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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시한 날

가난한 연인의 꿈

by 승환

가난한 연인의 꿈



밤을 새워

우리는 꿈의 밑그림을 그렸다


우리가 달려가는 길 위엔

봄빛이 눈을 찔렀고

바람은 적당히 불었다

길 옆 도열한 나무들 위로

꽃잎이

느리게, 조용히 떨어졌다


인피니티 풀 너머

당신은 어색한 웃음을 달고 있었다

나는 오래된 핸드폰을 들고

그 웃음을 조준했다

순간보다 사진을 더 놓칠까 봐

손끝이 젖었다


매끼니마다

국적 없는 요리를 반씩 나누고

돌아온 방 안,

우리는 바다를 바라봤다


바다는 담벼락처럼

쏟아올랐다

파란 몸을

우리에게 기대곤 했다


하루에 두 번, 세 번

해가 떠오르는 꿈을 꾸었다


이 모든 꿈이

찰나였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지만

반달치 월급쯤 되는

짧은 호사가

꿈이 되어도 괜찮았다


결제를 누르려는 손끝이

살짝 흔들릴 때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작게, 웃었다


좁은 집 빈방에는

떠나지않아도

우리의 마음이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있었다


반나절쯤

설레고

속삭이고

이것이면 충분하다고

서로를 안심시켰다


세상엔

가본 곳보다

가지 못한 곳이 많지만

돌아올 곳은 언제나

하나뿐이었다


여행의 끝은

집이 아니라,

우리가 남긴 체온이었다


긴 여정의 부스러기를 쓸어안고

우리는 집의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서로의 잠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낮의 꿈은 금방 잊히지만

밤의 꿈은 오래 남아,

우리를 다시 데려가기를


깍지 낀 손으로

우리는

한 번 더 집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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