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채의 포토 산문집 #6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릴 때부터 저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습니다. 공부하라고 어머님이 사준 공책에 낙서를 하며 종이를 낭비하고는 했습니다. 저의 누이는 이미 초등학교 시절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상도 받았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저에게는 동일한 재능이 주워지지 않았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 시절 선생님에게 '넌 미술에 소질이 없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린아이에겐 꽤나 잔인한 말이었던 것 같군요. 지금까지도 그걸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저는 그때 분명 상처를 받았나 봅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 말에 반박하기는 어렵습니다. 제 그림실력은 여전히 유치원 아이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니까요.
기름종이를 만화 책위에 대고 따라 그리기를 수십 번. 대고 그리는 대도 똑같이 그리지 못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자를 사용해도 선을 일자로 긋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저에겐 미술에 관한 한 그 어떤 재능도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미술을 전공했다면 믿을 수 있으신가요? 물론 1학기 만에 끝난 실험이었지만 말입니다.
전공을 정하지 않고 대학에 들어갔던 뉴욕에서의 1998년. 그림에 대해 품었던 꿈을 접을 수 없어 미술 수업들을 찾아들었습니다. 그 있잖습니까, 테이블 위에 사과와 와인병 같은 것들을 올려두고 그리는 그런 수업들 말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 꼭대기층에 있던 미술 학과에서 제 딴에는 참 열심히 그리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실력은 전혀 늘지를 않더군요. 아무리 예술 전문학교는 아니라고 해도 미술 전공을 택한 친구들이니 그래도 기본은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저는 여전히 유치원생보다도 못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기억하는 것 한 가지는, 그 어떤 교수님도 저에게 다른 전공을 택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게 단 한 번도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씀하신 분도 없었습니다. 노력상, 혹은 아차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교수님들은 제게 C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화위복이었습니다. 덕분에 사진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었으니까요. 미술 수업들을 등록하며 재미로 선택했던 흑백 사진 수업을 통해서였습니다. 저는 사진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이 암실에 들어갔지만 그 길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답니다. 일단, 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분명 사진 또한 그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야기하자면, 손으로 그리지 않고도 그릴 수 있는 예술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진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겨 두 번째 학기부터 저는 전공을 사진으로 바꾸게 됩니다. 그 후로도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게 되긴 합니다만, 그것이 바로 사진가 케이채의 시작이었습니다.
작은 노트북이나 스케치북 하나를 들고 걸어 다니다 마음에 드는 장면을 보면 그냥 철퍼덕 주저앉아 슥삭 그 풍경을 그림으로 담는다니! 아, 정말 얼마나 멋진지 모릅니다. 저는 여전히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저는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림에 재주가 없었기에 저는 사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 그림 실력이 남들이 수긍할 만큼만 되었더라도 저는 아마 사진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림을 못 그린다는 것이, 미술에 재능이 없다는 것이, 저로 하여금 사진을 발견하게 해주었습니다. 무언가를 못한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재능이 없다는 것. 그것은 때론 당연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모든 것에 뛰어날 수는 없으니까요. 오히려 어설프게 조금씩 할 줄 아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무언가를 못한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만큼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저는 캔버스 앞에서는 그 누구 앞에서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카메라를 잡는 그 순간, 세상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 후로 저는 가만히 앉아 그림을 그리는 대신, 세계를 산책하며 그림 같은 사진을 담아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