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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눈물

고등학교 부적응, 성소수자, 전학

by 배즐

때는 바야흐로 내가 고등학생 때였던 2011-2012년의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수도권 소재 외국어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해당 학교는 6인실 기숙사 체제로 운영되는 기숙학교였고, 집에서 차로 2시간 떨어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10대였던 나는 남성들과의 교우관계에 적응하지 못했다.

31살이 된 지금 볼 때, 당시 내가 교우관계에 적응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상처를 잘 받고, 소심하고, 공부만을 하도록 주입받은 동성애자 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봐도 당시 친구들은 성격이 좋았지만 다들 남성적이고 부담스러웠다.

당시 외국어고등학교는 반 30명 중 7명 가량이 남자였고, 내가 속했던 반은 프랑스어반이었는데 반이 1개라 그 30명이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3년 간 함께 지내야 하는 운명이었다.

1학년 때 동성 친구들은 나를 포용해주려고 했으나, 동성 친구들이 옆에 있으면 긴장되고 부담스러워서 나는 도망가고 스스로를 소외시켰다.


이성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보려 했으나, 내가 여자 애들과 즐겁게 대화하고 있으면 바로 뒷소문이 났다.

내가 누구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이야기, 내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에게 들이댄다는 이야기 등...

덩달아 제3자의 친구가 나에게 어떤 여자애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말도 해주었다.


이 모든 과정이 피곤하고 부담스러웠던 나는 도망치며 더더욱 나를 스스로 소외시켰다.

이러니 학교 생활이 제대로 될 일이 있나...

1년 정도 버티다가 소외감과 고독감과 부적응에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2012년 4월, 나는 엄마에게 집 근처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동성애자 이야기는 제외한 채, 내가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이야기, 집 근처 일반계 고등학교로 가고 싶단 이야기를 말했다.


엄마는 스트레스 받을 때 TV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표정으로 속으로 많은 고민을 하며 머리 정수리를 긁는 습관이 있는데,

당시 엄마의 정수리는 점점 넓어져갔다.


전학 절차를 위해 엄마가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엄마와 나는 담임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고, 엄마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나도 울컥해서 눈물을 보였고, 당시 담임 선생님이 "우리 00이도 그렇고 어머님도 모두 눈물이 많으시네요"라고 슬픈 분위기를 전환하려 했던 시도가 생각난다.


그렇게 나는 차로 2시간 떨어져있던 기숙학교에서 집 근처 일반계고로 전학을 갔다.

전학 간 고등학교에서는 부담스럽지 않은 친구들이 많아서 나름 잘 지냈다.

그렇게 졸업하고 격정의 10대를 마무리했다.




성인이 되고 대학생이 된 뒤로는 굉장한 해방감을 느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내가 마음대로 친구를 사귈 수 있고, 누군가 내 뒷담을 한다 해도 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도 이제 연애라는 걸 하고 싶어서 대학 내 성소수자 동아리에 가입했고,

데이트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게이들을 만나고, 마음 맞는 사람과 연애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게이들을 만나며 나처럼 중고등학생 때 교우관계를 잘 맺지 못했던 사례들을 들었다.

나와 비슷했다. 친구들이 부담스러워서 자기 자신을 소외시킨 경우들도 있었다.

여성적인 모습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다는 사례도 들었다.

그리고 나처럼 교우관계를 잘 맺지 못했으나, 나름 노력하고 패턴을 학습하며 잘 지낸 사례도 들었다.

모든 게이들이 다 나같진 않았다. 나름 극복한 사람도 있었고, 나와 다르게 자퇴한 사람도 있었다.



엄마의 눈물, 고등학교 부적응 썰이 생각난 이유는 어제 개봉한 네오 소라 감독의 일본 영화 <해피엔드>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의 우정, 반항, 성장을 다루었고, 곳곳에 차별 및 혐오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작중 주인공을 향한 차별 및 혐오 요소를 볼 때마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 들었던 성소수자 혐오발언들이 오버랩되었다.

"South Korea is no gay zone", "동성애적 성향은 청소년기 때 잠깐 혼란스러워서 지나가는 과정이다" 등.


그리고 작중 주인공들이 사고를 치고 주인공의 어머니들이 속이 썩는 모습도 나왔는데 이 모습도 공감갔다.

우리 엄마는 내가 속 썩였을 때 얼마나 슬펐을까.

아들이 공부 잘해서 외국어고등학교 갔더니만 학교 생활 적응도 못하는 이야기 하고, 전학 가고 싶다고 말하고, 눈물도 짓는데 우리 엄마도 얼마나 슬펐을까.


영화 보고 또 오랜만에 담배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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