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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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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Feb 03. 2023

5년 된 슬리퍼를 바라보며

  어제 화장실에서 씻다가 문득 슬리퍼가 너무 낡아 보였다.

  때가 많이 생겼고, 곳곳이 해져서 버려야 할 것처럼 보였다.


  그 슬리퍼는 내가 2019년에 공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 후 대학교에 복학하면서 가져온 파란 슬리퍼이다. 공군 슬리퍼는 절대 찢어지지 않는 높은 내구성을 자랑한다. 그 슬리퍼는 내가 2019년에 자취방을 구한 뒤로부터 화장실 슬리퍼로 약 4년, 햇수로는 5년째 쓰이고 있었다.


  파란 슬리퍼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공군 슬리퍼를 화장실 슬리퍼로 쓰기 시작할 때 나는 이 슬리퍼를 미래에 버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던 터였다. 왜냐하면 공군 슬리퍼가 너무나도 내구성이 좋은 슬리퍼로 유명하고, 슬리퍼의 미래를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공군 슬리퍼가 늘 단단한 모습 그대로 잘 있어줄 줄 알았는데, 어제 보니 해지고 때 탄 부분이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아차렸다.


  분명 2019년이 어제 같고, 2020년이 어제 같고, 2021년이 어제 같고, 2022년이 어제 같다.


  영원할 것 같았던 '현재'라는 순간들이 모여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지나고

  공군 슬리퍼는 그 사이에 닳아있었다.


  나는 수 일 내로 새 슬리퍼를 사고 공군 슬리퍼를 버릴 것이다.


  직장인이 되어서 그런지, '오래되어 낡고 해진' 슬리퍼를 버리고 '새것이고 깨끗한' 슬리퍼를 사는 행위가


  '나이가 들고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변화된 세상에 덜 적응된' 나이 든 노동자를 버리고

  '젊고 학습능력 좋고 파릇파릇한' 어린 노동자를 고용하는 듯한


  이 느낌은 기분 탓인 걸까, 생각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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