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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Feb 24. 2024

퀴어가 나오는 소설을 읽다가 빡쳐서 작가에게 메일을..

뭐하자는 거지?

  최근에 독서모임에서 민음사 편집자로 일하시는 분이 작가로 데뷔하고 쓴 책 『나주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었다.

  단편소설 모음집이었다.

  소재가 신선하고 재밌었다.

  그런데 2개의 작품은 스토리가 전개되다가 갑자기 여자 두 명이 키스하고 서로 사랑을 확인하며 끝났다.

  다른 1개의 작품은 트랜스젠더가 나오는데, 서술 내용과 방식이... 불쾌했다.

  그리고... 어떤 작품의 주인공은 내가 졸업한 대학교(시립대)를 졸업한 설정으로 나온다. 작가는 이 주인공을 가리키며 사회에 """싸게 먹혔다"""라고 말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1. 성소수자가 수단화되어 소비된다는 생각.

  2. 작가는 '나는 퀴어도 쓸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자위하는 듯한 느낌.

  3. 작가가 가난혐오가 있다는 느낌.

  4. 작가가 민음사에서 일할 때도 이런 가치관이 반영되겠구나 하는 생각.


  빡쳐서 메일을 썼다.

  작가 개인 메일을 찾을 수 없어서 민음사 대표 메일과 책을 출간한 출판사를 수신자로 설정했다.

  그렇게 글을 4시간 동안 쓰고 보냈다.

  2주 뒤,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 죄송하다는 메일이 왔다.


  내가 너무 열심히 썼던 나머지 메일 내용을 브런치에 아카이빙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리는 글...

  작가를 너무 욕하는 것 같아서 작가의 이름은 스크리닝 처리하였다.




  000 작가님의 메일을 찾을 수 없어서 민음사와 문학동네의 대표 메일들에라도 보내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설을 읽고 작가에게 비판을 담은 메일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NGO에서 근무하고 있는 000이라고 하고, 한 명의 성소수자로서, 한 명의 서울시립대 졸업생으로서 '나주에 대해서'라는 책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민음사tv 유튜브로 00님과 혜진님의 콘텐츠들을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민음사가 '82년생 김지영'을 출간한 진보적인 출판사이기 때문에 기대하며 소설책을 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문학동네 출판사도 좋은 책들을 많이 내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컸기에 충격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으며 신인 작가이기에 나타나는 어설픈 배경 설정, 개연성 떨어지는 스토리는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습니다.

  참신한 소재들의 소설들이어서 재미있게 읽다가... 문제는 성소수자가 소설 속 소재로 수단화 되어 이용당하는 느낌이 들고, 이 때문인지 소설 책 전반적으로 '나는 퀴어도 소재로 쓸 수 있는 작가야'라고 스스로 자위하시는 느낌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소설 책 전반적으로 인간관계에서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려는 000 작가님의 자아가 투영된 느낌이 듦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무례하다는 느낌이 드는 내용들을 볼 때마다 너무 놀랬습니다. 그리고 이걸 문학동네에서 편집을 하고 출간을 하고...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라는 한 사람 개인의 느낌이며 작가님은 표현의 자유를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비판의 자유가 있겠고, 다양한 비판/피드백은 타인을 성장시키는 거름이라는 점을 모르실 사람이 아닐테니 메일을 올려봅니다.


  작가님은 256쪽(2022년 11월 21일 1판 3쇄 기준)에서 한 주인공이 "속마음을 모두 소리내어 얘기하는 무례한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는 텍스트를 쓰셨습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투영된 작가님의 가치관 같이 느껴졌습니다. 작가님께서 이런 가치관이 있으신 분 같아서 펜을 들어보았습니다.



  (1) 「척출기」 관련


  '척출기'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 속에서, '종양'이 있는 영은과 '성전환'을 한 주현이 나란히 대치되는 모습에 경악했습니다. 제가 너무 섬세하고 예민한 탓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척출기'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에서... 이성애자 영은의 '종양'과 트랜스젠더 주현의 '성전환 수술'이 나란히 배열되다니... 종양은 '병적인 측면에서 제거되어야 할 존재'입니다. FTM 트랜스젠더에게 성전환 수술은 '성정체성 혼란을 겪은 후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트랜지션 수술을 위해 자신의 생식기를 제거하는 수술'입니다. 두 소재가 나란히 병렬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끔찍하게 여겨졌습니다. 000 작가님은 종양과 성전환 수술이 비슷한 급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저는 이 작품을 읽고 불편하고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습니다. 타자화 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성소수자의 맥락이 여기서까지... 자신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수술이 종양과 같은 급으로... 나오다니... 차라리 제목이 척출기가 아니었으면 두 소재의 연관성을 찾지 않으려고 혼자 노력했을 것 같은데 제목이 '척출기'라니... 저도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트랜스젠더 주인공의 이름도 내 이름이라니...


