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고향이 서울이어도

지금 마음이 떠도는데 내 고향은 어디일까?

by 승환


저녁밥이 과했는지 더부룩한 속을 가라앉히러 늘 가는 한강공원으로 나가려다 무슨 변덕이 났는지 홍대 거리로 발길을 옮긴다. 골짜기를 지나 트레킹을 하듯 양옆으로 솟은 아파트 절벽 사이로 길을 걷는다. 저 멀리 건널목을 건너기가 쉬워 그냥 지나 치려던 서강초등학교로 연결되는 육교를 오랜만에 올라본다. 4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우뚝한 곳의 풍경이 그리 나쁘지 않다. 다만 멀리 보이는 산과 한강 물줄기의 시원함은 보이지 않는다. 바지런히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이 굽이 치듯 흐르는 뚫린 도로가 시야를 시원하게 한다.




어릴 적 아이들의 개구짐은 지금 기준으로 도를 넘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육교 위 난간에 위태로이 깨금발을 들고 드문드문 지나는 차를 기다리다 냅다 침을 뱉고 고라니를 맞춘 명포수처럼 신이 나 떠들던 기억 하며, 무슨 큰 횡재라도 생긴다고 네잎클로버를 찾듯 복주머니 광고판을 지붕에 달고 지나는 택시가 지나가길 기다리며 친구들과 한참을 육교에서 지체하기 일쑤였다. 하교 길에 바로 집에 들어가는 것이 괜히 아쉽고 친구들이랑 뿔뿔이 헤어지는 게 싫어 어린 발길을 묶어 두었던 육교는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그렇게 몇십 분, 한 시간을 놀다 집에 가서 어머니의 늦었다고 듣는 지청구가 아무렇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태어나고 살아왔으면 고향일 텐데, 이렇게 까맣게 잊고 살다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육교에 와서야 새삼 느낌이 남달라진다. 여기저기 모두 변해버린 풍경 속에 그나마 온전히 남아있는 유적 같은 모습이다.


어릴 적 경의선 철길이 지나가는 신촌 굴다리 밑에 쪽 동네는 그리 좋은 동네는 아니었다. 홍대가 있는 와우산자락은 밤섬 이주민들과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달동네였고, 강가에 가까이 가면 허름한 공장과 고만고만한 학고방들이 모여 있었다.


한강을 나가는 길목은 늘 으슥하고 구릿한 오물 냄새(아마도 벌거벗은 한강의 체취였으리라) 하며, 비가 제법 오는 해에는 홍수로 난리가 나고 수재민이 되어 학교 교실 바닥에 며칠 밤을 지새우며 부끄럽고 창피한 시간들을 맞기도 했다. 연희동 사는 친구는 어머니가 신촌 굴다리 밑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하니, 지금의 아파트촌으로 변한 모습은 격세지감이다.


어릴 적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보이던 한강 물과 멀리 보이던 관악산과 남산의 모습이 한여름날 마당에 뿌린 물처럼 증발하여 자취가 없어졌다. 63빌딩이며, 국회의사당의 초록색 둥근 지붕이며, 순복음교회 윤곽까지, 큰길 건너 이웃집 동네같이 보이던 풍경들이 어디로 숨은 건지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저 괜스레 시야를 가린 건물들과 아파트 숲이 야속하고 원망스럽다.


잔잔하지만 생동감 있던 한강 물의 어깨춤도 이제는 숨이 끊겨 시체처럼 널브러져 감춰졌다. 굳이 찾아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풍경이 되었다. 공원이 되어 사람들이 오며 가며 산책을 한다지만 그냥 아무 데나 올라 고개가 돌리면 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은 상실감이 왜 이리 큰지 모르겠다. 육교 위로 불어오는 강바람만큼 나를 둘러싼 풍경들은 이렇게 빨리도 지나쳐 간다.




