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에 대한 추억
겨울이 지난지 한참인데 늦은 이불빨래를 주말에 했다. 토요일에 비가 와서 일요일 아침일찍 빨래를 하고 집을 나섰다.
예전처럼 솜이불을 덮지 않으니 무게는 덜했지만 역시 성가신 일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그 시절 이불을 빨고 말리고 털고 그 작은 체구로 힘이 얼마나 들었을까 요즘은 우풍없는 집안에 한겨울에도 두꺼운 이불을 별로 쓰지 않는다
오리털이나 구즈털은 얼마나 가벼운가 그래도 빨아야 할 떄가 되면 세탁소에 맞기는 일이 다반사다.
이불에대한 추억이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 우리는 이불에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살아왔으니 이런저런 추억들이 쌓여있다.
동네 전봇대에 붙어있던 솜틀어드립니다 는 광고판이 가끔 생각이 난다.
침대나 메트리스가 없던 시절 자리요는 두툼한 솜을 넣어 무겁긴 얼마나 무거운지, 속청과 겉청을 벗겨내고 겨울내 찌든 솜을 빨려고 칠라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몇해를 쓰다보면 숨이 죽은 솜을 다시 틀어야 했고 동네 변두리 어드메 즘에는 솜틀집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꽃들이 수놓아 있던 차렵이불보다 몽실한 담요를 좋아했다 꽃그림보다 호랑이가 그려져 있던 붉은 담요를 동생과 서로 덮겠다고 싸우던 추억이 생각난다.
이불에 지도를 그린 경험이나 이불이 깔리면 개구진 형제끼리 레슬링을 하고 베개싸움을 한다고 집안을 난장판을 만드는 일 등등.
어린시절 아침마다 일어나면 이불을 개었다
저녁에 또 잠잘 건데 펴 놓으면 안될까 하다 못해 저 구석으로 밀어 놓으면 좋으련만 이불을 개키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힘들고 졸립고 귀찮을때에는 씻지 않고 잠들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내가 입던 옷들이 얼마나 더러운지 몰랐고 가까이 보기전에는 어디 국물이라도 튀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세탁기가 있다지만 이불빨래는 늘 버겨운 노동이었다
빨래줄을 다 차지하는 크기며 더디 말라서 흐린 날에는 이불빨래도 힘들었었다.
세탁소에 맡기는것은 재벌이나 할까 그런 사치는 부리기 어려운 시대였다
한 겨울에는 방바닥이 너무 뜨거웠다 차라리 이불요는 냉기를 막기보다 뜨거워진 구들의 열기를 막아주는 역할이었다 온장고 대신 넣어둔 스덴밥공기들을 덮기도 했다.
대부분의 휴식과 꾸었던 꿈들은 이불 속이었고 슬프거나 서러울때도 눈물을 받아 주던 존재였다.
나만의 방이 없던 시절에도 나에게 허락되는 유일한 공간이 이불속이었다.
집사들이 고냥이 선생들의 박스사랑을 이해 할 수 없듯이 고양이들도 사람들의 이불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저 서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일게다.
아마도 태어나서 죽을때 까지 나의 곁을 쉬지 않고 지키는 존재는 이불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