  (2) 「정체기」 관련


  은주의 불안정한 연애 이야기를 읽으며 공감도 가고 재밌게 읽다가 '이 소설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엔딩씬'으로 주인공 '나'가 갑자기 '은주'와 '키스'하며 '마무리'되는 모습을 보며... 아... 이렇게 동성 간의 키스가 소설을 급 마무리하는 소재로도 쓰이는 구나 싶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무슨 네덜란드나 유럽 국가들처럼 성소수자 인권이 발전된 국가였으면 이런 작품도 재밌게 읽었을 텐데, 퀴어 인권이 낮은 한국 사회에서 이런 소설을 읽으니... 퀴어가 '수단화'되어 '소비'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약간 비유하자면 기안84가 '패션왕' 작품에서 전개를 급마무리 하려고 주인공을 늑대로 변신시켜서 막장으로 치닫게 한 후 급 마무리를 했듯이, '정체기'라는 작품에서도 퀴어가 급 반전, 급 마무리 소재로 '수단화' 되어 '소비'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체기」 하나만 이러면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였구나 생각할텐데, 「쉬운 마음」에서도 퀴어가 똑같이 급 마무리 소재로 '수단화' 되어 '소비'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이건 좀 문제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쉬운 마음」 관련


  (3)-1) 시립대??


  「쉬운 마음」의 작품 설정에는 '고급진 현정'과 '적당히 평범하고 대기업 입사에 ""싸게 먹힌"" 주인공 나'의 대조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은 '싸게 먹힌' 특징을 가져오기 위해 '서울시립대'를 가져왔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S대학, Y대학, 혹은 서울대 이야기는 들어보았어도 '시립대'가 나오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콘텐츠에서 제가 졸업한 모교가 나오면 반가워야할 텐데, 「쉬운 마음」에서는 '싸게 먹힌' 이야기를 하기 위해 시립대를 끌고 왔다는 사실에 경악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래서 000 작가님이 저희 시립대 국문과를 나오신 줄 알았습니다. 궁금해서 학교 커뮤니티에 물어보니, 숙명여대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구글에 검색해보니까 진짜 숙명여대 졸업생이시더라구요? 사립대 졸업하신 사람으로서 서울시립대 졸업생들이 '사회에 싸게 먹힌 졸업생들'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차라리 국공립대라고 말하면 기분 덜 나빴을텐데... 그래도 이건 일종의 가난혐오 맥락도 들어간 것 아닌가요? 저는 부모님께 부담드리고 싶지 않아서 서울시립대에 진학했고 실제로 등록금을 100만원만 내고 장학금만 받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 한번도 사회에 싸게 먹혔다고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돈으로 서열적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사회이긴 하지만, 이렇게 작품에 직접적으로 특정 대학을 언급하며 '사회에 싸게 먹힌' 이야기를 하셨다는 점이 무척 유감스럽습니다. 이 정도면 다양한 사연들로 차상위계층, 복지수급계층이 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시고 그 분들을 소재로 다룬 민음사 책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기까지 했습니다. 싸게 먹혔다고 혼자서나 주변 지인들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런 속마음,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실 수 있는 무례한 분이라니... 그리고 그런 분이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하신다면...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3)-1) 현정과 나의 급작스러운 엔딩


  비록 시립대가 언급되며 불편하긴 했으나 소설을 읽으며 저도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까 궁금했는데, 갑자기 현정이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급 마무리 엔딩이 되는 걸 보고... 지금 제가 신춘문예 당선된 작가의 작품을 읽고 있는 건지, 인터넷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선술했듯이, 급 마무리 엔딩에 퀴어가 '수단화'되어 '소비'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유럽처럼 퀴어 인권이 (나름) 좋은 사회라면 이런 소설도 재밌게 읽었을텐데, 퀴어가 수단화, 희화화 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000 작가님. 한 명의 성소수자로서, 한 명의 서울시립대 졸업생으로서 '나주에 대하여' 책 내용에 심심한 유감을 표합니다.

  그리고 이런 다소 부적절해 보일 수 있는 부분들을 더 좋게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출간한 문학동네 책임편집자 김영수 씨에게도 유감을 표합니다.

  그리고 박혜진 편집자님이나.. 다른 분들은 업무적으로 엮여 있어서 이런 비판들을 안해주시는 건가요? 주변에 이런 말을 해주시는 분이 없다면 정말 아쉽네요.


  000 작가님께서 이런 비판의 메일을 「침묵의 사자」에 언급한 '악플'(p.278)처럼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메일을 그냥 읽고 무시해버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소수자를 소재로 다루실 때 조금 더 주의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계신 무례한 맥락도 자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몇 시간 공을 들여 이런 메일을 쓰는 이유는 아마... 민음사tv에서 혜진님과 00님의 콘텐츠를 즐겨봤고 무척 유익했고 두 분에게 내적 친밀감이 생겼고 민음사 콘텐츠를 사랑하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혹은 제가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무례하더라도 속마음을 소리내어 말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외람되지만, 주제넘는 글을 써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만, 부디 000 작가님도, 문학동네 편집부도 더욱 성숙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일을 보낸 지 2주 뒤, 출판사에서 다음과 같이 메일을 보내왔다.





  참으로 다양한 생각이 많이 드는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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