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생의 왕림

by 승환

비가 내리던 날

고선생이 집으로 찾아왔다.


복도를 헤매다

창틀에 올라

조용히 움크리고 있었다.


어두운 창가에 박제처럼 끼어 있는

그를 보고 엇, 소리를 냈다.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다

말을 걸어보았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둥근 얼굴, 토실한 뱃살.

고선생이 나를 유혹한다.

한번 만져보라며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서

비릿한 웃음을 흘린다.


흔들린다는 건

외롭다는 것이겠지.

의미 없는 아무 말이라도

하고 싶었고

듣고 싶었다.


그러다 고선생이 움찔하면

내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조용히 울음이라도 내면

나는 자꾸 뒷걸음쳤다.


우리는

우리자신 밖에

사랑하지 못하지

날 닯은 너를

사랑한다는 건

그냥이니까,

존재가 이유이니까.


비가 그치고

밤이 지나면

그가 떠나가길 바랐다.


이 집에는

너의 자리는 없어.

무엇 하나 네게 줄 건 없고

받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사실 나도 이미 늙은 고양이였지


도시의 집마다 늙어가는

고양이는 소리를 죽이고 살지.


이봐, 내게 츄르를 좀 줘봐.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면


이제는 누구든

내게 오지도

가지도 말어라.

작가의 이전글아내의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