 역시나 오로라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정도 시간이면 오로라를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건 몰라도 오로라 사진만큼은 제대로 담아오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설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저는 알지 못했답니다. 한겨울의 라플란드에서 오로라를 찍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핀란드 관광청에서 진행한 Polar Night Magic 이란 타이틀의 글로벌 캠페인. 한국 대표로서 다른 4명의 멤버들과 함께 단체 활동을 해야 하는 여정이기에 아무래도 오로라가 여행의 전부가 되긴 어려웠습니다. 매일 하루 종일 그날의 과제와 홍보 영상 촬영 등에 참여해야 했고, 의무적인 일들을 마친 저녁이면 이미 무척 피곤한 상태가 되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오로라를 놓치고 싶진 않았기에 매일 밤 카메라를 세팅하고 가방을 챙겨두었습니다. 비록 침대에 누워있더라도 오로라가 보이면 바로 뛰어나갈 수 있게 준비를 해둔 것입니다. 적어도 장비 챙기느라 시간을 소모해 오로라를 놓치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려하지 못했던 것은 첫 번째로 기온이었습니다. 한 겨울의 핀란드.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북쪽의 라플란드. 이 지역의 기온은 영하 15도 정도가 평균적이고, 좀 춥다 하면 25도까지는 쉬이 내려갑니다. 이런 기온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론상으로야 알고 있었지만 몇 달간 이런 환경에서 오로라를 담으며 그 사실을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밖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체감 온도는 훨씬 아래로 떨어지기 십상이었고, 추위에 떠는 제 자신도 물론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문제는 카메라였습니다.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면 카메라들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배터리가 순식간에 방전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기능들이 마비되고 말을 듣지 않아 수동으로 조작해야 했습니다. 그나마도 완전히 얼어 작동을 아예 멈추지나 않으면 다행이었지요.
아직도 어제처럼 선명히 기억나는 밤. 영하 40도의 혹독한 추위 속에 오로라를 담았던 밤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핀란드에서의 3달 중에 가장 화려한 오로라가, 그것도 한 시간 넘게 쉼 없이 펼쳐졌던 가장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알고 계셨나요? 그 정도의 추위에서 카메라를 맨손으로 만지면 손을 잘라내는 듯한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요. 장갑을 끼고 있다가도 세심한 조작을 위해 맨손으로 카메라를 만져야 할 때면 정말 외마디 비명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오로라의 쇼가 펼쳐지고 있는데 어쩌겠습니까. 이를 악물고 찍고 또 찍었습니다. 추위를 고려해 두대의 카메라를 준비했는데 역시나 배터리들이 순식간에 떨어져 나갔고, 한 카메라는 LCD 이상 증상이 생기며 결국 작동을 멈춰버렸습니다. 다른 카메라도 겨우겨우 작동만 하는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또 주의할 것은 잘못해서 렌즈에 입김을 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입김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렌즈 내부에 얼음이 고이게 할 테니까요. 한 번은 이 실수 덕분에 그 얼음을 녹여내느라 한참 고생을 해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사진을 다 찍었다고 추위를 피하러 바로 따뜻한 숙소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도 안됩니다. 인간의 몸이야 괜찮지만, 꽁꽁 얼어붙은 카메라를 따스한 숙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간 카메라의 외부는 물론 닦아낼 수 없는 기계의 내부가 물로 흥건히 뒤덮여 버리게 되니까요. 카메라가 상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만약 그런 상황에서 물이 다 마르기 전에 카메라를 다시 밖에 가져 나가기라도 한다면 내부가 전부 얼어버려 카메라에 치명적인 고장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천천히 카메라가 녹도록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카메라를 가방에 넣어서 그 상태로 가져오고, 다음날 아침까지 가방을 열지 않는 것으로 해결을 했답니다. 물론 여러 번 실수도 하고 에피소드도 많았지만, 어쨌든 끝까지 고장 난 카메라는 한 대도 없어 다행이었습니다.
