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바라보며
작년에 친누나가 2025년 4월에 결혼이라는 것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놀라웠다. 물리적 공간에 나와 함께 같이 있기만 해도 개와 고양이처럼 싸우기만 하던 아이같던 우리 누나가 결혼이라는 걸 하다니. 대학교도 편입 하느라 사회생활도 나보다 적게 한 누나가 벌써 결혼이란 걸 하다니.
그동안 결혼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나는 누나 결혼에 보태라고 누나에게 n백만원을 보냈다. 결혼식날 입을 멋진 양복도 맞췄다.
시간은 물처럼 빠르게 흘러 누나의 결혼식날이 되었다. 아빠랑 나는 생전 처음으로 메이크업을 받았다. 미용사 분(?)이 머리도 만져주셨는데 생전 처음으로 이마 까고 머리에 볼륨 넣는 스타일을 해보았다.
그러고 누나와 매형, 양가 가족은 열심히 사진을 찍혔다.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누나 드레스 입은 모습 보니 연예인 같아서 신기했다.
식 전에는 부모님과 함께 손님들께 인사드리는 역할을 맡았다. 엄마 아빠의 친척들과 지인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정말 오랜만에 뵌 친척들도 많았다. 엄마의 어떤 직장 동료 분은 내 첫인상을 좋게 보셨는지 “연상 좋아하면 우리 딸 아직 시집 안갔는데 한번 만나볼래?”라고 말씀주셨다(남자 소개해달라고 하고 싶었다). 엄마 동네 친구 분은 “잘 지내니? 아직도 여전히 애인은 없고? 얘 주변 여자애들이 눈깔이 삐었네”라고 말씀하셔서 내가 “제가 도망다녀요”(물론 남자가 아니라서)라고 말하며 사회생활을 했다.
이후 시간이 되어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누나랑 매형은 왔다갔다 걸어다니고 연신 고개를 숙였고, 아빠는 앞에 나와서 덕담을 읽었고, 축가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모두의 환영 속에서 결혼식은 마무리되었다.
부모님과 나는 뷔페에서 하객들 인사드리고... 돈가방도 챙기고... 밥도 먹고... 그렇게 전체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누나 결혼식 전에 우연히 결혼식과 관련된 영화/드라마를 봤었다. 게이 친구와 베프 이성애자 여성 친구의 20대를 다룬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주인공 재희가 결혼한 내용, 제주 출신 가정의 현대사적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주인공 금명이가 결혼한 내용... 모두 뭉클해서 볼 때 눈물이 났다. 누나 결혼식도 비슷할 줄 알았는데, 인사드리고 돈가방 챙기고 심부름 등 신경 쓸 일이 많았어서 그런지 뭉클하기만 하고 그 이상으로 감동적일 때쯤 불려가서 눈물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동성애자로서 이성애자들의 결혼식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으며, 남자 쪽 가족과 여자 쪽 가족이 함께 결합된다는 느낌도 있고...
성소수자들은 결혼식을 물론 할 수야 있겠다만 모든 절차 하나하나가 모두 시민운동이자 혁명이자 사회개선운동이 되어버린다. 물론 이런 운동이 많아져야 그 뒤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겠다만, 온라인에서 “조용히 살 것이지 왜 ‘양지’에 ‘기어’나와서” 같은 혐오발언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불쾌하고 아직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혐오발언을 속으로 조용히 할 것이지 왜 공론장에 기어나와서 뚫린 입이라고 똥을 뱉냐)
누나의 결혼식을 바라보며 나도 이제 진득히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까지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진짜 정착해야할 것 같은데... 가정을 꾸리고 싶다.