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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환 Sep 09. 2023

조상 찾기(성묘를 준비하며)

(조상도 헛갈리는 사람들)

아버지는 임종을 받아 놓고서 이야기하셨다 너의 엄마 옆에 같이 묻아 달라고...

사랑이라는 말의 정의를 할 수없게 만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은 증오와 연민이 버무려진 관계였다.

외견상으로는 아버지는 어머니를 원망하고 무시하는 듯 보였다.

10년을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생전에 사랑한다는 표현을 듣는 경우라곤 진탕 술에 절어 들어 오 실 때면 과장된 언어와 들뜬 목소리로 이야길 하는 게 사랑한다는 본심을  이야기한다고 믿지 못했다.

친지들은 살아서도 힘들게 하더니 죽어서도 어머니 옆에 가서 힘들게 한다고 우스개인지 뼈가 있는 이야기인지 하곤 하였지만 어찌 되었건 생전의 유언이 있었기에 아버지를 어머니 옆에 같이 합장을 해드렸다.

이것이 마지막 산소였다

일반인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이 그럴 경제적 형편도 문제이지만 산소, 묘를 쓰는 매장을 더 하기 힘들일이 되었다,.

매번 기일과 추석에 성묘를 간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머님 기일에 맞춰 한여름에 산소를 다녀오고 곧 다가올 추석을 전해서 성묘를 갈 것이다.

그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지의 탈상이 끝나는 즈음 아마도 내가 환갑이 될 나이이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화장하여 골당이나 납골묘로 어쩌면 수목장으로 모셔야 될 것이다.

나는 아이가 없는 관계로 동생이 관리를 하면 좋으련만 사는 형편이나 하는 것을 봐선 내가 정리를 해야 될 것이다.

원래대로 라면 할머님 산소가 위에 크게 있고 아버지 형제분들 큰 아버님 4분의 산소가 줄줄이 있었다면 조금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르겠는데 큰집에서 제사와 산소를 없애버렸고 형제분들은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묘를 쓰지 않았다,.

막내인 아버지와 어머니만 남은 것이 남들은 마다하는 데를 그냥 지키고 있나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게다가 남향의 양지바른 묏자리가 아닌 것이 신경이 쓰였고  위로 옆으로 밑에 있던 산소들이 줄줄이 없어진 후 수풀이 우거지면서 시야를 가리곤 한다,

묘지위로 고압선이 지나가면서 웅웅 거리는  바람소리도 거슬린다.

동생 녀석은 성묘를 오면 앞자락의 나무를 베느라 여념이 없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인지 산소 앞이 막히면 자식이 안된다고 자신의 불행이 오직 산소 때문이라 여기는지 아님 조카에 대한 애정으로 그러는지....

늘쌍 느끼지만 부모님의 묘소를 보면 살아서의 집과 비슷한 감정이 들곤 하다.

파주 광탄에 있는 용미리 서울시립묘지는 재개발 전에 미처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원주민들의 집들처럼 점점 쇠락되어 가고 있다.

더 이상의 매장은 허가가 나지 않고 기존의 묘지들은 자손들이 3대 4대로 내려갈수록 제대로 관리가 되지 못하여 방치가 되고 만다.

하나둘씩 파묘되고 사라지는 묘지는 제대로 뒷정리가 되지 많고 그냥 녹지로 방치가 되고 있다.

묻었던 비석이 땅 위로 삐죽하게 튀어나오기도 하고 벌초를 해도 예전처럼 옆옆이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잡초는 계속 번지고 있다.


산 위에 능선을 따라 돌로 쌓아 올린 묘지들 보면 도시의 외곽의 산자락마다 생겨난 전원주택단지를 이 연상이 된다,

어머니는 평생을 주택에 사시다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 잠시 아파트 생활을 하셨을 뿐 두 분 다 일반주택에서 사시다 주택 같은 묘소에 마지막으로 들어가셨다.

사람들은 대부분 아파트에 산다. 하다 못해 빌라에 살더라도 독립된 주택에 사는 일은 점점 요원해지는 일이다.

죽어서는 납골공원의 가지런하고 칸칸이 배정된 남골함으로 영면한다.

 모습의 어찌 보면 대단지의 아파트 같기도 하다.

좋은 자리를 얻으려면 더 값을 치러야 하고 그나마 자리가 없음 급한 대로 모시기도 하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자신만의 공간을 차지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젠가는 헐리고 사라져야 할 운명의 집들...

서울토박이 원주민들은 그렇게 고향이란 것을 지키지 못했고 산자들의 집이 그러하듯 죽은 자의 집들도 같은 운명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는 하지만 마음에는 무언가 애달픈 쓸쓸함이 지나간다.

살아가는 터를 잡고 또 죽어서 영면할 곳을 찾는 일...

사는 게 부질없다는 것이 지나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인데 죽음 후의 자리가 무엇이 중요할까 어차피 육신은 모두 원래의 곳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인의적으로 그 시기를 미루어 두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나온 어버이의 존재는 그저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정신의 고향일 것이다. 싫든 좋든 나의 근원을 세상에 존재하게 하고픈 부질없는 욕망이다.

그럼에도 아직 이승에 어버이의 유흔이 남아 있음이 내게 안도와 평온을 가져다준다.

나만의 의식이고 종교이기도 한 일이다 적어도 나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 살아있는 부모와 돌아가신 부모의 인연과 존재의식을 가져갈 것이다.

나의 정체성과 근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요즘 한참 시끄러운 홍범도 장군의 흉상과 묘소를 없애려는 것은 그들 나름 수긍이 간다.

그들의 어버이가 아니고 정신적인 계승을 원하지도 않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친일과 부일을 한 이들은 형제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패륜한 형제의 자식들을 거두어들인 의붓형제일 듯하다. 종교만큼 깊은 뿌리의식들... 자신들의 존재의 정체성과 당위성을 찾으려 발버둥 치는 모습들이 비루하고 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민족이라는 것이 지금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이념이나 종교도 마찬가지이고 앞으로 점점 여러 민족과 타국의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우리는 인구가 소멸해 간다.

먹고사는 게 중요한 일이고 생존이 우선이지만 적어도 내 의식과 의지를 꺾고 스스로 노예가 되길 자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양반 상놈이 갈라지고 귀족과 노예가 있는 시절로 돌아가길 원하는 이는 당신이 아니라 힘 있는 자들이다.

당신이 그들을 추종하여도 면천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른  보다 조금 올라갈 수 있다고 만족한다면 그런 이기심은 참 어리석다,

정의라는 것 역사라는 것을 부정하고 총칼보다 더 악랄하게 펜대와 지폐다발로 진실을 뒤바꾸려 하는 자들을 죄시하지 말아야 한다.

100년이 지나서 일제가 하던 대로 스스로 맞춰서 나라와 민족을 거덜을 내고 일신 일가의 성세만을 위하는 꼴을 보며 없애버린 제사라도 다시 지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약육강식이 진리라 여기면 금수의 삶이지 인간이겠는가

힘 있는 자에게도 불편부당을 당당히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자꾸 줄어들어간다.

옛 어르신들이 걱정하던 것이 고루한 이야기만이 아니었구나

우리가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게 분명 있구나 싶다.

정신이 물질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물질이 정신을 갉아먹어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얼이 없고 넋이 나간 우리는 어찌 제자리로 올지 모르겠다.

도대체 우리 민족의 시련은 끝이 없는 것일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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