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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채 Feb 24. 2017

사우나, 하지 않겠습니까?

케이채의 포토 산문집 #2

그냥 앉아 있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사우나 말입니다. 어린 시절 목욕탕에 가면 마치 불을 뿜어내는 몬스터처럼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있던 그 공간 말입니다. 아마 한국사람이 생각하는 사우나라는 것은 대부분 그런 이미지가 아닐까 합니다. 목욕탕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장난을 치다가 호기심에 그곳에 들어가 보면, 늘 나이 지근한 분들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며 축 쳐진 모습으로 앉아있곤 했습니다. 멋모르고 몇 분 이상 버텨보겠다고 큰소리치며 도전했던 적이 있는 것 같네요. 작은 모래시계를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버텨봤지만, 금방 숨이 막혀 뛰쳐나왔던 기억도 납니다. 저는 그게 사우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나는 사우나와 맞지 않아! 저는 평생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핀란드는 사우나 종주국입니다. 대부분의 가정에 개인 사우나가 있으며, 아파트라고 해도 주거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사우나가 반드시 있습니다. 핀란드 관광청의 초청으로 Polar Night Magic 캠페인을 위해 그곳에 갔을 때, 처음 머무르게 된 호텔방에 1인용 사우나를 처음 발견하고 신기해했습니다. 핀란드까지 왔으니까 그래도 한번 해보자고 사우나 불을 켜고 한참 있다 들어가 봤답니다. 그런데 제 기억 속 사우나와 달리 내부에 연기가 전혀 들지 않는 게 아니겠습니까. 안이 별로 덥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가만히 10분 남짓 앉아있다가 나와버렸답니다. 어딘가 좀 이상했지만 핀란드의 사우나는 이런 건가보다 하고 말았습니다. 이럴 때 보면 저는 참 둔감합니다. 입구에 있던 사우나 사용 설명서라도 읽어봤으면 좋았을 것을. 어릴 때나 지금이나 저는 사용 설명서를 읽지 않습니다. 



얼마 지나 핀란드의 전원생활을 체험한다는 명목 아래 토라시에피라는 지역으로 내려간 저는 그곳에서야 비로소 핀란드 사우나가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우나 안에 위치한 스토브로 내부의 온도를 올리고, 그러면 위에 올려진 돌덩이들이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준비가 되었을 때 양동이에 물을 한가득 채워 입장하고, 바가지에 물을 담아 뜨거운 돌덩이 위로 뿌립니다. 그때 만들어지는 수증기가 사우나 내부를 감싸며 뜨거운 공기를 내뿜고 땀을 빼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묘하게 상쾌했습니다. 한국에서 했던, 건식 사우나처럼 숨이 막히지 않았습니다. 노폐물이 정말 쫙 빠지는 그런 기분이었달까요? 무엇보다 핀란드식 사우나는 사교의 장이었기에, 그렇게 땀을 빼며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가 즐거웠습니다. 거기에 맥주 한잔까지 걸치면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습니다.


사우나에 대해 잘 모르기는 저나 저와 함께했던 팀원들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독일에서 온 마티아스, 일본에서 온 유이치 모두 사우나 늦둥이 었지만, 일단 그 매력을 알게 되자 제가 그랬듯 그들 또한 빠져들었습니다. 어디를 가던 거의 매일같이 우리는 사우나를 즐기곤 했습니다. 핀란드에는 아무리 외진 곳이라도 사우나가 없는 경우는 없기에 어렵진 않은 일이었습니다. 새로운 숙소에 도착하면 우리는 첫 번째로 와이파이 정보를 물었고 그다음은 사우나의 위치였습니다. 그렇게 몇 달간 다양한 형태의 사우나를 경험하고 나서 우리는 역시 전통식 사우나가 가장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는데요, 헬싱키 같은 도시나 호텔에는 대부분 전기스토브로 사우나를 달구는데 그 느낌이 아무래도 전통적인 방식만큼 좋진 않았던 것입니다. 나무 땔감을 집어넣어 불을 지피는 전통식 사우나가 더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더 오래 사우나 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이 이야기를 핀란드인 스텝들에게 전하자 그들은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눈빛을 보냈습니다. 핀란드인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며, 그 얘기를 하면 다들 좋아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핀란드 사람들만 만나면 이 이야기를 절대 빼놓지 않았습니다. 지역 신문들과 인터뷰라도 하면 나무 사우나야말로 진짜 사우나라고 언성을 높여 흥분했습니다. 그럴 때면 그들은 ‘이 친구들 뭘 좀 아는구먼!’ 하는 표정을 지으며 우리의 핀란드 사랑을 인정해주었습니다.



핀란드 사람들은 알몸이 되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남녀 나누어 사우나를 즐겼지만 원래 핀란드인들은 남녀 상관없이 홀딱 벗고 사우나에 같이 입장한다고 하니까요. 자연 속에서 사우나를 즐길 때는 몸이 너무 뜨거워지면 영하 20도 이하인 밖으로 나와 몸을 식히곤 합니다. 고요한 숲과 나무를 바라보며, 자연 한가운데서 알몸에다 맨발로 서 있으면 그 상쾌함은 글로썬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비록 순식간에 추워지기에 한 번에 몇 분 이상 나와 있는 것은 어려웠지만요. 그런데 핀란드 전통은 거기서 한술 더 뜹니다. 사우나 밖의 얼음 호수에 몸을 담근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골의 사우나는 이를 위해 대부분 구멍을 낸 얼음 호수 근처에 만든다고 합니다. 처음엔 미친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해보겠냐며 우린 결국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몸을 최대한 뜨겁게 달군 뒤 맨몸으로 달려 나가 얼음 호수에 몸을 집어넣었습니다. 정말 정말 추웠지만 기이하게도 그게 또 기분이 참 좋아지더군요. 처음엔 딱 한 번만 할 거라고 다짐했지만 우리는 매일같이 그 과정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핀란드를 떠나며, 더 이상 사우나를 매일같이 하지 못할 거란 사실에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에도 사우나야 많지만 이런 핀란드식 사우나를 과연 서울에서 만날 수 있을까? 아닐 거란 생각에 슬픈 마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핀란드 친구들은 저에게 분명 서울에도 핀란드식 사우나가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핀란드인이 있는 곳엔 분명히 사우나가 있다고요. 대사관이라도 찾아가서 물어보면 가르쳐줄 거라고 했습니다. 하긴 핀란드 사람들은 어디를 가던 사우나를 가장 먼저 짓는다니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핀란드 군인들이 에리티카에 파견되었을 때도 부대 주둔지에 가장 먼저 지은 건물 중 하나가 사우나라니까요. 과거였다면 웃어넘겼겠지만 몇 달 사우나를 경험해보니 그들의 유난한 사우나 사랑, 십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갑갑한 머릿속 수많은 고민들. 불안한 내일과 부끄러운 과거까지. 땀을 빼듯이 모두 씻겨 내려가는 그 기분은 안 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신비한 겨울의 마법이 사우나 안에는 존재하는 것만 같습니다. 새하얀 눈에 둘러싸여 작은 통나무집 사우나안에서 땀을 흘릴 그날이 다시 오기를. 핀란드를 떠나온 그날부터 저는 그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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