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기

이태리 어디즘에서 싸운 우리는 국제적인 문제적 부부가 되었다.

by 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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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한국남자들이 해외여행을 할 시간이나 경제적인 부담으로 여성들보다는 소극적이고 실행하기도 쉽지가 않은 시절이었다.

배낭여행 삼아 식도락을 위해 골프를 치러 여러 이유를 대고 동남아로 필두도 세계각지로 여행을 양수리, 팔당 가듯 가게 된 것도 10년 이내 얼마 전부터 유행하였던 일이다.

90년대 초 유럽 배낭여행이 대학생들의 필수요건처럼 유행하였을 때에도 경제적 부담으로 차마 부모님께 손 벌리지도 못했고 여행경비를 벌려고 알바를 해서 돈을 모으는 요량이나 뚝심도 없었기에 친구들이 가자는 걸 관심 없는 척 외면하였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한참 동안 해외여행이라는 것은 회사에서 보내준 일본 오사카를 다녀온 게 20여 년 전일이니 해외여행은 인생에 더는 없는 일이 될 듯싶었다. 아마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43살의 새신랑 새신부라는 것도 조금은 남세스러운 데다,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듯한 스몰 웨딩을 하고 신혼여행을 지금의 아내가 배낭여행을 고집하는 것이었다.

조금 비용이 들더라도 패키지를 가자고 설득을 하였건만 부득불 우기니 어찌 안 따를 수가 없어 이탈리아 몇 개 도시를 가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사실 가까운 국내 여행을 가더라도 의견 차이로 싸우기가 일쑤였는데 타국에 가서 못난 꼴을 보일 가 내심 조마조마했다. 특히나 서로 소비하는 스타일이나 성격이 정반대 인지라 귀찮고 위험한 건 일단 피하고 보자는 소심한 나와는 비교되게 생긴 거 달리 진취적이고 용감무쌍한 아내는 어려움과 고난은 정면 돌파하는 삼국지의 일기토 장수와 같았다.

일단 아내는 준비부터 미리 제일 싼 비행편을 찾아 잡고 여기저기 카페와 인터넷을 뒤져 숙소와 여행스케줄을 찾아서 꼼꼼히 크로스 체크하며 검색을 해나갔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숙소를 에어비앤비와 현지 호텔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예약을 하고 아내는 맛집과 쇼핑 할 곳을 골라 스케줄을 만들어 갔다.

현지에서 파는 철도티켓과 여행상품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예약을 했다. 제대로 한 건지 긴가민가하고 당일까지 불안 불안하였지만 어쨌든 그렇게 출발을 하였다.

줄서고 기다리는 일을 웬간해서 맛집도 안가는 내게 출국장을 거쳐 비행기에 오르기까지가 벌써부터 지치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긴장반 숙면반 섞어가며 어쨌든 독일을 거쳐 이탈리아 밀라노로 첫 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루 이틀의 간격으로 여러도시를 돌아야하는 일정이라 첫날은 그냥그냥 발만 아프게 돌아다니다 보니 힘이 들어 그럴까 첫날부터 티격태격이 시작되었다.

배도 고프고 일단 그럭저럭 가격도 괜찮을 듯한 현지 식당을 무작정 들어갔다가 바가지를 쓰고 나왔다. 이탈리아어를 몰라서 원래 그런거 인지 모르지만 일단 바가지라고 아직도 믿고 싶다. 결정적인 실수는 한국 한식 뷔페 같은 스타일인 줄 알고 셀프로 세팅된 음식을 이것 저것 들고와 먹었는데 입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계산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 큰 비용과 금액 어차피 물값도 받는 인정머리 없는 나라라는 건 알고 갔는데...

아내는 왜 첫날부터 쓸데없이 욕심부리고 잘 모르면서 확인하지도 않고 먹었다고 비난을 하고 난 미안하긴 한데 신행부터 음식값가지고 이러기냐 이러고 서로 옥신각신 하였다 감정은 서로 삐닥선을 타고 일정은 소화해야 하고 신행인지 구행인지 발은 아프고 볼 거도 없는 밀라노는 왜 온거냐고 그깐 구찌 프라다 매장 가려고 들려서 고생이라고 말은 못했다 속으로만 궁시렁거리고 하여튼 일정을 따라 베니스를 가고 한국인이 하는 숙소를 잡았는데 음식 빼곤 영 별로고 택시도 못타게 하고 무작정 걸어서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걷다가 하루가 다갔다 물론 처음와보는 곳의 경관과 사람들이 좋기야 좋았지만 신혼 부분가 난 이태리 군인인가 행군을 하나 또 속으로 궁시렁 궁시렁...

계속 냉냉하던 날 피렌체에서 좀 크게 싸웠다. 미켈란젤로 광장을 시간이 늦어 패스하든 그래야 하는데 아내가 고집하는 바람에 그 언덕을 올라갔다가 시간이 지체되어 버스가 끊겼다. 아내는 내가 낮에 피렌체 가죽시장과 시내 구경하다 시간이 늦어진 거라 날 원망하고 난 어이없고 화가나 화를 내고 아마도 더 싸웠다면 각자 한국으로 왔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은 어둑해지고 인적은 없어지고 주위에 불량해 보이는 흑인들과 집시 같은 젊은 놈들이 어슬렁거리고 무서워하는 아내를 보고 걱정도 되고 안쓰러워 화가 많이 풀렸다.

그날 밤은 피렌체를 둘이 손을 잡고 끝도 없이 걸었던 것 같다. 숙소까지 낯선 나라의 어두운 거리를 걸으면서 이렇게 같이 가야하는 인연인가 숙명인가 속 좁고 찌질한 남자같아 미안하고 아내는 무엇을 생각하며 겉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비슷하지 않을가...

서로 화가 풀렸는지 다음 일정이 좋았는지 그 이후 시에나와 피사 프로방스 와이너리 투어는 너무 좋았던 것 같다.

물론 시에나에서 길에서 파는 젤라또를 못사먹게 해서 살짝 삐지기는 했지만 한국인이 하나 없는 현지 투어에서 둘이 의지할 수 밖에 없어서 일가 이틀의 일정은 꽤 오래동안 서로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여행을 같이 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끝없이 배려하고 챙기는 일이라 생각이 든다, 그 것은 여행일 뿐 아니라 결혼이라는 것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와 같이한다는 것은 혼자만의 인생과 다른 길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가 그녀가 웃지 않으면 근 여로의 과정은 매번 짜증과 고난뿐일 것 같다.

그녀가 그가 웃음을 머금을 수 있게 하고 있는지 오늘 하루 나는 반성해본다. 또 내일과 모래와 한달과 한해를 그렇게 같이 걸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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