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채 Mar 03. 2020

백엔의 사랑

시네마 파라디소

얼마전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을 보았다. 워낙 모든 배우가 매력적이지만 그중 특히 나의 시선을 끌었던 것이 아내역으로 출연한 안도 사쿠라였다. 그녀의 작품을 더 보고 싶어 찾아보니 2016년작 <백엔의 사랑>에 대한 호평이 무척 많아서 감상하게 되었다. 과연, 어느 가족에서 느낀대로 그녀는 대단한 배우다.


32살의 백수. 인생에 목표도 없이 희망도 없이 밑바닥 인생을 살던 주인공이 우연히 복싱을 하는 남자를 짝사랑하게 되고, 그 계기로 자신도 복싱을 시작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흔한 줄거리라고도 할 수 있지만, 복싱 영화는 참 그런게 있다. 늘 비슷한 스토리인데도 몰입하게 한다. 그게 복싱이라는 운동이 가진 매력이려나? 이 영화는 그 중에서도 더 특별하다. 안도 사쿠라 덕분이다. 극중 거의 대사를 하지 않는 여주인공의 성격과 마음을 온 몸으로 연기해낸다. 영화의 끝을 장식하는 시합 장면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할 정도다.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이 그녀의 삶, 그 모든 것이었다.


그렇게 희망적인 영화는 아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사실 먹먹한 기분이 된다. 단 한번이라도 이기고 싶었다고 소리치는 그녀의 대사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나 또한, 사진가로서 평생 지기만 하면서 살아왔다. 밑바닥에서 홀로 허공에 펀치를 날려왔던 사람들이라면 이해하겠지. 단 한번이라도, 단 한번만이라도 승리의 두 팔을 올리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우는 것을 듣고 싶은 그 마음을.


우울한 마음 안고 영화는 끝이 나지만, 엔딩곡으로 흘러나오는 노래의 가사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싸울 수 있었기에 질수도 있었던거야.”


그래, 링위에 오르는 그 당연한 것 같은 행위 자체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 싸울 기회조차 얻지 못해 지지도 못한다. 패하는게 두려워 승부를 피하지는 않으리. 평생 피해만 왔던 영화속 주인공이 그러했듯이. 졌다는 것은 싸웠다는 증거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싸움 자체. 오늘도 지기 위해 싸움으로 달려나가는 나에게, 당신들에게. 이 영화를 한번 추천하고 싶다.


2019년.

작가의 이전글 선생님이라는 세 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