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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환 Sep 02. 2023

저장강박에 관해서

어머니는 서랍장 깊은 곳에
바리바리 포장도 안 뜯은 속옷과 양말을
잔뜩 남겨두고 돌아가셨어

나일롱이 섞인 목긴 양말들과 곱게 개켜있던 비닐봉지들...

옆집 쌍둥이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락에 잔뜩 재워둔 성냥과 비누, 온갖 생필품들을 보시고 노인네가 걱정이 넘친다며 혀를 차시더니

막상 당신은 새 옷들을 아까워 못 입고 박스채 냄비와 그릇을 남기고 가셨지

무엇을 남기고 갈 만큼 목숨이 길지 못한 게 한스럽기만 한 인생..

늘상 모자라고 부족한 미래를
또 두려움을 머리에 이고 지고
살아가는 마음뿐인  인생

나는 가난을 제대로 못 배우고
라면 한 봉지 비누 한 조각도
아쉬워 한적 없었지
철이 없어 세상 걱정이 없었지

그런데
어머니처럼 살아야 하나 봐

정말 돈도 없는데
힘들어 죽겠는데
나도 소금을 사야겠어
잔뜩 사야겠어

참지캔을
굴비를
짭조름한 젓갈들을...

저먼 이웃나라의 바닷속 깊은 곳에
소금 맷돌이 돌아가 듯
숭악한 것들이 자꾸 퍼져가면

김창완 아저씨 노래는
어머니와 참치캔이 되겠지.

자꾸 피식 거려 미안해
당장은 안 죽을 거 같아 그랬어
아이도 없어서 그랬어

미래에서 왔던 사람들이 만든

 만화 같은 일들이 일어나려나 봐

고지라

미니라

킹기도라

모스라

온갖 괴수들이 나오면 세상이 재밌을까

레프카를 닮은 높은 분이 우리를 쫓아오면.
라나를 구해서 우리는

어디 바다로 도망가야 하나

베란다 잔뜩 쌓아놓은
소금 5자루와 참치캔들이 아른거려서
어딜 가지도 못하겠네

그냥 마음을 모아 기도할 뿐이야
만화 같은 세상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울트라맨도 좋고
트럼프 아저씨도 좋아

우리



제발

구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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