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은 아직 그곳에 있으니까요

케이채의 포토 산문집 #7

by 케이채

북극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린 시절 코카콜라 광고에서 처음 본 이 귀염둥이들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물론 그건 실제가 아닌 그림이었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그냥 곰이라고만 해도 이미 너무 좋은데 거기다 새 하얗기까지 하다니! 얼음 속에 둘러싸여 두리번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치명적인 매력 그 자체였습니다. 볼을 꼬집고 꽉 안아주고 싶은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시도한다면 그들의 푹신함을 느낄 틈도 없이 한방에 이 세상을 하직할 것이 분명했지만, 사랑에 빠진 이 마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만 갈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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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대로 뉴욕의 동물원 같은 곳으로 북극곰을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어울리지 않는 기후에 갇혀 있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불쌍해 보였습니다. 더하여 지구온난화 이야기가 나올 때면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북극곰의 생존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그런 뉴스들을 보고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어서 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나중에 손주들에게, ‘지금은 멸종해서 어린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 할아비는 북극곰을 직접 보았단다!’ 같은 말을 하면 꽤나 멋지지 않을까? 그런 유치한 마음도 없지는 않았던 것 같군요. 북극곰을 만나기 위해. 결국 저는 제 인생에서 기간 대비 가장 비싼 여행을 준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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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을 보러 가기로 결심한 이상 목적지는 셋 중 하나였습니다. 첫 번째는 캐나다에 위치한 처칠. 10월에서 11월 사이에 북극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후보 중에선 가장 접근성이 높은 곳이었습니다. 워낙 인기가 많은 곳이라 다양한 투어의 옵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관광지 같아 조금 내키지가 않더군요. 그다음은 노르웨이의 북쪽 섬 스발바드였는데요, 이쪽은 북유럽 쪽이라 비용이 특히 비싼 게 문제였는데다 크루즈 형태로의 방문이라 역시 어딘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는 좀 더 북극곰의 삶에 가까이, 더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스발바드 섬 위에서도 북극곰을 만나는 게 가능하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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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와중 알게 된 곳이 바로! 알래스카의 북쪽 마을 칵토빅(Kaktovik)이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면 볼수록 이곳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북극권 근처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은 관광지와는 거리가 멀었고, 내셔널 지오그래피 등을 위해 일하는 프로들이 주로 방문하는 장소라는 게 특히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작은 보트에 최소한의 인원만 북극곰을 찾아 나선 다는 것도 좋았습니다. 북극곰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루 최대 6대의 보트만 해역에 뜰 수 있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고 하니까요. 그곳에서 투어를 운영하는 익스페디션 알래스카(Expedition Alaska)의 칼 도나휴(Carl Donahue)씨의 인상도 좋아 보여 알래스카행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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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어느 날, 드디어 저는 알래스카에 도착했습니다. 페어뱅크스(Fairbanks)에서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칵토빅에 닿았습니다. 4명으로 구성된 팀원들과 투어 리더인 칼을 만났습니다. 사진에 비해 머리숱이 조금 적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좋은 인상은 그대로였습니다. 첫날에는 눈보라가 심해 보트가 나설 수 없었고, 내일은 볼 수 있겠지 하며 일단 오지 않는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벌떡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출항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순간 드디어 떨어진 오케이 사인! 우리는 서둘러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거대한 카메라들을 싣고 우리의 보트는 출발했습니다. 녀석들은 어디에 있을까. 언제쯤 발견하게 될까. 설렘이라고 해야 할지 긴장감이라고 해야 할지 정의하기 힘든 복잡한 이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예상보다도 빨리 북극곰들이 제 눈앞에 나타나 주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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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녀석들을 제 두 눈으로 처음 보았던 그 순간. 마치 제 주변 모든 것이 슬로 모션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았던 그 첫 만남을 말입니다. 동물원이 아닌 온연한 북극권에서, 천진난만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들 곁에 있을 수 있다니! 저는 오래오래 이 감정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날씨는 갈수록 추워졌지만, 제 마음은 오히려 더 뜨거운 열정으로 달아올랐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1분 1분 소중하게. 4일 동안 차곡차곡.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렇게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어떤 날은 조금 더 운이 좋고 어떤 날은 없었습니다. 성인 북극곰들은 인간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은 우리가 신기한지 가까이 다가와 코앞에서 인사를 나눈 적도 있었답니다. 많은 경우 잠을 자고 있었지만 그 모습조차 녀석들은 멋졌습니다. 어느 날인가 보트 위에서 칼이 제게 건넨 말이 생각나네요. 다른 동물들은 자고 있으면 사진 찍기가 영 별로인데, 북극곰들은 자는 모습조차 최고라고요. 저는 그 말에 완벽히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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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좋았지만 날씨가 계속 흐려서 푸른 하늘을 잘 볼 수 없는 건 아쉬움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1주일간 사진을 담을 예정이었습니다만, 4일 만에 찾아온 급격한 추위로 항구의 바다가 모두 얼어붙어 더 이상 보트가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기다린 저와 북극곰의 첫 만남은 조기 종영된 드라마처럼 어설픈 엔딩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아쉽기만 합니다. 제대로 안녕이라고 녀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지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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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번 여행한 장소는 어지간해선 다시 가지 않습니다. 그럴 돈이 있으면 아직 못 가본 새로운 곳을 가자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칵토빅은 머지않아 반드시 돌아가고 싶은 장소입니다. 비용이 워낙 많이 들기 때문에 두 번은 없을 거라고 각오하고 떠난 길이었지만. 처음 그들을 향해 셔터를 누름과 동시에 저는 이곳에 다시 한번 오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멋진 동물들을 많이 보았지만 북극곰들은 너무나 특별합니다. 그래서 조금 더 사진으로 담고 싶습니다. 저만의 시선으로 또 한 번 보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북극곰 사진집도 내보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으로썬 도저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꼭 그렇게 될 거라고, 그 기회가 찾아와 줄 거라고. 다시 이 귀여운 녀석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와 북극곰들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그곳에 북극곰들이 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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