고향이 서울이라는 말만큼 시시하고 별 볼 일 없는 말은 없을 거 같다. 내 동네나 마을이라는 애착도 그리 없고 돈을 벌고 출세를 하고 성공을 하면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지 지금 사는 곳을 아끼고 보듬어 지켜내자는 이도 없고, 그리하기도 쉽지 않은 탓이다.


나 역시 그저 여기 몸만 있다 뿐이요, 내 동네요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어린 시절 별반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커서 학교에 직장에 여기저기 정신은 한 곳에 정착을 못 하고 떠돌다 보니 그저 막연한 애증이며 애착만 남을 뿐 고향이라는 말이 무색하였다.


변두리의 나이 지긋한 노인네들이나 토박이니 고향이니 내세울까, “서울에서 무슨 고향인가 촌스럽게” 그런 마음에 그저 그런 말들이 내게는 생경하고 고루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으니 문득문득 변해 버린 거리와 풍경들이 아쉽기도 하고 섬뜩해지기도 한다. 좋든 안 좋든 내가 보내온 시간만큼 그곳의 기억들이 그저 막연하긴 하여도 수구지심이 생기게 된 듯하다.




강남과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하나, 둘 이사를 하고 재개발이 되고 아파트촌이 되어서 입주하기 힘든 사람들과 집값이 올라 세살이를 사는 이들도 형편 따라 밀려나기도 한다. 자의든 타의든 정 붙이기 전에 떠나고 만다. 서울에서의 고향이란 의미가 퇴색하는 것은 엉클어진 풍경의 기억뿐만 아니라, 예전처럼 같은 그 사람이 계속 옆에 있지 못함이 아닐까 싶다.


서울살이들이 들어와 잠만 자고 직장 따라 돈 따라 이리저리 옮겨 가는 뜨내기 인생이 대부분인지라 마포에 산들, 잠실에 산들, 미아리에 산들, 별 구별이 없는 생활이 아닌가 싶다. 서울이라는 곳은 그저 큰 객주인 듯 머물러도 그저 잠시인 듯하다.


지금 대부분 서울사람은 고향을 잃은 인디언들처럼 가보지도 못한 선대의 이야기로 고향을 듣는다. 그 대지의 바람 소리와 별빛의 온기를 전해주지 못하는 인디언의 아버지같이 허허롭고 망연하다. 빼앗긴 공간은 변하여서 괴물이 되었고, 내 마음속 그 고향은 다시 찾기 어려울 게다. 그 시절의 시간만 놓지 못해 꽉 움켜쥔 채로 사람과 같이 나누던 온기들이 그저 머릿속 한편, 가슴 밑바닥 어디에 남아 대신하고 있다.


나의 어머니가 아버지가 계신 지금 이곳이 고향이라는 말도 안타까운 마음을 위안 삼으려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단지 고향이 어디 어디인들 무슨 큰 떨림이 있겠는가. 내가 마음 쓰고 보내온 시간들이 몽골이 맺혀 사랑도, 애증도, 공감도, 모두 옹이가 되어 박혀야 내 마음의 고향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고향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주는 아늑함과 안도감은 부모가 돌아가셔야만 알게 되어 버리는 감정같이 소중하고 아쉬운 것이다.




너무 멀어 쉬이 올 수 없는 이국의 고향도 아니요, 가볼 수도 없는 북녘의 고향도 아니니 고개를 숙였으나 묵묵히 지켜온 고향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나의 불평은 그저 어린아이의 칭얼거림 같을지도 모른다. 한강이 숨었던들, 바람 불면 손 흔드는 뒷산의 아카시아 잔가지들이 보이지 않는다 한들 그래도 오롯이 옆에 누워있는 풍경이 부러 라도 찾아가면 반기지 않던가. 그리 생각을 하다 보니 괜찮다. 제법 괜찮은 정도가 아닌 삼대가 쌓은 덕이 내려온 듯 복에 겨운 일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 또 누군가와 같이 공감하며 이야기하며 나누는 일상들이 먼 훗날 고향의 한 편린이 되어갈지니 나의 고향은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는 아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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