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채 Feb 20. 2018

이란 사람들은 악수를 좋아하더군요

케이채의 포토 산문집 #15


처음에는 어디 뼈가 부러졌나 생각도 했습니다. 이상하게 오른손 약지 손가락 부위가 길다랗게 통증이 있었던 것입니다. 긴 핀란드 여정을 마치고 러시아를 거쳐 이란에 막 닿았던 저는 어디서 그런걸까 그 긴 여정을 곰곰히 뒤돌아봤지만 도통 짐작가는 것이라곤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플만큼 어디에 부딛치거나 다친 일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 고통은 있었고, 그래서 오른손을 원활하게 사용한다는게 조금은 어려워졌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정해진 여행을 멈출 수는 없는 법. 다리가 부러졌더라도 저는 여행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까짓 손가락이 대수겠습니까. 저는 전장에 나서는 부상병처럼 결연히(?) 이란 사람들의 삶속으로 진격을 개시했습니다.



그런데 이란 사람들이 말입니다. 참 인사성이 바르더군요. 저를 발견하면 신기하게 여기며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끊임없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에 둘러쌓여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었던 적도 많습니다. 저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사람들이 줄을 서기도 했습니다. 인형탈을 뒤집어 쓰고 사진찍어주는 알바를 해도 이렇게 많은 손님을 받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뭐 그런 것은 다 좋았습니다. 현지인들의 관심을 받는 것에는 워낙 익숙해져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모두가 저에게 악수를 청해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환한 미소로 손을 내미는 그들의 마음을 거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픈 손가락 때문에 저는 최대한 약하게 살짝 악수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만 그리 도움이 되진 않았습니다. 누구를 만나던 그들은 하나같이 정말 있는 힘을 다해 아주 꽉 제 손을 잡았습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라이벌인 남자 주인공 둘이 서로 힘자랑을 하려고 있는 힘껏 악수를 하는 장면처럼, 그들은 정말 그 손 하나에 온 몸의 힘을 쏟아부은 듯 했습니다. 반면에 저는 제리에게 한대 크게 얻어맞은 톰처럼 깡총깡총 뛰며 고통을 호소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악물었습니다. 고통을 들어내면 이 만남이 불쾌하다거나 악수를 싫어한다는 식으로 오해할까봐, 저의 소심한 마음은 지옥불에 타오르고 있는 속을 감추고, 참선하는 부처님같이 온화한 표정으로 그들과 악수를 나눌 수 있게 했습니다. 덕분에 손을 유난히 꽉 잡았던 친구들은 얼굴이 아주 또렷히 기억납니다. 고통에 그들의 얼굴이 흉터처럼 각인되어 버렸나 봅니다.



반가운 마음과 고통이 동시에 수반된다니 어찌보면 재미난 일입니다. 이란에서 도통 차도가 없던 그 의문의 통증은, 한국에 돌아온 후에야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허리가 안좋은 것 때문에 손까지 통증이 전달된 것인 것 같다고 합니다. 귀국후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고통은 사라졌습니다. 이란에서처럼 악수로 인사할 일이 잘 없어서 빨리 호전되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란에서는 꽤나 아팠지만 지금은 감사하는 마음만 남았습니다. 그 꽉 쥐었던 손에서 저를 환영하는 그 마음, 고스란히 느껴졌으니까요. 늘 저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던 이란 사람들에게. 다음엔 저도 힘껏 당신의 손을 잡겠다고 약속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오로라 헤는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