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즈음 거리에서

찬란한 새해는 어두운 그믐을 살라 떠오른다.

by 승환

그믐날 닷새를 남겨두고 다섯시 즈음을 지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시간은 상수동 즈음

사람들은 땅밑으로 달리고 길위로는 바람이 같이 뜁니다.


나는 바람인양 길위를 같이 걷습니다.


어두운 밤하늘, 별들은 내려와 멀리 높은 마천루에 앉아 쉽니다.

등 떠미는 바람에 휘청이며 6호선 여섯시 역을 향해갑니다.


여섯시 역에서 부는 바람은 해질역으로 나를 몰아가고

이제는 차들의 빨간 엉덩이들이 저 길의 끝을 향해 달려 나가며

또 한 시각, 몇시역일지도 모른 길위에 서서

나는 신호등이 되어 손을 흔듭니다.


바람은 계절을 스걱스걱 깍아 놓고

나는 주섬주섬 겨울을 주워 들고

사과를 베어 물 듯

우걱우걱 먹고 있습니다.


어두운 그믐이 지나고 찬란한 새해가 온다는데

작년에 못푼 수수께끼 처럼 어제 뜬 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새해를

겨우 한 줌 겨울의 부스러기를 쥐어 들고

세월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입술이 차마 떨어지지 않습니다.


허공을 흔드는 손가락 틈으로 겨울의 편린이 쪼개져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붑니다.

눈을 감은 내 얼굴은

그믐 밤이 되어 동녘 먼 곳의 해를 부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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