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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이 법제화되면 저출생이 심화될까?

생각들을 모아놓은 글

by 배즐

사회학 수업 때 유교적 가족관이 성소수자 수용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해 발표하였다. 발표한 내용은 유교적 가족관의 유산이 "이성애자 남성 + 이성애자 여성 + 피붙이 자녀"를 정상가족으로 간주하고, 입양가정, 비혼 남성 및 여성, 성소수자를 비롯해 다양한 가정을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존재하므로 유교 가치관이 사회적으로 보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내용이었다.


교수님도, 듣던 학우님들도 무척 흥미로워하였다. 다들 동양 철학 싫어하고 서양 철학만을 공부하는 시대에 우리 문화의 기저에 깔린 가치관을 들춰내 보니 다들 놀랐던 것 같다. 사회학 대학원을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다니!' 기뻤다. 내가 사회학자들이 쓴 글을 보고 감동받았던 그 기분을 내가 사람들에게 준 것 같아 뿌듯했다.


하지만 성소수자 수용도 측면에서 다룬 내용이다 보니, 이런저런 질문이 들어왔다. 성소수자에 비판적인 질문이 들어올 것이라 예상을 했지만, '출생률'이 언급될 줄은 몰랐다. 해당 학우님께서는 '동성결혼이 법제화가 저출생을 심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고 악의적인 의도 없이 물어보셨다. 다양한 비판적인 질문을 생각해보았지만 저출생은 굳이 이성애자들 간의 결혼만 인정하고 있는 현재에도 낮은 상황이기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Q&A 게시판에 올린다고 말씀드렸다.


Q&A 게시판에 20분 정도 심혈을 기울여 써보니 내 말속에 지난 대학생활 4년 동안 배웠던 많은 지식들이 포함되어있는 기분이었다. 난잡하지만 해당 내용이 보기 좋아 브런치 글 목록에 넣어놓아보고자 한다.




Q. 동성혼이 법제화되면 저출생이 더 심해지는 것 아닌가?


수업 중 나왔던 질문에 보충 답변드리겠습니다.


1) 일단 해당 질문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개인이 국가 존속을 위한 출생의 의무가 있다"라는 관념이 기저에 깔린 질문으로 추론됩니다. 어떻게 보면 해당 질문은 2021년 한국 사회에 20세기에 이루어졌던 국가주의적인 사고관이 남아있고, '애를 낳아 자손을 대대손손 이어야 한다'는 유교적 가족관이 남아있는 질문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 사고관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냥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2) 하지만 2021년 한국 사회에서 '출생(출산)'이란 개념은 점점 '선택'의 개념으로 가고 있습니다.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가지지 않는 딩크족도 흔하게 볼 수 있고, 아이를 가지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비혼 남성 - 비혼 여성 분들 또한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 서양 관념이 들어오고 전통적 가족관이 희미해지고 세상이 다양해지면서 '개인의 권리', '개인의 선택' 측면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추론될 수 있습니다. 즉, 자녀 출생 여부는 '사생활 영역'으로 포함되고 있습니다.


3) '그럼 다 애 안 낳아도 되는 거냐'라고 다시 여쭈실 수도 있는데, 점점 "공동체 내 개인의 의무"라는 사고관보다 "개인의 권리와 선택"이라는 가치관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사회 속에서, 정부는 국민들이 결혼을 하고 출생을 할 때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국적이라는 것 또한 '선택'으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출생'이라는 공동체적 의무는 희석되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국가 간의 관계는 사회계약론에서 배우다시피 계약관계로 볼 수 있고, 정부는 출생을 늘릴 인센티브를 늘려야 합니다. (아마 다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2016년에 보건복지부에서 '가임기 여성 분포 지도'를 만들어서 굉장히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이 또한 '임신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는 거냐!!'라는 공동체 의무 뉘앙스가 잔뜩 들어간 부적절한 정부 부처의 행동임을 알 수 있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기사: https://www.sedaily.com/NewsView/1L5FOUA2RL)


4) "동성혼을 허용하면 저출생이 심화된다"라는 주장은 보수진영에서 성소수자를 공격할 때 자주 이용되는 프레임입니다. 물론 위 질문을 하신 분께서는 궁금해서 순수한 마음에 물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비단 동성부부뿐만 아니라, 비혼 독신 성인, 딩크족 등 아이를 낳지 않도록 선택한 가족을 '사회적 의무를 다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치부하며 이들을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주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유교적 가족관의 유산이라고도 볼 수 있고요!


5) 한 가지 배경지식을 첨언해드리자면, UN에서 발표하길,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인구가 유지되며 넘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출생률은 2.1명이라고 합니다. 부부 2명이 존속되고 0.1명은 각종 원인으로 사망할 수 있으니 2.1명이라고 합니다. OECD 국가 중에서 2.1명을 유지하는 국가는 한~두 국가 빼고 존재하지 않습니다.(제 기억으론 이스라엘이랑 멕시코였던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즉슨, 한국이 출생률을 늘리든 말든 다문화시대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고, 한국 출산율이 0.84명인 만큼, 2.1-0.84=1.26. 1.26명은 외국인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6) 또한 궁금해서 제가 예전에 읽었던 책을 찾아보았는데,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리 배지트 지음, 뉴욕대학 2009년 출판, 민음사 2016년 번역) 117쪽에 따르면, 아마 2007년쯤 상황일 텐데, 미국 동성부부의 경우 남성은 5쌍 중 1쌍, 여성은 3쌍 중 1쌍이 자녀를 기른다고 합니다. 보통 출생률을 '가임기 여성 한 명이 낳을 수 있는 아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을 고려해볼 때, 전자는 5명 중 자녀 한 명, 후자는 3명 중 자녀 한 명을 낳았다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녀를 입양한 것이겠지만 출생한 것처럼 출생률이라고 가정해본 것입니다) 그 경우, 남성 동성부부는 0.2, 여성 동성부부는 0.33이라는 출생률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단순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동성혼은 출생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린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현실적으로는 인구대체율 측면에서!)




+) 동성혼 법제화 한 국가들이 한국보다 다 출생률이 높다.


휴... 저 질문받은 당시에는 당황해서 말을 잘 못 해 드렸는데, 언제나 잘할 수 있는 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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