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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채 Feb 22. 2017

시장 하신가요?

케이채의 포토 산문집 #1

닭한마리 튀겨주세요.


닭집 아줌마에게 그 마법같은 문장을 건내면 기름 가득한 솥은 뜨거워졌고, 큼지막한 닭한마리는 튀김옷을 입고 효녀 심청이 마냥 망설임없이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닭집 앞의 의자에 앉아 30분 정도 사람 구경을 하며 기다리면 완성된 닭을 들고 집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자주는 못먹었지만, 가끔씩 찾아온 어느 일요일에 닭을 먹자는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지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평소 귀찮아하던 시장 심부름이었지만 그럴때면 불이나케 달려나가 닭집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닭이 다되길 기다리며 앉아있으면 그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그때는 요즘같은 치킨집들이 없었습니다. 닭이 먹고 싶으면 시장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국민학교 시절엔 외할머니가 어린 저와 누나를 자주 돌봐주곤 하셨는데요. 팔순에 가까웠던 할머니는 매일같이 시장 심부름을 시키시곤 했습니다. 성인이 될때까지 진짜 이름을 몰랐던 ‘빨간 고기’라는 생선을 늘 사러갔습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생선은 싫어하지만 외할머니는 요리를 참 잘하셨습니다. 매일 찌개를 끓이시고 우리를 위해 요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주 장을 봐야했는데 그중 가장 많이 했던 것은 두부 심부름이었습니다. 그때는 한모에 500원 정도였는데 요즘은 얼마나 하려나요? 늘 같은 곳에 있는 두부 장사 아저씨에게 동전을 건내면 비닐봉지를 신기하게 뒤집어 두부가 쏙 들어가게 담아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하루는 콩나물 심부름으로 시장에 왔는데 평소에 못보던 한 할머니가 농약을 안 친 콩나물이라며 팔고 계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딱 봐도 시들시들해보였지만 그 할머니가 불쌍해보여서였는지 시대를 앞서 유기능 좋다는걸 어린 제가 이미 알고 있었는지. 그 콩나물을 사갔다가 할머니에게 꽤나 혼났던 적도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반드시 그곳의 시장을 가고싶어 합니다. 나라는 달라도 문화가 판이해도 시장에는 늘 사람사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땀과 냄새로 범벅이 된 시장은 저에게 많은 영감을 전달해주는 장소입니다. 어린시절 추억의 파편들처럼, 지금도 시장에 가면 순수했던 우리네 옛 모습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다시 느껴지는 것 같아 좋습니다. 이제는 굳이 재래시장이라고 구분해서 불러야할만큼 젊은 친구들에게는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이 되었지만, 저는 세계 어디에서든 시장엘 가면 옛날 생각이 나서 고향에 온 듯 반갑습니다.


미얀마에서 만났던 시장들은 특히나 저의 그 향수를 건드렸던 것 같습니다. 인레 호수에서는 다섯곳의 마을에서 매일 번갈아가며 시장이 열렸는데요, 신기하게도 그중 어디에서 오늘의 시장이 열리는지 인레의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주변에서 사는 소수 민족들이 각자 자신들의 전통 물품이나 채소, 과일, 고기등을 팔거나 교환하기 위해 몰려와 컬러풀한 풍경을 연출하곤 했습니다. 인레 호수의 시장이 가장 인상깊게 남긴 했지만 미얀마 곳곳에서 만난 시장들은 모두 다 흥미로왔습니다. 시파우나 바간에서 만났던 시장도, 양곤 같은 도시에서 만난 시장들도. 하나같이 어린 시절 제 기억속 시장의 모습이 보여서 25년전 그때로 돌아간듯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전혀 다른 형태의 시장을 경험한 적도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2016년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는 유서깊은 츠키지 수산시장을 마지막으로 가볼 수 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2009년에 짧게 보았지만 공항에서 시간이 오래 걸려 유명한 참치 해체를 볼 수 없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6년만에 다시 도쿄에 가게 되었을때 이번에는 반드시 보리라고 다짐하며 새벽 3시반에 결연히 그곳으로 향했답니다. 하지만 저는 바로 참치 해체하는 장소로 가면 되는줄 알았다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줄을 서는 장소가 따로 있다는걸 전해듣고 급히 그곳으로 달려 갔을땐 이미 그날의 입장인원이 가득차버린 후였다는 슬픈 사실. 그렇지만 이른 아침 수산시장의 열기를 마지막으로 담아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했습니다. 수산시장은 일반 시장과는 또 조금 다른 그곳만의 느낌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신가요? 옛날에는 우리네 노량진 수산시장도 그랬지요. 그런데 노량진 수산시장도 소위 현대적인 모습으로 바꾼다며 옛 모습을 잃었고, 이제는 츠키지 시장마저 올림픽을 위해 새로운 장소로 옮겨 이곳을 페쇄한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언젠가 지금의 어린 친구들이 나이가 들면 요즘같은 형태의 마트를 그리워하는 날도 올까요? 요즘 마켓들은 너무 인간미가 없어! 옛날 이마트가 좋았지..! 이런 식으로 말이죠. 제가 시장을 좋아하는 이유가 과거를 향한 향수와 일정 맞닿아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편해지고 깔끔해지고 첨단을 달려갈수록, 저는 이런 시대에 뒤떨어진 장소들이 더 좋아집니다. 사람도 풍경도, 저는 조금 낡고 헤진 것이 좋습니다. 백지상태에서 시작한 인생보다는 산전수전 겪은 인생이 더 흥미롭지 않겠습니까? 세계 어느 시장을 가도 저의 어린시절 추억과 같은 삶의 이야기들이 골목마다 덕지덕지 붙어있을겁니다. 그래서 저는 시장을 향해 카메라를 드는 일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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