핀란드에서 처음 오로라를 본 것은 로바니에미였는데요, 라플란드에서의 첫 번째 밤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때는 조금은 남쪽이었고 큰 도시였는 데다, 또 호텔에 있었기 때문에 영하 10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첫날부터 오로라를 보다니 운이 좋다며, 앞으로 자주 볼 수 있겠지 하고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날씨 운이라는 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날 이후 거의 2주 동안 우리는 오로라를 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때 첫 깨달음이 왔습니다. 오로라를 당연히 여기면 안 된다고요. 다음은 없다고 생각하고 한번 나타났을 때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그런 정신무장과 함께 나머지 3개월을 오로라 헤는 밤으로 채워나갔습니다.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찾아갔던 토라시에피라는 마을에서, 우리가 머문 호텔 사장의 아들이자 오로라 취미 사진가인 안티(Antti)를 만났습니다. 그는 핀란드의 오로라 사진가들 사이에선 꽤나 알려진 인물이었는데요, 매일 밤 문자로 그날의 오로라 출몰 가능성을 친구들에게 문자로 업데이트해주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 리스트에 추가를 부탁했고, 이후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오로라가 등장하면 빠짐없이 문자를 도착했습니다. 사실 처음 그를 만나고 1주일은 계속 날이 흐렸기에 오로라를 볼 수 없었고, 그래서 그의 문자가 믿을만한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헤타의 한 호텔에 짐을 푼 우리에게 그의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당장 나가! 밖에 지금 난리가 났다!" 라구요. 그런데 안티가 사는 지역은 저희 위치와 100km 정도는 떨어져 있었고, 제 창문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의구심이 들었지만, 속는 셈치고 한번 나가보자 하고 옷을 다 갖춰 입고 카메라를 들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다. 호텔 입구에서부터 벌써 어마어마한 오로라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호텔 앞의 풍경은 너무 매력이 없었습니다. 맙소사! 좋은 배경을 찾아야 해! 그 생각 하나를 가지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근처 숲을 향했습니다. 너무 멀었습니다. 언제 오로라가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끝에 있는 교회를 배경으로 찍었습니다. 이 오로라는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고 밤하늘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그날 이후로 그의 문자를 무한 신뢰하게 된 것은 물론입니다. 핀란드에서 오로라를 쫓는 그 모든 시간 동안 안티의 문자는 정말 소중한 오로라 기상청이었습니다.
라플란드에서 제가 가장 좋아했던 지역인 리시툰투리에서 만났던 오로라도 특별합니다. 리시툰투리 국립공원에는 눈으로 가득 찬 나무들이 마치 설치예술 작품들처럼 아름답게 펼쳐져있는데요. 이를 배경으로 꼭 오로라를 담고 싶어 밤늦게까지 하늘만 봤습니다. 딱 하루였지만 그래도 그곳에서의 오로라가 허락되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급하게 뛰쳐나가느라 눈길을 걸을 때 꼭 필요한 스노 슈즈를 신지 않았고, 덕분에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 속에 파묻혀 걷느라 달밤에 체조 꽤나 했습니다만 결국 사진은 얻었으니 모두 좋은 추억일 뿐입니다.
3달 동안이나 핀란드에 있었단 걸 생각하면 사실 오로라를 그리 많이 본건 아닙니다. 10번 조금 넘게 본 것이 전부 같습니다. 저는 몸이 힘들어도 계속해서 더 추운 기온이 찾아오길 빌었습니다. 영하 20도 이하가 되면, 그러니까 추워지면 추워질수록 하늘이 더 깨끗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영하 10도 정도로 따뜻한(?) 기온에는 구름이 끼었을 확률이 높았습니다. 비록 영하 20도 이상의 추위는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견디기 어려웠지만, 오로라를 위해 더 춥기만을 바라고 또 바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버텼는지 신기합니다. 그런데 영하 40도를 한번 겪고 나니 나중에 영하 20도가 되자 정말 따뜻하게 느껴졌던 어느 날 아침이 잊히질 않습니다. 불과 며칠 전엔 그 똑같은 기온에 춥다고 떨었는데. 사람이란 참 적응의 동물인가 봅니다.
오로라의 아름다움은 글로써는 표현하기가 벅찰 지경입니다. 사진으로 담기도 무척 쉽지 않은 피사체입니다. 오로라는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오로라를 만났을 때 저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이 바로 그 움직임이었습니다. 흐드러지듯 온몸을 펼치고 또 접으며, 무대 위를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발레리나처럼 춤사위를 펼치는 그 광경을 목도하고 있노라면. 오로라는 사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동에서 북으로, 서에서 남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현란하게도 하늘 위를 가로지르지만. 그럼에도 주위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밤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그 춤에는 어떤 배경음악도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로라와 함께하는 밤이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더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오로라를 담기 위해 지새운 그 수많은 밤들. 너무 춥고 힘들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저 행복한 투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팔이 잘려 나갈 것 같다고, 발이 마비된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추운 적도 있었지만, 오로라를 보는 것만으로 그 모든 고통은 날아가버렸습니다. 북반구에는 오로라만을 쫓으며, 오직 오로라만을 담는 사진가들이 있는데요. 왜 그들이 오로라에만 집착하는지, 그 마음을 이젠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을 걸만큼 매력적이란 것. 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다시 또 만날 수 있을까요? 핀란드를 떠나온 지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따스한 봄날에 이 글을 쓰면서 그렇게 살짝 한숨을 쉽니다. 아무리 오로라를 많이 봤다고 해도, 오늘 만난 오로라는 과거에 본 오로라와 절대 동일하지 않았습니다. 매번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날만의 색다른 안무로 펼쳐지는 한겨울의 갈라쇼. 그래서 그렇게 봤어도 더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가 봅니다. 깨고 싶지 않은 기분 좋은 꿈처럼. 아침이 찾아왔음에도 아직은 조금 더, 저는 그 꿈을 꾸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