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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Dec 25. 2023

메리 솔로 크리스마스

썸은 개같이 멸망하고 그렇게 이번 크리스마스도 솔로이고

  2023년의 크리스마스는 솔로로 보내지 않을 줄 알았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만나던 형이 있었기 때문. 비록 만난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내 생일 때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고 함께 대화를 나눌수록 너무 재밌고 흥미로웠다. 논쟁하는 것도 재밌었고 나와 공통 관심사가 상당히 겹쳐서 말도 잘 통했다. 성격적인 부분에서 다소 트러블이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므로 형과 맞춰나가기 위해 부단히 애써보았다. 서로의 입장을 나누고 맞춰나갈 수 있는 부분에 맞춰나가기로 함께 합의하는 등... 하지만 트러블은 또 다른 싸움으로 번졌고 서로 연락하지 않아 시간은 흐르고 관계는 흐지부지되었다. 어떻게든 맞춰나가 보려고 노력했으나 나만 맞춘다는 기분에 내 내면아이가 꿈틀거리기도 했고, 뭐 또 상대방 입장도 할 말 많겠지... 그렇게 같이 명동성당 성탄전야 미사에 가기로 했던 약속도 쫑났다. 같이 연주회를 가기로 했던 약속도 쫑났다. 이번 만남도 개같이 멸망했다.


  형이랑 같이 놀려고 사놓았던 루돌프 사슴 머리띠와 산타 안경이 집 한 구석에 전시되어 있는 채로, 올해 메리 솔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에 솔로일 때 가슴에 찬바람이 투과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외로움을 느꼈으나 이제는 내년에 서른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런 기분도 없다. 단지 쉬어서 좋다. 예수는 부활했을까. 예수의 부활을 믿지는 못하겠지만 타인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설파하기 위해 스토리 적으로라도 예수는 부활했어야 했다. 크리스마스에 이런 잡다한 생각들만 들뿐이었다.


  7살 때쯤 피자를 먹으며 나 홀로 집에 봤던 감성이 생각나서 29살인 나는 피자를 포장해 오고 유튜브로 나 홀로 집에를 시청했다. 22년 만에 보았는데 여전히 재밌었다. 7살 때는 아저씨들 좀 많이 아프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29살에는 저 아저씨들 병원비 많이 나오겠다는 생각을 했다. 덧붙여 '미국 건강보험제도 망한 것 같은데 도둑 아저씨들 어떡하지?', '교도소에 수감되면 공공의료로 공짜로 치료해 주나?' 생각을 했다.


  나 홀로 집에를 다 보자, 유튜브 알고리즘은 마치 '나 홀로 집에 봤니? 그럼 영화 아역배우 케빈의 근황도 보렴~'이라고 말하듯이 케빈의 근황을 알려줬다. 충실한 도파민의 노예로서 해당 영상을 시청했다. 케빈 배우의 본명은 맥컬리 컬킨. 올해 43살(1980년생)이라고 한다(헐..). 그리고 유튜버에 따르면 케빈의 부모님은 케빈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케빈은 굉장히 고통스러워했고, 나이를 먹자마자 바로 부모의 법적 지위를 박탈시켰다는 말에 진짜 경악했다. 나는 마냥 케빈이 마냥 밝은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뒤에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적잖게 충격이었다. 다행히 요즈음에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고, 미국에서는 아역배우의 수입을 부모가 다 가로채지 못하도록 15%를 은행에 넣는 법률도 있어서 그때 번 큰 액수의 돈으로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그리고 캐롤을 들으며 원고 작성을 했다. 취미모임에서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있어서 2시간 정도 집중을 하며 짧은 글을 작성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니 벌써 밤이 되었다.


  브런치를 한 지도 벌써 2년 7개월 정도 지난 것 같다. 처음에는 젠더 연구학자를 목표로 시작했던 브런치. 하지만 코로나 블루가 와서 일종의 감정쓰레기통으로 썼던 브런치. 대학원에 떨어지고 생각해보니 학자가 되고 싶은 욕구도 없어서 인생의 방황 속에서 사색을 올렸던 브런치. 현재는 직장인이 된 평범한 퀴어 1로서 퀴어 당사자의 삶과 소소한 청년의 이야기를 올리게 되었다. 내 브런치는 향후 퀴어 이야기와 사색 이야기로 올릴 것 같다. 멀지 않은 미래에 좋은 사람과 잘 만나서 가정을 꾸리는 이야기, (가능하다면) 자녀를 키우는 이야기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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