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시한 날

왜성

by 승환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돈다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현실 속 나는

당신의 궤도 안에서

불균형한 원심력에 기대어 있었다.


관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

지속은 단지 운동이 아니었다.

관계의 속성은

서로를 향한 회전이 아니라,

서로를 피하기 위한 궤적이었다.


어떤 날은

태양보다 더 뜨겁고 명확했지만,

그 빛이 내 궤도에 도달할 즈음엔

이미 온도가 달라져 있었다.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부르기 부끄러웠다.


별들의 궤적은 등가속도가 아니고

달은 언제나 지구를 등지고 떠오른다.

중력은 방향이 아니라

의도 없는 반응처럼 차갑다.


내 감정이 더 무거웠다면

당신의 궤도는 일그러졌을까.

마음의 질량을 늘린다면

블랙홀 가장자리를 향해

스스로를 끌어당겼을까.


우리는 만나지 않았다.

만남은 좌표의 교차가 아니라,

시간의 오차, 속도의 편차,

그리고 경로의 착시.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란

측정할 수 없는 부재의 총합,

의미 없는 근삿값의 반복.


수많은 좌표를 입력해도

감정은 미분 가능한 함수가 아니었다.

관계는 언제나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리고 끝내,

에너지를 모두 소비한 뒤 남는

진동수의 잔향.


답을 미처 말하기도 전에

다시 움직인다.


나는 여전히 공전 중이며,

중력을 벗어난

멀고 긴 궤도의 소행성처럼

당신을 향해 있다.


기울고,

멀어지고,

사라지고 있다.


사랑은

충돌보다 추월에 가깝고,


당신은 내게

언제나 조금 늦게

도달하는 빛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