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사회학개론 발표가 있었다. 나는 '유교적 가족관이 성소수자 수용도에 미치는 영향 -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를 준비했다. 학우들에게 퀴어퍼레이드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며 연구계기를 설명하고, 유교적 가족관과 성소수자 수용도의 개념적 정의, 조작적 정의, 두 변수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현대에도 유교적 가족관이 존재하는지 등을 발표했다.
서론에서 연구계기를 발표할 때 커밍아웃했다. "저 또한 동성애자로서 유교의 유산이 성소수자 수용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철학과 4학년 한국철학 수업을 수강하고 있고, 철학과 3학년 주자학 수업을 수강하고 있고, 이번 발표를 위해 고려말-조선시대 역사 문헌들을 참고했습니다. 자료조사하다가 영감을 받아서 설정하게 된 가설을 여러분들께 검증해드리고자 합니다"
오프라인 발표였으면 표정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온라인 발표는 화면에 얼굴 나오는 사람이 4~5명만 나와서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15분 발표를 마치고 질문들이 들어왔다. 일단 다들 발표한 유교적 가족관 내용을 흥미로워하셨다. 근데 질문들은 대체로 발표 주제와 관련 없는 질문들이었다. "한국과 다르게 서양은 어떻게 성소수자 인식이 발전한 것인지?", "동성혼이 나중에 생길 것이라 생각하시는지?", "일본은 왜 성소수자 수용도가 높은 것인지?", "동성혼이 이루어지면 저출생이 심화되지 않는지?", "종족번식의 본능에 따른 생물학적 거부감이 있는 것인지?" 몇몇 질문들은 실례되는 질문들이었으나 악의성이 보이지 않았다. 차근차근 조목조목 답해드렸다. (내가 부적절한 말을 한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연구" 자료에 따르면, 조사 표본 1000명 중 93%가 성소수자를 가족, 친구, 지인, 심지어 동네 사람으로도 마주쳐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 자료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성소수자는 단지 말만 하지 않았을 뿐, 이렇게 평범히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고 있을 뿐인데. 성소수자 분들이 혐오 발언과 편견들이 너무 심해서 밖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성애자인 척 살아가는 것도 지겹고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밖에 나가보고자 한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성소수자를 만나본 7%의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알게 되고 편견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미디어에서 비추는 성소수자는 다르다. 주변에 평범히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게이였고 레즈였고 트랜스젠더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라고, 평범한 사람임을 깨닫고 편견이 없어졌을 것 같다.
하지만... 한국갤럽이 2021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동성결혼 법제화 찬성 여론은 38%였다. 14년 35%, 17년 34%, 19년 35% 임을 감안할 때, 지난 7년간 거의 오르지 않았다.
특히 2014년에는 35%이고 2021년에는 38%이다. 나는 2014년에 20살 성인이 되었다. 앳된 나이였다. 2021년 27살 성인이 되었다. 어른들은 아직도 나를 애기로 보긴 하지만, 지난 7년간 나는 탈모도 오고, 주름도 늘고, 군대도 다녀오고, 졸업반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변하는 동안 동성결혼 법제화 찬성은 3% 올랐다. 오차비율 감안하면 3%는 유의미한 수치일까? 왜 이렇게 지지부진한 걸까? 정말 시간이 지나면 사회는 더 포용적으로 개방적으로 변할까? 50% 이상 찬성하면 법제화된다고 가정할 때, 3% 올라가는데 7년이 걸렸으니, 단순히 계산하면 28년 뒤에 50%가 찬성하고 법제화되는 걸까? 현재 한국의 법적 시민이지만 사회적 시민은 아닌 성소수자로서, 55살에 결혼할 수 있는 사회적 시민의 지위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다가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 같아 나도 짱돌을 쥐기로 선택했다. 나는 대학원에 가서 성소수자-퀴어 관련 논문을 작성해서 성소수자 사람들에게 존재 근거를 제시하고, 사회에서의 존재감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사실 성소수자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2018-19년쯤부터다. 그 전엔 나오지조차 않았다. 이 자체부터가 일종의 '존재지움'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일상 속 성소수자 분들도 피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커밍아웃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있다. 왜냐하면 이러다 정말 세상 안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7년 동안 +3%라니. 얼른 졸업하고 성소수자 논문을 쓰시는 교수님 밑에 들어가서 존재 가시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